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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콕 Oct 14. 2024

타는 쓰레기에서 찾은

고오급 양장노트에 쓰는 회사 욕

  올해 5월부터 일기장으로 썼던 72절 크기 수첩을 다 썼다. 새 공책을 살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값이 싸고 성경책처럼 낱장이 얇고 매끈매끈한 점이 마음에 들어 두 번이나 같은 제품을 샀지만, 이제는 작별이다. 할머니들이 손가방에 넣어 다니는 텔북처럼 생겼다는 말이 은근 신경이 쓰였다. 할매니얼이 아닌 밀레니얼 감성의 노트를 사겠다. 대형문구점과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마음에 꼭 드는 일기장을 주문했다.


 택배를 기다리는 동안 다 쓴 수첩을 펼쳐봤다. 기록하지 않고는 못 견딜 에피소드가 많은 날 갈겨쓰기만 했을 뿐, 다시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지난 4개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몇 페이지 넘기다가 덮었다.


‘와, X발. 회사에서 펼쳐봤으면 X 졌다.’


 일기장의 8할이 육두문자가 섞인 회사 욕이었다. 나머지는 출퇴근길에 날뛰는 고라니, 직박구리 새끼, 백할미새 목격담과 딴 에는 기발한 생각이라고 쓴 헛소리-내가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 건 험한 물살 위 다리가 되기 위해서다 ¹ -였다. 지금껏 타는 쓰레기를 만들자고 깐깐하게 노트를 골랐구나. 나무야 미안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전에 쓴 수첩도 꺼냈다. 설마 내내 일기를 이따위로 쓰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한 장 두 장 넘어갈 때마다 드러나는 진실은, 그렇다. 나는 한결같이 툴툴거리고 징징거리고 있었다.


미래의 나를 위해 단 한 구절이라도 괜찮은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샅샅이 뒤졌다. 작년 이맘때에 쓴 일기에 머물렀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오려내고 코팅을 하고 간직하고 대대손손 가훈으로 삼을 명문은 아니었다. 일기장에 깔리고 널린 자학 중 하나였다. 아주 흉한 부분은 도려내고 옮겨본다.


에세이는 쓰는 사람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난 천박한 사람이니 에세이는 절대로 쓸 생각을 말아야겠다. 밑천이 다 드러난다.


교양 없음이 들통 날 까봐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페이지에 박제된 사람과 그 페이지를 읽고 있는 나

는 다른 사람이므로 씩 웃었다. 일 년 새 상스러운 사람에서 고상한 사람으로 거듭났기 때문은 아니었 다. 절대 에세이를 쓰지 않겠다는 완고함을 버리고 에세이를 써보려고 노오력하는 현재의 모습이 가상 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균열 속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한다면 과장이고, 타는 쓰레기 속에서 자란 콩나물 한 줄기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보잘것없으나 아무튼, 자랐다.


 새 수첩이 도착했다. 첫 페이지에 제목을 적을 수 있는 칸이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좋은

옷을 잘 입으시네요.’라는 대사를 빌려 ‘좋은 걸 잘 쓰시네요.’라고 적었다. 새삼 고상한 글을 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미래의 자신은 종이 위에 기록된 나보다 더 나아져 있길 바란다. 척박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 고약한 종자는 어떻게 또 자랄 까. 시간을 두고 펼쳐 본 낱장 사이에서 길게 자란 콩나물의 성장에 감탄할 수 있기를.


¹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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