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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ecO Oct 04. 2022

애매한 존재

슬슬 피곤이 누적되기 시작하는 수요일, 출근 4일 차



 오늘은 지하철 정기승차권 충전과 어제 시위로 지연된 지하철이 걱정되어 조금 일찍 나왔다. 일찍 나가고 싶어서 마음은 급한데 오늘따라 손은 왜 이렇게 느린 건지 답답해서 혼났다.


 2가지 걱정 모두 문제없이 수행 후 무사히 도착하여 지하철을 내렸다. 딱 맞춰 그때, 오늘부터 내일모레까지 다시 시위가 이어진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늘은 왜 문제없이 도착했지?라는 생각이 들어 시간을 보니 8시 11분이었다. 그렇다 시위는 8시 시작이었고, 나는 7시 58분쯤 지하철을 탔다. 운이 좋았다.


 자리에 앉아서 PC를 켜니 켜지다 말고 경고창이뜬다. 업무 시작 30분 전부터 PC를 켤 수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사원증 태그시 엘리베이터 배정 번호 확인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ㅎ) 30분이 되자마자 클라우드 PC에 접속한다. 사내 포털에 접속하니 팝업이 하나 더 뜬다. 앞의 말은 기억이 안 나고 기억나는 건 '한 시간 일찍 퇴근하자!'라는 말뿐.. 뭐지? 궁금해하며 업무를 시작한다.


 매주 수요일 오전은 팀 주간회의 날이다. 첫 출근날 바로 주간회의부터 참석하여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고 있으나, 나는 아직 업무를 전담하여 진행하고 있지 않음으로 보고할 내용이 없었다. 팀원들이 보고하는 방식을 잘 들어본다. 팀장님은 구체적인 업무보고 방식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또한 자신을 거치지 않고 상무님께 직접 보고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 듯한데, 문제는 본인이 상무님과 이야기하라고 먼저 지시한다는 것인 것 같다. 팀장님은 역시 쉽지 않으신 분 같다.


 점심시간이다. 다른 팀원 분들은 약속이 있다고 가셨고, 나와 팀장님, 그리고 아르바이트 친구만 남았다. 오늘 점심 메이트는 이렇게 셋이다. 지하 식당 메뉴가 마음에 든다. 두 가지다 마음에 들어서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하는데 팀장님께서 '떡볶이 먹으러 갈까요?'라고 말을 하셨다.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떡볶이가 별로 생각나지 않았지만..


 떡볶이를 먹으며 팀장님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누가 봐도 내향적이신 팀장님은 책 이야기를 할 때 말이 많아지신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떤 책을 즐겨볼까?'라고 나긋이 내뱉으신 후 자신이 최근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여태 본 팀장님 모습 중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단순 책을 좋아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쓰는 작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보이셨다.


 오후에는 내일 새로오는 신규 입사자의 웰컴 키트를 수령하려 21층에서 인재확보팀 직원을 만났다. 내가 받았던 웰컴 키트와는 조금 달라서 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새로 오시는 분은 정규직인 걸까? 그래서 나와 다른 걸까? 잘 갖춰진 웰컴 키트에 노트북까지 한가득 가지고 자리로 돌아오니 오늘 재택근무를 하는 신입사원 자리 한편에 책상 매트 같은 재질에 CEO의 입사 축하 멘트가 새겨진 것을 걸어둔 것을 보았다. 맞다 난 계약직이었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부럽기도 하고 왜 저 자린 내 자리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4시 30분 오늘은 스마트 워크데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뭔가 했더니 5시에 불이 꺼지고 PC 종료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아침에 팝업으로 본 내용이 잘 못 본 게 아니었나 보다. 매월 2, 셋째 주 수요일은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날이라고 한다. 우리 팀원들은 자리를 뜨지 않아서 눈치를 슬슬 보다 10분 뒤에 퇴근했다. 요즘 MZ세대들은 이런 것에 눈치 보지 않는다는데.. 나는 그들의 문화에 뒤쳐지는 MZ세대 인가보다.


 퇴근길 사회적으로 회사 내부적으로 나의 애매한 위치에 대해 끊임없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지금 결론 지어볼까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1년,
그 일 년만 후회 없이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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