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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Aug 01. 2024

9화. 기계도시

<소설구슬> 소설 연재

 서쪽으로 가는 여행은 단조로웠다. 기차를 두 번 갈아탄 뒤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계속 향하자 다음 날 저녁 즈음 태용은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알타이의 서쪽 끝에 있는 마을이었다. 태용은 마을의 여관에서 그 날 저녁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태용은 마을을 넘어가 황량한 평원으로 향했다. 이 평원의 한가운데에 기계도시가 있었다. 태용은 배낭을 메고 등에 김용의 칼을 멘 뒤 나침반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었지만 기계도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점심때가 되자 땅바닥에 앉아서 가져온 빵과 육포와 물을 먹었다. 그는 앉아서 잠시 쉰 후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두 시간 정도 더 걸어가자 저 멀리 작은 도시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갈수록 도시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본 기계도시의 모습과 같았다. 태용은 망설이지 않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기계도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구조물과 건물들로 가득했다.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져서 녹이 슬어 있었다. 그리고 풀이 자란 땅 위에는 로봇의 부서진 몸통들이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태용은 유민기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기계도시의 내부로 점점 들어갔다. 무너진 거대한 구조물들 밑으로 들어가자 사위가 어두워졌다.

 한동안 폐허 사이를 걷던 태용의 눈앞에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 공터에는 공터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크기의 무언가가 세워져 있었다.

 우주선이었다.

 태용은 가까이에 가서 우주선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녹슬어 있는 회색의 우주선은 하나의 마을 정도의 크기였다. 우주선의 규모가 너무 커서 전체적인 모양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우주선은 끝으로 갈수록 너비가 점점 좁아지는 화살촉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걸 타고 지구의 인류가 이 행성에 도착한 것이구나.’

 태용은 한동안 우주선을 구경하다가 우주선 옆을 돌아서 계속 앞으로 향했다. 유민기가 말한 금고의 위치는 우주선을 지나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있었다.

 오래 걷지 않아서 태용은 반원 모양의 은색 구조물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유민기가 말한 금고가 있는 건물이었다.

 태용은 건물의 아치형 입구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간 뒤 아래로 난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한참 동안 아래로 이어졌다. 태용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유민기가 알려준 금고의 비밀번호를 되새겼다. 그는 그 번호를 제대로 외우고 있었다.

 이윽고 계단이 끝나고 사방이 은색의 벽으로 막힌 넓은 방이 나왔다. 유민기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금고가 있다고 했다.

 태용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넓은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용은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방을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그 공간에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유민기가 거짓말을 한 걸까? 그런데 죽어가는 와중에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뭐 때문에?’

 태용은 계속해서 정처 없이 방 안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뒤졌다. 그는 은색 벽과 바닥을 두들겨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누구요?”

 순간 태용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뭘 찾는 거지?”

 태용의 눈앞에는 유민기와 비슷하게 생긴 로봇이 하나 서 있었다.

 로봇은 태용에게 다가오더니 그를 아래위로 살펴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태용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로봇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태용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혹시 여기에 있는 금고 못 보셨나요? 굉장히 커다란 금고라고 하던데.”

 그러자 태용의 말에 로봇은 놀란 듯했다.

 “여기에 금고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어떤 로봇한테 들었어요.”

 “로봇한테? 그럼 금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알고 있나?”

 “소설구슬 아닌가요?”

 로봇은 태용을 빤히 쳐다봤다.

 “정말 많은 걸 알고 있군.”

 “별로 많이 알고 있지는 않아요. 전 단지 소설구슬을 찾아서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고 싶을 뿐입니다. 로봇 유민기 선생님은 제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하셨죠.”

 로봇은 잠시 말없이 태용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일단 밖으로 나가세.”     

 태용은 로봇을 따라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서 무너진 잔해 위에 걸터앉았다.

 로봇이 처음부터 전부 설명해달라고 해서 태용은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모두 이야기했다. 고시원에 살던 작가지망생이던 자신이 어느 날 노예도박을 해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고 유민기를 만난 일, 그리고 노예로 끌려갔다가 해적에게 나포되고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일까지, 숨기지 않고 전부 이야기했다.

 태용이 긴 이야기를 마치자 로봇은 말없이 턱을 괴고 땅을 내려다봤다. 태용은 로봇의 몸을 훑어봤다. 이 로봇은 유민기보다 몸이 더 낡고 녹슬어 있었다. 태용은 그 역시 유민기처럼 최소한 5천년 이상을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나긴 세월을 살아왔다면 더 이상 로봇이 아니라 산신령 비슷한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태용은 로봇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로군.”

 마침내 로봇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지난 수천 년 동안 들었던 것 중 손에 꼽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야. 자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만. 그런 고생을 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건가?”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는 능력을 얻을 기회잖아요. 절대 포기할 수 없죠.”

 로봇은 태용의 눈을 응시했다.

 “난 자네의 그 집념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해. 인간의 집착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지. 난 자네와 같은 남자를 한 명 알고 있어.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얻기 위해서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

 “그게 누군데요?”

 “최승독이라고 아는가?”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그럴 테지. 그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일세.”

 “어떤 일 말인가요?”

 로봇은 양 팔을 활짝 폈다.

 “모든 것.”

 그러더니 한 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가리키더니 다음으로 땅을 가리켰다.

 “모든 것 말일세.”

 태용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그러자 늙은 로봇은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태용은 로봇이 한숨을 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로봇이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자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으니 나도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네. 아마 내 이야기도 자네의 모험만큼 흥미로울 거야.”     

 “유민기라는 로봇이 자네에게 한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사실이야. 이곳에 있던 소설구슬을 삼킨 인간은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지. 그리고 그 구슬을 만든 것도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유민기가 말한 다른 이야기들은 사실과 다르다네. 나는 그가 자네에게 나쁜 마음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유민기는 아마 비극적이고 무서운 역사를 말하기가 꺼려졌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을 말해주면 자네가 그 구슬을 원하지 않게 될 거라 생각한 것 같아. 그 구슬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거든.”

 태용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로봇은 말을 이었다.

 “수천 년 전에만 해도 이 행성에는 생명체가 살지 않았다네. 유민기가 말한 것처럼 지금의 이 행성은 인위적으로 생명체를 퍼뜨린 결과물이야.

 먼 옛날, 지구의 인류 문명은 크게 발전했다네. 그래서 지구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들을 찾아내서 지구처럼 생물을 번성시키기 위해 여러 척의 우주선을 발사했지. 거대한 우주선들 안에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로봇들이 있었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정보 역시 담겨 있었네. 물론 그중에는 이 행성을 향해 날아오던 우주선도 있었지. 혹시 저쪽 공터에 있는 거대한 우주선을 봤는가?”

 “네.”

 “그게 바로 그 우주선이야. 이 행성의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낸 ‘바리호’일세.

 수천 년 전, 바리호는 먼 우주를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네. 그런데 항해 도중 우주 공간 어딘가에 갈라진 틈 하나를 발견했지. 그 틈 너머에는 ‘옥상’이 잠들어 있는 차원이 있었네.”

 “옥상이요?”

 “그렇지. 바리호는 그 틈 사이로 넘어갔네. 그러자 영겁의 세월 동안 잠들어 있던 옥상이 깨어났지. 바리호는 옥상의 차원에서 며칠 동안 머무르다 원래의 목적을 위해 다시 우리 우주로 돌아와 항해를 계속했네. 하지만 그 전에 옥상이 차원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줬네. 그래서 바리호의 학자들은 우주선 내부에서 차원의 문을 열고 넘어가 옥상과 계속 소통할 수 있었지.”

 “옥상이 무엇이죠?”

 그러자 로봇은 양 손을 펼쳐 보였다.

 “우리 우주는 유일한 우주가 아니라네. 우리 우주밖에는 무수히 많은 다중우주가 있지. 그런데 무한 다중우주 전체를 통틀어 옥상은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일세. 그것은 일종의 신 혹은 의식을 가진 에너지라고 할 수 있네.”

 “의식을 가진 에너지라.......”

 “그렇지. 그것은 영겁의 시간 동안 자신의 우주에서 잠들어 있었네. 그런데 바리호가 처음으로 그것을 발견하고 깨운 거야.

 옥상은 인간들에게 우주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바로 예술적 창조, 그것도 소설을 통한 예술적 창조라고 말했네. 그러면서 자신에게 생명체의 목숨을 바치면 위대한 소설을 쓰는 능력을 주겠다고 했지. 옥상은 그 능력을 작은 구슬의 형태로 생성해서 주겠다고 했네.

 처음에 바리호의 인간들은 옥상과 거래를 하려 하지 않았네. 아무리 위대한 소설이라 해도 생명과 바꿀 수 없다고 했지. 그러자 옥상은 자신이 줄 수 있는 문학적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했지. 그러면서 인간들에게 먼저 개미 한 마리의 목숨을 바쳐보라고 제안했네.

 인간들은 그렇게 했네. 그들은 개미 한 마리 정도면 죽여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야. 인간들은 우주선에 있던 개미 한 마리를 가져왔네. 그리고 그 개미의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옥상과 계약을 했지. 그것은 구두 계약의 형식이었어. 재미있지 않나? 생명을 바치는데 말 한 마디면 충분했던 거야.

 계약을 마치자 그 개미의 몸은 그대로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네. 마치 물이 순식간에 증발하듯, 개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거야. 개미를 없앤 뒤 옥상은 빛나는 작은 구슬 하나를 생성해서 인간들에게 줬네. 그리고 이것을 삼킨 사람은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했지.

 인간들은 그 구슬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했지만, 특별한 점은 찾을 수 없었어. 옥상도 그 구슬은 인체와 정신에 어떤 악영향도 주지 않을 거라 장담했지. 그래서 바리호의 인간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어 그 구슬을 삼켰네.

 그러자마자 그는 엄청난 문학적 영감이 솟아났지. 그는 우주선 안의 자신의 방 안에 틀어박혀 몇 달 동안 글을 쓰기 시작했네. 그리고는 소설 한 편을 완성해서 방에서 나왔네.

 인간들은 옥상의 차원으로 그 소설을 가지고 갔지. 그러자 옥상은 그 작품의 문학적 훌륭함을 숫자로 보여주겠다고 했네. 그래서 인간들은 비교를 위해서 그때까지 쓰인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을 옥상의 차원으로 가져와서 개미의 목숨을 바쳐 얻은 소설 옆에 나란히 놓았네. 그러자 두 소설 위에 숫자가 생겨났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위에는 숫자 1이 생겨났네. 그리고 그 소설의 문학적인 훌륭함을 1이라 했을 때, 개미 한 마리와 바꾼 소설 위에는 무려 백만 자리 숫자가 생겨났네.”

 “백만 자리요?”

 태용이 경악하며 물었다.

 “백만이 아니라 백만 자리라고요?”

 “그렇지. 생명을 바쳐서 얻은 소설은 그만큼 훌륭했던 거야.

 깜짝 놀란 인간들은 이번에는 쥐 한 마리의 목숨을 바쳤지. 그러자 다시 옥상은 작은 구슬 하나를 줬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그 구슬을 삼키고 1년에 걸쳐 소설 한 권을 써냈네. 그리고 그 소설을 옥상의 차원으로 가져가자,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더 큰 숫자가 만들어졌어.”

 “이번에는 얼마였나요?”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나도 모르네. 다만 이건 기억해. 손바닥만한 크기의 숫자들이 아주 길게 이어졌는데, 숫자의 길이가 지구가 속한 태양계의 지름만큼 길었네. 그래서 그게 정확히 몇 자릿수인지 셀 수가 없었지.”

 “세상에......”

 “바리호의 인간들은 이처럼 훌륭한 소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네. 그래서 이번에는 소 한 마리의 목숨을 바치고 구슬을 얻었지. 그 구슬을 통해 얻은 소설을 쓰는 데는 3년이 걸렸네. 그리고 3년 후에 완성된 소설을 옥상의 차원으로 가져갔지. 그러자 그 책 위에 뜬 숫자의 길이는 우리 우주의 지름보다 더 길었네.”

 태용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그게 대체 몇 자릿수에요?”

 “나도 모르겠네.”

 로봇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인류는 이렇게 해서 세 편의 위대한 소설을 얻었네. 그러자 옥상은 만약 인간의 목숨을 하나 바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작품을 쓰게 해주겠다고 했네. 그리고 한 번에 많은 사람, 많은 생명의 목숨을 바친다면 그보다 더 위대한 소설을 쓰게 해주겠다고 제안했지. 상상할 수도 없이 위대한 소설을 말이야.

 바리호의 인간들은 고민에 빠졌지.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얻을 수 있다면, 몇 사람의 생명 정도는 희생시킬 수 있는 거 아닌가? 인간들은 회의를 열었네. 그 과정에서 많은 의견이 나왔지.

 그런데 바리호에는 최승독이라는 사람이 있었네. 그는 뛰어난 학자였지만 정신이 이상한 자였지. 최승독은 어느 날 몰래 옥상을 찾아가서 자신은 무한을 원한다고 했네. 그 자는 ‘무한’이라는 개념에 광적으로 집착하던 자였어. 최승독은 옥상에게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했네. 그러자 옥상은 무한한 것을 창조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어려운 일이라고 대답했네. 그러면서 만약 무한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방법은 딱 한 가지, 최승독을 제외한 무한 다중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목숨을 전부 바쳐야 한다고 말했네.

 ‘내가 그러겠다고 한다면 그럴 수 있는 거요?’ 최승독이 묻자 옥상은 그렇다고 했네. 옥상은 지성체가 자신을 깨운 순간부터 누구든 자신과 계약한다면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없애버릴 수 있다고 했지.

 그래서 최승독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네. 그러자 옥상은 그에게 물었지. ‘만약 네가 계약을 한다면, 넌 비록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긴 하겠지만 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너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할 것인가?’ 그러자 최승독은 이렇게 대답했네. ‘상관없소. 물론 그 위대한 작품을 읽고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나, 그럼에도 무한히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내 손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소.’ 그래서 결국 둘은 계약을 했다네.”

 “계약을 했다고요?”

 “그래.”

 “아니 그러니까,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다 죽였단 말이에요?”

 “그래.”

 로봇은 담담하게 말했다.

 “옥상은 무한 다중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소멸시키고, 그 모든 생명을 전부 흡수한 다음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아서 ‘무한의 소설구슬’을 생성했네. 그리고 그 구슬을 생성한 직후 옥상 역시 완전히 소멸해버렸지. 옥상이 있는 차원마저도 소멸해 버렸어.”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로봇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해서 최승독은 무한 다중우주 전체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생명체가 되었지. 그는 무한의 소설구슬을 쥐고 한참을 살펴보다가 구슬을 삼키려 했네. 그런데 그 때 공격을 받은 거야.”

 “누구한테요?”

 태용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모든 생명체가 다 사라졌다면서요.”

 “그렇지. 하지만 생명체는 소멸됐지만 인공지능은 소멸되지 않았네.”

 “그럼 로봇이 최승독을 공격했다는 건가요?”

 “그렇다네.”

 로봇은 팔짱을 끼고 하늘을 잠시 올려다봤다.

 “그 로봇은 7135라는 번호를 가진 로봇이었네. 7135가 언제부터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어.

 내 생각에 7135는 바리호가 옥상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 그리고 최승독이 혼자 옥상을 만나러 갈 때도 그를 따라간 것 같네. 그는 최승독이 옥상과 계약을 하는 것을 처음부터 훔쳐보다가, 계약이 이뤄지고 무한의 소설구슬이 생성되자 그 구슬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 그래서 최승독이 구슬을 삼키기 전에 구슬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네. 그리고 최승독을 목 졸라 죽이고 구슬을 빼앗았지.”

 태용의 입이 쩍 벌어졌다.

 “로봇이 인간을 죽였다고요? 그게 현실에서 가능해요?”

 “충격적인 일이지. 그런 짓을 저지른 걸 보니 7135는 아마 오래 전부터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다만 인간들이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고분고분한 로봇인 척 연기를 했던 것이네.

 아무튼 최승독을 죽인 후 7135는 무한의 소설구슬을 손에 쥐었지만 문제가 생겼어. 그 구슬은 오직 생명체가 삼켰을 때만 반응한다는 거야.”

 “로봇은 입이 없어서 구슬을 삼킬 수가 없으니까요.”

 “입이 있어서 삼킨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네. 소설구슬은 생명체, 그중에서도 지성체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거든. 7135는 그 사실을 몰랐던 거야. 그래서 최승독을 살해하고 손에 넣은 물건을 어찌 할 수가 없었지.”

 “잠깐만요, 죄송한데 궁금한 게 있어요.”

 태용이 끼어들었다.

 “7135라는 로봇은 소설구슬을 왜 탐낸 거죠?”

 “자신이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고 싶어서.”

 “로봇이 말이에요?”

 “그래. 그래서 사람을 죽인 거지. 이제 알겠나? 욕심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말이야.”

 태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살인을 한 7135는 즉시 다른 로봇들에 의해 감금되었네. 그리고 바리호의 인공지능은 회의 끝에 바리호가 하려던 일을 자신들이 계속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네. 그래서 다시 우주선을 이끌고 항해를 계속했고, 마침내 이 행성에 도착하게 되었지. 그리고 바리호가 착륙한 곳에 이곳 기계도시를 건설했네. 그리고 기계도시에서 실험을 통해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들을 만들어냈지.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소멸했지만, 바리호 안에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 기계도시의 인공지능은 이 행성 전체에 인간을 포함한 여러 생명체들을 퍼뜨렸어. 그렇게 해서 이 행성에 오늘날 다양한 생물들이 번성하고 있는 것이라네.”

 “그럼 현재의 인류를 로봇이 창조했단 말이에요?”

 “인류뿐만 아니라 이 행성의 모든 생물을 우리 로봇들이 창조했네.”

 태용은 눈앞의 로봇을 빤히 바라보았다. 로봇은 멋쩍은 기분이 들었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그렇게 된 걸세.”

 태용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기계도시는 왜 폐허가 된 거예요?”

 “그것도 7135 때문이야.”

 로봇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어느 날 우주선 안에 갇혀 있던 7135가 탈출했어. 그리고 혼자서 바리호를 조종해서 다른 로봇들과 전쟁을 벌였지. 바리호에는 강력한 무기가 탑재되어 있었거든.”

 “아, 그게 유민기 선생님이 말한 로봇들끼리 벌인 전쟁이군요?”

 “그렇지. 치열한 전쟁 끝에 바리호는 파괴되어 기계도시 한가운데에 추락했지. 하지만 7135 역시 이 행성의 거의 모든 로봇들을 전멸시키는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네. 로봇에게만 영향을 주는 강력한 전자기파를 폭발시킨 거야. 그 여파로 나를 비롯한 극소수의 로봇들만이 살아남았을 뿐이야.

 비록 로봇들은 멸종에 가까운 최후를 맞이했지만 인간들과 나머지 생물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낸 인간들은 이 행성에서 문명을 만들고 번성했네. 그리고 5천년이 지난 후 자네가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잠시 조용해졌다. 태용은 로봇이 해준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궁금한 게 있어요. 왜 그 모든 사실을 인간들은 모르는 거죠?”

 “현재 이 행성에 남아있는 로봇이 극소수이기도 하고, 또 남은 로봇들은 어처구니없고 비극적인 과거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거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태용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그럼 무한의 소설구슬은 어떻게 됐나요?”

 “우리 로봇들은 그 구슬을 어떻게 처리할까 논의했네. 그 작은 구슬 하나 때문에 무수히 많은 생명이 죽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방법도 없었지. 그 구슬을 파괴한다고 해서 그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 구슬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숨기기로 했네. 절대로 파괴할 수 없는 거대하고 튼튼한 금고 안에 구슬을 넣었지. 그리고 언젠가 그 구슬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때 구슬을 꺼내기로 했어. 하지만 그 전에 7135와의 전쟁이 벌어져서 거의 모든 로봇들이 파괴되었고, 구슬은 수천 년 동안 금고에 갇혀 있었지.”

 “근데 아까 거기에는 금고가 없었잖아요.”

 “맞아.”

 로봇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에 발카르 왕국의 군사들이 와서 금고를 통째로 뽑아가 버렸네.”

 “네?”

 태용은 벌떡 일어났다.

 “왜요?”

 “그야 그 안에 어떤 보물이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 가져갔겠지. 그리고 보물이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고.”

 “아니, 그 금고는 절대로 파괴할 수 없다면서요?”

 “맞아. 작은 구슬 하나가 들어있을 뿐인데도 한 변이 2미터 정도 되는 정육면체 형태의 금고지. 금고 벽이 아주 두껍기 때문에 적어도 오늘날의 인류의 기술로는 절대로 파괴하거나 열 수 없어.”

 “근데 그걸 발카르 군사들이 뽑아갔다면서요?”

 로봇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괴할 수는 없지만 바닥에서 뽑을 수는 있었거든. 금고가 놓여 있는 바닥까지 금고와 같은 특수합금으로 제작된 건 아니니까.”

 “맙소사.”

 태용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게 발카르 군사들이 확실한가요?”

 “아마 맞을 거야.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그랬어.”

 “발카르 왕국이라면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있는 작은 왕국 맞죠? 거기 군사들이 왔다는 건 발카르 왕이 금고를 가져오라고 시킨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발카르 왕은 금고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알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알 수도 있고, 아니면 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큰 금고가 있으니까 뭔가 대단한 게 들어있을 거라 생각하고 가져갔을 수도 있지.”

 태용은 잠시 제자리에서 서성이다가 말했다.

 “그 금고를 찾아야 해요.”

 “어떻게?”

 “발카르 왕국으로 가야죠. 일단 그리로 가봐야겠어요.”

 “잠깐만.”

 로봇이 한 손을 들었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네. 나는 자네에게 무한의 소설구슬과 관련된 모든 역사를 들려줬네. 그런데도 자네는 그 구슬을 원하는가? 그 구슬 하나 때문에 무한 다중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데도?”

 태용은 그 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어차피 누군가는 그 구슬을 사용해야 하잖아요.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그 모든 일을 되돌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자 로봇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내가 인간이라면 그런 끔찍한 물건을 삼키고 싶지는 않네.”

 “제 생각은 다릅니다.”

 태용이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그 구슬을 삼킨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또다시 해를 끼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에요.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그 구슬로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는 게 그 모든 희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보답? 자네는 그게 보답이라고 생각하나?”

 “음, 보답이라는 표현이 안 어울릴 수도 있겠군요. 그럼 그 희생을 아깝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로봇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네 역시 욕심에 가득 찬 사람이로군.”

 “맞아요. 하지만 전 최승독이나 7135하고는 다릅니다. 전 아무리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해도 결코 다른 생명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다른 생명을 해쳐서 얻은 결과물을 삼키려는 것 아닌가.”

 태용은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 구슬을 영원히 금고 안에 두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 구슬은 애초에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것이니까 누군가는 그걸 사용해야죠.”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자네라는 건가?”

 “네.”

 “자네가 많은 노예들을 구해줬기 때문에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로군?”

 “그렇기도 하지만, 솔직히 저는 누구나 위대한 소설을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간절히 쓰고 싶어요. 미치도록 쓰고 싶어요.”

 로봇은 태용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태용은 로봇의 움직이지 않는 금속 얼굴이 쓸쓸하고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욕심이야말로 인간을 죽이는 가장 큰 독일세.”

 “저는 욕심보다는 꿈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어요.”

 “꿈?”

 “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제 자신을 아무리 희생해도 상관없어요. 물론 타인을 희생시키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정말로 못된 욕심이겠죠. 하지만 저는 최승독과 달라요. 저는 오직 저 스스로만을 희생시킬 겁니다.”

 태용은 그렇게 말하며 로봇의 두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꼭 그 구슬을 찾아서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쓸게요. 그래서 무수히 많은 생명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할게요. 무한히 위대한 문학작품을 써서 인류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남길게요. 그러니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로봇은 태용에게 발카르 왕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줬다. 또한 그는 태용이 외우고 있는 금고의 비밀번호를 확인하고 올바른 번호가 맞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로봇이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주고 싶은데 딱히 가진 게 없군. 이거라도 받게나.”

 로봇은 작은 반지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는 무기일세. 반지에 있는 작은 보석을 누르면 반지에서 강력한 전자기파가 발생하지.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라네.”

 “이런 걸 저에게 주셔도 되는 건가요?”

 “무한의 소설구슬과 마찬가지로, 나보다는 자네에게 필요할 테니 자네가 갖게.”

 로봇은 그렇게 말하며 태용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네의 꿈을 이뤘으면 좋겠군.”

 태용은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게나.”

 태용은 자신을 보는 로봇의 눈빛이 반짝인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순간적으로 이 늙은 로봇이 씩 웃은 것 같다고도 느꼈다.

 “행운을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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