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복은 엄마의 아빠다. 돌려 말할 것 없이, 외할아버지다. 나와 1촌인 아빠 와도 어색한데 2촌인 외할아버지와는 두 배로 더 어색하다. 어색함이 없으려면 대화가 있어야 할 진 대 30여 년째 왔나? 네. 수준이다. 무슨 공통점이 있어야 대화를 하지. 그런데 요즘 들어선 정말로 교집합이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뭔가 공통점이 있어서 신나게 얘기할 거리가 있었는데 긴 시간을 침묵으로 낭비했을지도 모른다는 찝찝함이.
성은 김 씨와 여씨. 성별은 여와 남이며 세대 차이는 반세기 좀 넘는다. 외모를 좀 살펴볼 까. 영복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길고 뒤통수가 납작하다. 이쪽은 짜리 몽땅하고 얼굴에 여백은 많지만 길지는 않다. 뒤통수만큼은 빵빵하다. 닮은 점은 가족 모두가 가지고 있는 쌍꺼풀 대신에 졸린 듯한 외까풀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닮은 점이라고 하면 외까풀 눈을 가진 사람은 모두 나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형의 차이가 완연하다.
껍데기 말고 알맹이는 닮을 수도 있지 않나. 지금껏 닮은 점을 찾지 못했던 건 당장 눈에 모이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전적 표현형에는 외모 말고도 성격이 있지 않던가. 내 성격을 스스로 이렇다, 정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성격에서 특징적인 부분을 집어내 나와 얼마나 비슷한 지 비교해 보는 건 수월하다.
내가 기억하는 영복의 특징은 두 가지다. 정리정돈, 신속함. 이 두 가지 요소가 내 안에 있느냐고 한다면, 나는 정리정돈을 드럽게 안 하고 행동이 빠릿빠릿한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명절에나 찾아가지만, 어렸을 땐 허구한 날 외가에 보내졌다. 세입자가 나가는 날과 우리 가족이 집에 들어가야 할 날짜가 꼬여서, 방학이라서, 학원이 가까워서 갖은 이유로. 안타깝게도, 노인 둘 만 있는 집이라 가지고 놀 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호모 루덴스는 언제나 답을 찾아낸다. 외갓집 책장엔 회사에서 주는 업무노트들이 색깔별로, 키를 맞춰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서랍에는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색깔의 볼펜과 형광펜(색깔이 다채롭기는 크레파스와 색연필이 더 하겠지만, 원래 애들은 으른의 물건을 동경하는 법이다.)이 줄을 맞춰 칸칸이 들어 있었다.
물건의 오와 열을 맞추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질서를 허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렸을 적의 나는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노트와 필기구의 대형을 헤집었다. 종이 위에 그리고 마음에 안들면 찢고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였다. 엄마가 데리러 오면 실컷 가지고 논 잔해를 남기고 집으로 훌쩍 떠났다. 내가 가고 나면, 경비 교대를 마치고 돌아온 영복이 ‘또 몽콕 왔다 갔네.’ 하고 어지른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줬다고 한다. 뭐라 더라 ‘서랍만 열어봐도 왔다간 줄 안다.’ 라고 했다. 손놈이 따로 없다.
어지르기는 선수인데 밥 먹는 속도는 느렸다. 너무 느려서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고나서’는 나에게 예외였다. 정순이 안방에 상을 차리면 내가 먼저 수저를 들었다. 한참 뒤에 정순과 영복이 식사를 하는데, 내가 고작 몇 숟갈 뜬 동안 이미 영복은 식사를 마치고 냉수 한 사발 마시고 있다. 그러고 나서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내가 밥 먹는 걸 관전했다. 어느 천년에 다 먹나 하고 쯧쯧 혀를 차기도 하고, 누운 채로 발을 뻗어서 발가락으로 팔뚝을 꼬집기도 했다. 최근 전해 들은 얘기로는 영복의 식사 시간 자체가 당겨졌다고 한다. 저녁을 오후 3시에 먹는 대나.
‘정말로 닮은 점이 없다.’ 마침표를 찍고 노트북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영복은 노트 쌓아 두기를 좋아하고, 돋보기안경을 쓰고 매일 업무 보고서 같은 일기를 썼다.
모년 모월 모일 날씨 맑음.
야간 근무 후 귀가. 오후 두 시까지 취침,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키를 맞춰 서 있는 새 공책들 위에 가로로 눕혀진 공책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일기야, 생각하고 다시 책장에 꽂은 기억이 난다.
어렸을 적의 나는 용돈이 적어 노트를 쌓아 둘 여력이 없었고, 일기는 숙제로만 썼다. 내 손으로 돈을 버는 지금, 자취방 책장엔 뭐 라도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산 빈 노트와 찔끔찔끔 손댄 노트들이 꽂혀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일기장에 회사 욕을 갈겨쓴다. 영복과 나의 공통점은 외모나 성격이 아니고 취미였다. 공통점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 것에 비해 공통점을 찾는 데는 너무 짧은 시간이 걸렸다. 허무하고 입에 쓴 맛이 감돈다. 자의식을 가지고 내 모습을 빚는 동안에 영복 역시 변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과는 달리, 이제 영복은 예전만큼 정리정돈을 철저히 하거나 재빠르게 몸을 움직일 기력이 없다. 돋보기를 쓰고 일기를 쓰지 않는다. 영복이 오후 3시에 이른 저녁을 먹게 된 건 행동이 재빨라져서 가 아니라 줄어든 뇌가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나를 보고 “왔나?” 인사하고 서는 슬그머니 정순에게 다가가서 근데 쟈가 누고, 묻는다.
지금까지 관심도 없었던 영복과 나의 닮은 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영복에게 문제가 생기면서부터다. 어째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바뀌거나 없어져 버릴 때 그것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지. 나와 영복의 공통점을 찾으면서 내 주변 사람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나를 만든 재료라는 것을 알았다. 새삼 나를 둘러싼 것들이 점점 변해가고 종국에는 사라진다는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나의 일부를 잊지 않기 위해서, 사라지려는 나를 놓지 않겠다는 이기심에서 영복에 대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