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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ecO Oct 12. 2022

눈물 나는 날

오늘은 그냥 한바탕 울고 싶은 날이다. 부러워서? 좋아서? 서글퍼서? 서운해서?




 회사까지 한정거장을 남겨두고 그냥 무작정 내렸다. 걷고 싶었다. 날씨가 좋았다. 오랜만에 걸으면서 생각을 안 했다. 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을 안 했다. 이상하다.


 아침부터 카톡방이 시끄럽다. 우리 팀 신입사원의 생일이었다. 많은 축하 메시지 중 '막냉이 오늘 하루 더 행복하길'이라는 말이 기억 속에 남는다. 흔히 말하는 칼 졸업, 칼 취업으로 직전까지 나는 거의 막내였는데 저런 축하를 받아보지 못했다. 부러웠다.


 오전에 팀 주간회의를 했다.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시킬 줄 알았는데 마지막 순서로 새로 오신 책임님과 나에게 발언 기회를 주셨다. 책임님이 보고하신다. 5일 차 선임님은 벌써 타 부서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업무를 파악하고 외부 미팅까지 계획하셨다. 하필 그다음 차례가 나였다. 준비하지 않았는데.. 일단 급히 내가 받은 일 2가지에 대해 간단히 보고해본다. 간단히라고 했지만 별거 아닌 일을 맡고 있는 것이 들킬까 봐 대단한 일인 양 말했다. 다행히 팀장님이 별다른 말는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곧 출산 및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온전히 혼자 업무를 진행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자리로 돌아왔다. 옆자리 책임님과 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지금까지 시키는 일만 하려고 너무 안일하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경력직이다.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진행 중인 건중 내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찾아본다. 역시나 '누군가 말해주겠지' 하고 놓친 부분이 있었다. 사수가 많이 바빠 보여 물어볼 눈치를 살핀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내 사수에게 질문을 이어간다. 내가 질문할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눈치만 한참 봤다.


 점심은 막내 직원의 생일을 맞아 팀장님이 사주셨다. 집밥처럼 한상이 나오는 곳인데 나물무침이 참 맛있다.


 내가 챙겨야 할 일들을 스스로 신경 써서 일을 시작하니 오후에는 분주했다.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팀장님이 나를 부를 타이밍도, 나를 부를 이유도 없기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한 번 더 부르셨다. 자리로 가는 중 이 자료가 어디서 난 건지 물으셨다. 좀 전에 대용량 첨부파일 메일을 발송했는데 그 첨부파일이 타 부서 내부 자료라서 출처를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답변을 준비하고 자리에 가서 보니 내가 만든 자료였다. 사수가 지시하여 작성하여 어제 보내 둔 자료였는데 수신확인 시 계속 '읽지 않음'이라 바쁘셔서 못 본 줄 알았는데 그사이에 보시고 전달한 듯하였다. 그 자료가 팀장님한테까지 전달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당황했다. 당황해서 말이 주절주절 나왔다. 대답이 끝난 후 팀장님이 '잘했어요!'라는 말을 살짝 높은 톤으로 박수 한 번과 함께 해주셨다. 좋았다. 전 직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잘했다 라는 말을 들었던 때가 스쳐갔다. 이번도 마지막일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출처는 잘 설명드렸지만 그 뒤이어진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오늘 랜 자산 관련 조사가 있었다. 이 이야기가 나오면 노트북 예산을 잡아달라고 말씀드려야 한다고 사수가 알려줬기에 이 사실을 알렸다. 갑자기 기존 직원들끼리 모여서 조용히 쑥덕대기 시작했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관리가 어렵고 귀찮기에 그냥 이 노트북을 그대로 사용하게 하면 안 되겠냐는 말이었던 것 같다. 어지간하면 그냥 사용하겠다고 하겠는데, 업무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서러웠다. 난 계약직이다. 이 부서에서 수치를 다루고 수치가 곧 돈을로 이어지는 업무를 하지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이제 010이라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면 내 이름을 밝히며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았더니 HR이었다. 드디어 계약서를 쓴다. 계약서를 쓰러 단숨에 21층으로 올라갔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계약서에 적힌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계약 만료 시 정규직 전환 불가'


역시 정규직으로 합격한 중견기업에 갔어야 했나..


 오늘 노트북 사건도 그렇고 처음으로 내 선택에 의문을 가진 날이었다. 여로모로 눈물 나는 날이었다.



스마트워킹데이라서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출근할 때처럼 한 정거장을 걸어갔다. 퇴근길엔 생각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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