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사는 마음

진짜는 부담스러워서

by 김몽콕

노트 사는 걸 좋아한다. 사고 난 후의 쓰임은 제쳐두고, 새 노트를 골라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 순간에는 앞으로 기깔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세상엔 멋진 노트가 너무 많은데 그 노트를 다 써보고 죽기엔 인생이 짧아서 새 노트를 살 때는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특히, 일기장으로 쓸 공책을 골라야 할 때가 그렇다. 그때가 되면 틈만 나면 인터넷 창을 켜서 쇼핑몰, 블로그 리뷰를 읽어보고 대형 문구점 매대에 진열된 노트는 죄다 들춰 본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노트를 쓰는지 눈여겨본다.

내가 속해 있는 글쓰기 동호회엔 하이엔드 노트를 가지고 다니는 회원이 꽤 보인다. 이니셜이 각인된 고급스러운 가죽 커버 속 노란색 리갈 패드, 금색 은색 실로 자수가 놓인 화려한 패브릭 커버 노트, 암청색 가죽 표지가 있는 여권 크기의 여행 노트, 스티커와 PVC 커버로 멋을 낸 아이보리 색 사철 제본 노트, 수국색 표지에 엘라스틱 밴드가 달린 손바닥 만한 양장 수첩. 어쩌다가 소망 목록에 있는 노트를 쓰는 사람이 보이면 한참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면 누군가가 “그러지 말고, 하나 사요.” 구매를 부추긴다. 이번에는 정말로 ‘그 노트’를 써보자, 다짐하며 결제창을 띄워 보는데. 꿈에 그린 노트의 가격은 ‘그돈씨’ 수준으로 사악하다. 결제 버튼을 맴돌던 손가락으로 뒤로 버튼을 누르고, 그 노트의 저렴이를 검색한다. 노트를 고르는데 까다롭기는 한데, 어째 사는 노트마다 X스킨의 감성을 담았다거나 호X니치 느낌 그대로라는 짝퉁이다.

가격이 싸거나 비싼 것과는 상관없이 일단 새 공책을 손에 쥐면 기분이 좋기는 한데, 구매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손을 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죄책감이 든다. ‘또 글 쓴 답시고 노트만 사다 날랐다.’ 고 침울해할 시간에, 노트를 펼쳐서 뭐라도 쓰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신중하게 고른 공책에 정돈되지 않은 난잡한 낙서를 늘어놓고 싶지 않다는 요상한 강박이 있다. 만약 그 노트가 메이커 상품이라면, 거금을 들인 만큼의 죄책감과 완벽주의 때문에 용도대로 쓰이지 못하고 책꽂이에서 먼지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 정리를 하다가 텅 빈 노트를 발견하고 ‘쓰라는 글은 안 쓰고!’ 또 자책을 하고 머리털이 남아나질 않고…… 이러한 연유로 사용감은 오리지널과 유사하면서도, 정리되지 않은 낱말을 써도 가책을 덜 느끼는 이미테이션을 선택해 왔다.

하이엔드 제품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과 하이엔드 제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의 타협으로 짝퉁을 선택했지만, 꿈에 그린 노트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려워서 주변 사람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했다. 그는 파란 펜으로 빙하기 아포칼립스에 대비해 풍만한 몸매를 숭상하는 컬트집단이 나오는 픽션 아이디어를 쓰다가 “차를 살 때는 꼭 360도 어라운드 뷰 기능을 넣어야 해요.” 하고 다음 장에 이렇게 차들이 주차된 공간에서도 주차가 가능하다며 그림을 그려 설명했다. 상세한 예시로 360도 어라운드 뷰의 중요성을 완전히 숙지했지만, 꿈의 노트에 낙서가 생겼다는 생각에 불쑥, “소중한 노트를 낭비하시는 것 아닌가요?” 하고 말했다.
“아, 그런가.”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볼펜 뒤에 달린 고무로 차로 빽빽한 골목길을 지웠다.

풀리지 않는 내적 갈등이 불쑥 튀어나와서 나만의 갈등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불쾌하게 만든다. 이너피스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이 갈등 같지도 않은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겠다고 설치는 한, 빈 노트에 느끼는 죄책감과 부담이 사라질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다르게 보면, 비어 있는 종이에 대한 강박이 무엇이라도 쓰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견딜 만한 죄책감을 스스로에게 안기기로 했다. 꿈의 노트 리스트의 네 번째 순위쯤에 있는 노트의 구매 버튼을 눌렀다. 새 노트가 곧 배송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죄책감은 내일이나 내일모레쯤의 내 몫 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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