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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Aug 01. 2024

8화. 알타이 왕국

<소설구슬> 소설 연재

 이틀 후 새벽, 태용은 우리 안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때 안금성이 그를 조용히 흔들었다.

 “자고 있나?”

 “아니요.”

 “그럼 시작하세.”

 태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노예들은 이미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태용은 우리 뒤쪽의 창살로 다가가 빠른 손놀림으로 창살을 잡아 뜯었다. 녹슨 쇠창살들은 힘없이 뜯겨 나갔다.

 순식간에 쇠우리에는 사람 한 명이 넉넉히 나갈 수 있는 구멍이 뚫렸다. 태용이 먼저 우리를 나오자 다른 노예들도 줄줄이 우리 밖으로 나왔다.

 노예들이 있는 우리 근처에는 보초를 서는 해적이 없었다. 보초들은 대부분 해안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태용은 발소리를 죽인 채 옆에 있는 다른 우리로 달려가 쇠창살을 잡아 뜯었다. 구멍이 생기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노예들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태용은 계속해서 다른 우리들에 구멍을 냈다.

 마지막 우리에서 노예들을 꺼냈을 때는 이미 무기 창고 근처에 무장한 노예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태용은 그들에게 달려갔다. 총을 든 강주원이 그에게 소총 한 자루를 내밀었다.

 “총을 쏠 줄 압니까?”

 “아니요.”

 강주원이 그의 옆으로 와서 총을 장전하고 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 때였다.

 “너희들 뭐야!”

 해적 한 명이 그들을 보고 놀라서 외쳤다.

 “노예들이 탈출했다!”

 그 순간 태용은 순간적으로 총을 들어 해적의 이마를 쐈다.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고함을 지르던 해적은 뒤로 쓰러졌다.

 “잘했어요.”

 강주원이 말했다.

 “이제 시작합시다.”

 그리고 노예들은 일제히 천막촌을 향해서 달려갔다.

 총소리를 듣고 해적들이 천막 밖으로 뛰어나왔다. 하지만 노예들을 총칼로 무장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섬은 총소리로 가득해졌다. 자다 깬 해적들은 잠옷 바람으로 나왔다가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죽었다. 노예들은 미리 계획한 대로 여러 조로 나뉘어 여러 개의 천막들을 동시에 급습했다.

 태용은 그들을 따라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총을 쏘며 해적들을 쓰러뜨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총을 쏘는 것이었지만 그는 단 한 발도 남김없이 해적들의 이마를 꿰뚫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을 맞추는 것이 코앞에 있는 커다란 목표물을 쏘는 것처럼 쉽게 느껴졌다.

 천막에 있던 해적들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노예들에게 공격당해 쓰러졌다. 자신의 천막 안에 총을 갖고 있던 해적들도 몇 명 있었으나 수백 명의 노예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여긴 다 정리했습니다!”

 강주원이 외치자 저쪽에 있던 다른 남자 한 명도 외쳤다.

 “이쪽도 모두 해치웠소!”

 노예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 때 강주원이 그들을 진정시키며 외쳤다.

 “이제 곧 해안에 있던 보초들이 이리로 몰려올 겁니다! 우리가 먼저 높은 곳을 점거하고 놈들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천막촌에서 약간 떨어진 평원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해변과 이어진 숲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보초를 서고 있던 해적들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양쪽은 땅에 납작 엎드려 서로를 향해 총을 쐈다.

 태용도 엎드린 상태에서 총을 메고 앞으로 기어갔다. 그는 제일 앞으로 나선 뒤 총을 다시 장전하고 먼 곳에 있는 해적들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해적 여럿이 풀숲에 엎드려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하나같이 훤히 보였다. 태용은 침착하게 하나씩 명중시켰다. 그는 혼자서 스무 명을 쓰러뜨린 뒤 총을 재장전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남은 건 나무와 바위 뒤에 숨어 있는 자들이었다. 태용은 총을 들고 그들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태용의 발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총을 쏘려는 해적들을 태용은 반 박자 빠르게 먼저 총을 쐈다. 태용은 자신이 쓰러뜨린 해적 한 명의 총을 집어서 등에 메고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가 나무를 타는 속도는 원숭이보다도 빨랐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해적들을 겨냥해 한 명씩 쐈다. 한 명을 맞추는데 총알 한 발이면 충분했다.

 이윽고 태용은 나무 아래로 뛰어내린 뒤 강주원에게 달려가 말했다.

 “여긴 모두 해치웠어요.”

 “잘하셨습니다.”

 그 때 그들의 뒤에서 안금성이 달려왔다. 그 역시 소총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북쪽에서 또 다른 해적들이 몰려오고 있소!”

 그 말에 강주원이 외쳤다.

 “그쪽으로 갑시다! 그쪽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놈들이오!”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무렵 섬 안에서 무기를 든 모든 해적들은 노예들의 총칼에 쓰러졌다. 가장 크게 활약한 것은 당연히 태용이었다. 태용은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잡초를 솎아내듯 먼 곳에 있는 해적들을 모조리 해치웠다. 그러자 태용의 귀신같은 저격 실력에 놀란 다른 해적들은 총을 내려놓고 항복했다.

 살아남은 해적들은 서른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노예들은 그들을 결박하여 한 곳에 모아놓고 총을 들고 지켰다.

 그 사이에 강주원과 안금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인근 국가의 해경에게 신호를 보내 구조 요청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반란이 성공하여 베니토 해적들이 모두 소탕되었다고 알렸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태용과 다른 사람들은 미처 풀려나지 못한 다른 노예들을 풀어준 뒤 늦은 아침을 먹었다. 그런 뒤 그들은 해적들의 천막과 배를 뒤져 값이 나가는 물건이 있나 찾기 시작했다.

 태용은 해적들의 대장의 숙소로 여겨지는 커다란 천막 안에서 김용의 검을 발견했다. 검은 칼집에 꽂힌 채 장식대 위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안금성이 검을 들고 태용에게 내밀었다.

 “받게. 이제 자네가 이 칼의 주인인 것 같으니.”

 태용은 한 손으로 칼을 잡았다. 다시 손에 들어온 칼은 전과 달리 신기할 정도로 가벼웠다.

 태용은 칼을 뽑아 칼날을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태용은 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칼을 다시 잡으니 정말 반갑네요.”

 태용이 칼을 살펴보는 사이에 안금성과 다른 사람들은 천막 안에 있던 커다란 궤짝 두 개의 자물쇠를 부서뜨리고 있었다. 궤짝 뚜껑이 열리자 그들은 탄성을 질렀다.

 태용은 칼을 칼집에 꽂은 뒤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기 뭐가 있어요?”

 첫 번째 궤짝 안에는 고무줄에 묶인 지폐 다발이 가득했다. 그리고 두 번째 궤짝 안에는 손바닥 만한 크기의 금괴가 넘칠 만큼 가득 들어 있었다. 그걸 보자 태용의 눈도 커졌다.

 “이건 우리가 나눠 가집시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각자 지폐와 금괴를 챙기기 시작했다. 안금성도 구석에 있던 자루 두 개를 가져와 그 안에 지폐 몇 다발과 금괴 세 개씩을 담았다. 그리고는 그 중 하나를 태용에게 내밀었다.

 “받게. 자네 거야.”

 태용은 묵직한 자루를 받아들며 물었다.

 “근데 이거 우리가 가져도 되는 거예요?”

 “뭐 어떤가? 우리가 지금까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챙길 수 있지.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네는 가질 자격이 있어.”     

 그 날 오후에 알타이 해경이 와서 베니토 해적들의 포로로 있었던 사람들을 구조선에 태웠다. 구조선은 해경이 근처에서 급히 데려온 대형 여객선이었다. 그리고 해경들은 이제는 포로들의 포로가 된 해적들을 해경선에 태웠다.

 여객선에 오르자 태용은 제일 먼저 여객선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못해서 그는 몸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그런 뒤 그는 식당에서 제공되는 깨끗한 음식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여객선의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각자 음식을 갖고 긴 식탁에 앉아 열심히 먹고 마셨다.

 식사를 하는 태용 앞에 음식을 갖고 온 안금성이 앉았다. 태용이 물었다.

 “선생님은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집으로 돌아가야지. 난 원래 알타이 사람일세.”

 태용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금성이 물었다.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할 건가?”

 태용은 숟가락을 들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기계도시로 갈 거예요.”

 “기계도시?”

 “네. 알타이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기계도시가 있잖아요. 그리로 갈 거예요.”

 “기계도시는 왜 가려는 건가?”

 “혹시 소설구슬에 대해 아시나요?”

 안금성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군.”

 “기계도시에 그게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걸 찾아서 기계도시로 가려다가 그만 노예로 끌려가게 됐죠. 이제 다시 소설구슬을 찾으려고요.”

 그는 안금성에게 소설구슬에 대해 설명했다. 태용의 말을 들은 안금성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그런 게 실존한다고 믿는 거로군.”

 “네. 그곳에 반드시 있을 거예요.”

 안금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군. 인생에 목표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꼭 그걸 찾아서 위대한 작가가 되길 바라네.”

 태용도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알타이의 항구에 여객선이 도착하자 노예들은 오랜만에 문명화된 땅에 내렸다. 태용은 그곳에서 안금성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안금성에게 앞으로 남은 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길 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안금성도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꼭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용은 안금성과 헤어진 뒤 항구에 있는 작은 호텔에 들어가 방을 잡았다. 그는 안금성이 준 자루에서 지폐를 꺼내 계산했다. 자루에 들어있는 돈다발의 대부분은 알타이 지폐였다.

 태용은 그날 밤 호텔에서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옷가게에 가서 새 옷을 몇 벌 샀다. 그리고 금괴를 모두 현금으로 바꾼 뒤 은행에 가서 자신의 은행 계좌에 입금했다.

 그는 그 날 항구의 가게들을 돌며 새 가방과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사서 짐을 꾸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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