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아흔살
영복이 긴 여행을 떠난 지 넉 달 쯤 됐다. 엄마는 혼자 남은 정순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 종일 대화 할 상대가 없다는 것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생각한다.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시간을 보내면 인지력이 퇴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이다. 엄마는 편협해진 대화 소재를 그 증거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일방과 쌍방의 구분 없이, 정순이 사람과 소통하는 채널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 엄마, TV, 병원 의사다. 정순은 성인 가요 방송을 보거나 의사에게 진료를 보고 나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 내용이란 대충 이런 식으로 흐른다.
내가 현업 가왕을 봤는데 그 가수 이가 참 곱더라
오늘 진료 본 그 의사가 피부가 참 희더라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기사 얼굴에 점이 많더라
일방적인 소통에서 얻을 수 있는 상대에 대한 정보란 겉모습 정도가 최선이겠으나, 기승전그사람얼굴이어쩌고로 끝나는 정순과의 대화에 엄마는 몸서리를 냈다.
“엄마, 다시 교회에 나가 보실래예?”
정순은 무릎 수술 후 몇 년 간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정순이 예전처럼 또래 권사들과 교류를 하면 대화의 개선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달에 한 번 정도 교회에 출석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정순은 허리가 아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고 택시비가 아깝다며 거절했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커트비 보다 택시비가 더 나오는 미용실에는 가면서, 니는 이해가 가나?”
정순의 머릿속에 들어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전해들은 몇가지 단서로 정순이 교회에 돌아가는 것을 꺼리는 이유를 짐작해 볼 수는 있었다.
“그거, 외모 때문에 자존감 떨어져서 그런거 아닌가?”
“니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나?”
엄마는 시험지에 적은 답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확인 받은 것처럼 소리를 높였다.
“그래, 몇 년 전에는 팔을 내밀더니 ‘이 검버짐 좀 봐라, 추잡제? 밖에 나가서 느 엄마라고 말하지 말아라.’ 하더라고. 너무 화가 나서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예!’ 소리를 질렀는데. 외모에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지 몰랐지.” 엄마는 한숨을 쉬며 “근데,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잖아. 어느 정도 포기를 해야지.” 했다.
일주일에 두 어번 정순을 통원시키고, 집에 들러 부족한 생필품과 부식을 채워 넣고, 각종 공과금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엄마의 입장에선 정순의 외모 고민은 팔자 편한 걱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모 문제는 노인이 된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인정 욕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모든 노인이 노화에 초연했다면, 세상엔 안티 에이징 제품이나 시술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순의 근심을 해결할 방도가 미용 시술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이건 단순히 손상된 외모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는, 노화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에 가까운 것 같다. 평생을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산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란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가치이자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주름지고 검버섯이 생긴 얼굴을 보는 일은 긴 시간을 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아니란 사실과 직면해야 하는 대사건이다. 정순의 경우엔 준수한 외모였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강건함이나 섬세한 감수성, 예리한 지성 어쩌면 그 모든 것이다. 시간에 의해 변해버린 나를 마주하는 일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다.
정순의 이야기 전해 듣기 전에는, 막연히 할머니가 되면 젊은 시절의 모습을 잃더라도 불안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혹과 지천명을 거쳐 확고부동한 자아를 정립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은 일흔 둘까지 살아서 이후의 삶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불경하다ㅋㅋ)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나는 초지일관, 확고부동하게 단단해 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주무르는 대로 끊임없이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게 아닐까.
정순은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겨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는 중이다. 센터에 간 첫 주에는 “나 같이 머리 하얀 사람이 없더라!”(아님) “그 사람 등은 굽었는데 손이 곱더라.”하고 엄마의 복장을 한 차례 뒤집어 놓았지만, 차츰 외모에 대한 이야기 보다 주변에 앉은 사람 나이가 동갑이다, 자식이 몇 명이다 개를 키운다더라로 화제를 바꿔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을 뒤바꿔 버리는 것이 시간이지만, 변한 모습에 적응하게 하는 것 또한 시간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