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이

눈물이 너무 적네요

by 김몽콕

“눈물이 너무 적네요.”


장장 세 시간에 걸친 안검진 결과, 요즘 들어 눈이 침침한 이유는 황반 변성이나 조기 백내장, 막망박리, 녹내장 때문이 아니고 안구건조증 때문이었다. 빈 손으로 병원에 갔다가 인공눈물을 양 손에 아홉 상자 씩, 도합 열 여덟 상자를 받아서 집에 돌아왔다.


"아직 별 말 없제?"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 앞에 과장되게 검은 봉지 두개를 내려 놓았다.


"어어."


엄마는 이십리터 짜리 봉지 두 개 분량의 약상자에 감명을 받은 것 같지도, 그렇다고 티브이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처방전에 투약량 '1080ea' 가 적힌 것을 발견하고 놀라 안과에 확인 전화까지 했다며, 약상자를 커다란 봉투에 쓸어 담는 약사를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만, "원래 종합병원에 가면 약을 가방으로 가지고 나온다." 엄마는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며 시큰둥 하게 대답했다. 신통찮은 반응에 실망해서 약 봉다리를 들고 내 방에 들어갔다.



“몽콕아, 내 점심 먹고 밖에 나갈 건데 니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엄마가 불러서 거실에 나왔다.


“오늘도 병원에 가나? 뭔데? 오늘은 눈이 아파서 서류 작업은 안된다.”


“교회 목사가 병원에 오겠다고 하네. 니는 수선집에 맡겼던 아빠 바지 찾아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돈 돌려준다는 우편물 이거 부치고 또 사진관에서 사진을 크게 뽑아와야 하는데……”


인화해야 한다는 사진은 엄마가 목사와 함께 병원에 가야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영정을 뽑아 오라고?”


“어.”


엄마가 크로스백에서 노란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서 손바닥 크기만한 흑백 사진이 나왔다. 영정으로 쓸 것이라고 내민 사진을 본 첫 인상은, 황당함이었다.


“사진이 이것 밖에 없나?”


“외할머니가 이거를 주던데.”


“할매가 몇 년 전에 영정 사진 찍을 때, 할배는 뭐 했는고?”


정순이 영복의 영정 사진으로 쓰라고 준 사진은, 서른에서 마흔 쯤으로 모이는 젊은 영복의 사진이었다. 최근에 찍은 사진은 없느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근래에 영복이 찍힌 사진이라면, 주간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가 상태 보고용으로 전달한 사진일테니까. 엄마는 영복이 약해진 모습이 보기 싫다면서 문자를 확인하고 지웠다.


“젊었을 때 사진을 영정으로 쓰기도 하더라. 김자옥이나 김수미도 그렇고.”


“그 사람들도 오십 년 전 사진을 영정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정말로 다른 사진은 없는가? - 정순이 이것 뿐이라고 했다. 하다 못해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써보는 건? - 주민등록증도 오래되서 사진이 다 뭉개졌더라. 그러다가 머리를 퍼뜩 스친 것은, 사진 편집 AI였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사람 얼굴 나이를 줄였다가 늘였다 하던데.”



친구들끼리 장난 치려고 쓰는 페XX앱을 영정사진을 만들려고 설치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간단하게 영복의 사진에 ‘늙음’ 필터를 씌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젊은이의 둥글둥글한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을 좀 그린 수준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영복의 얼굴과 닮게 해 보려고 이런저런 옵션을 건드리다가 ‘멋지게 나이들기’, ‘수염’ 옵션을 눌러버렸다. 생판 모르는 서양 할배 얼굴로 변해 황급히 옵션을 껐다. 아마도 인공지능이 서구형 얼굴을 주로 학습한 모양이었다. 기본 늙음 옵션을 적용한 영복의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할배 턱이 이것 보다 더 갸름한 것 같지 않나?” 물었다.


“저 때가 제일 살 쪘을 때 라더라. 근데 머리가 너무 시커멓고 숱이 많다.”


흠결 없는 외모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어플이니 만큼, 구태여 머리숱을 줄이는 기능을 제공할리는 없었다. 헤어스타일에서 색상만 백발로 변경했다. 그레이 스케일 사진 속에서 새하얀 머리카락 만 붕 떠있는 것 처럼 어색하게 보였다.


“예전에는 새까맣게 염색을 하고 다니 긴 했지.”


백발 필터를 취소하고, 둥근턱을 만족할 만큼 깎아냈다.


“이제 좀 비슷해 졌나?” 하고 휴대폰을 들이밀었지만, 만들어진 사진 속의 영복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염색시술을 받을 수 있던 때의 영복, 흰 머리에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된 영복, 병상에 누워 있는 영복 중 어느 쪽과 비슷한 것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화면 속의 늙은 영복을 본 엄마는 “사진은 다음에 뽑자.” 하면서 휴대폰을 돌려줬다. 당장은 영정을 뽑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도 했다. 어쨌거나, 아직 영복은 세상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잠깐의 유예일 뿐이며, 가까운 시일에 다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까, 엄마랑 할배랑 완전히 똑같이 생겼던데.” 코먹은 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평소에 되게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줄 알겠다.”


타박을 들으며 내 방에 들어가서 인공눈물 상자 대신 휴지를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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