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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ecO Oct 06. 2022

뜻밖의 제안

입사 6일 차 꾀나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오늘도 지하철 시위로 3번이나 갈아타는 루트로 출근했다. 오분만 일찍 나오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그 오분이 정말 어렵다. 아침에 출발하는 오분이 특히나 더 빨리 흘러가버리는 느낌이랄까?


 용산역에서 내려 에어팟을 끼고 거리를 걷는다. 선선한 날씨와 음악에 맞춰 당당하게 걷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다.


 오늘 오전에는 첫 업무?라고 하기엔 간단한 퀘스트를 받았다. 드디어 내 직무 분야의 업무 지시를 받았다. 맨날 앉아서 자료만 보는 게 눈치 보였는데, 드디어 '나 할 줄 아는 것 있어요!, 저 이 분야 경력 입사자입니다!' 티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검증기관과 검증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검증계획서를 받는 일인데, 내가 해왔던 일에 비하면 일이라고 말하기도 우스운 일에 잠시 긴장한 내 모습이 웃겼다. 특히 전화를 걸고 소속을 밝힐 때 정말 내가 여기 소속이라고 말해도 되나 괜히 눈치도 보이고 그랬다. 일정 조율 후 선임님께 보고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일의 흐름 순서로 보고해서 선임님이 처음에 당황하셨다. 그래서 바로 결론을 말씀드렸더니 안도하셨다. 속으로 혼자 웃었다. 몇 년 차인데 이런 보고를 수다 떨듯 주절주절 말하는 것인가..! 다음부터는 더욱 주의해야겠다.


 옆자리 신규 입사자분은 책임으로 입사하셨는데 나와 겹치는 업무가 많을 것 같다. 자리를 세팅하고 신규 입사자 가이드를 확인하신다. 그러던 중 법인카드를 발급했냐고 물어본다. 본인 법인카드 신청 중 궁금한 것이 있었나 보다. 나는 아직 발급하지 않았다고 하자 이유를 물었고, 혹시 몰라서라고 둘러댔다. 사실 나는 계약직이기에 법인카드 발급이 불가할까 싶어 보류 중이었다. 인사팀에서는 팀 내 규정을 따르라고 했지만 알려주는 사람도, 딱히 먼저 묻고 싶지도 않았다.

 책임님은 나에게 본인이 받은 메일과 같은 안내를 받았는지 묻는다. 입사 관련 교육 같았는데, 나는 정규직이 아니라 받지 못했나 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사실 나는 계약직이라며 그래서 이 메일을 받지 못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책임님과 옆자리에서 장난도 치며 조금 친해졌다. 그리고 본인은 유연근무로 근무시간을 옮겼다며 나 또한 선택근무를 신청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저는 나중에 하려고요' 하며 상황을 넘겼다. 팀에서 선택근무를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직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지 못하는 내가 덜컥 선택근무제를 신청하면 아이런이 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나중으로 미뤘다.


 화상회의가 있었다. 기존에 굴러다니던 노트북을 지급받는 나의 노트북은 상태가 좋지 않다. 이어폰 단자를 인식하지 못해 노트북과 연결한 모니터에 이어폰을 연결해서 인지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협업이 잦은 팀에 내 소개를 하는데 소리가 안 들린다는 소리만 잔뜩 듣다가 팀장님께서 대신 소개해줬다. 준비가 덜 된 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리고 서럽다.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닌데..


 퇴근 10분 전이다. 가볍게 자리를 정리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건너편 대각선에는 신입사원이 앉아있다. 우리 본부의 신입사원은 단 2명 한 명은 우리 팀이고 한 명은 언론호보팀에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이다. 그 사람 모니터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내 사진이다. 그 신입사원은 본인 모니터에 띄워진 얼굴의 주인공이 그 상황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 듯 모니터 화면에 내 프로필을 크게 띄워 높고 앞자리 책임님과 이야기 중이다. 뭘까? 나의 무엇이 궁금했던 것일까?


 6시가 되자 PC off 메시자가 켜지고 자리 정리를 시작한다. 그 신입사원이 나를 찾아왔다. 이내 오해가 풀린다. 나를 찾아오고 싶어서 내 프로필을 찾아봤나 보다. 그런데 나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지?

 다짜고짜 월요일 오전에 시간이 괜찮은지 묻는다. 아무런 일정이 없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그럼 시간 좀 내어달라는 말에 무슨 이유인지 되물었다. '사진 좀 찍어주세요' 내가 당황하여 네? 하자 기사에 들어갈 사진 사내모델을 부탁한다고 한다. 살짝 당황 후 기분이 좋았다. 나는 평소에도 사진상 모습이 실제 모습과 많이 달라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터라 한 번 되물었다. 사진이 실물과 다르게 나와서 생각하는 이미지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자 포토샵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며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승낙하는 척 받아들였다.


 사실 팀 내에 20대 직원이 거의 없고, 우리 팀 신입직원도 이미 2번이나 모델을 한 터라 내가 다음 타자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다.

 사실 은근히 주목받고 싶었던 계약직의 마음이랄까?

 신경 쓴 날은 유난히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데 금요일 퇴근길부터 월요일 출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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