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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 인간 Jul 13. 2024

사춘기, 육아 성적표를 받다.

네 번째 이야기;  우리 이제 사랑하는 방법을 바꿔봐요

"착했던 아이가 제 말을 안 들어요.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사춘기가 시작됐나 봐요."


사춘기.. 참 어렵다.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다. 별스럽지 않게 무탈히 지나가는 집도 있고, 우리처럼 우당탕탕한 집도 있다. 내색을 하지 않아 그렇지 사춘기 아이를 둔 집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전쟁을 매일같이 치러내고 있을 거다. 특히,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사춘기는 부모도 처음이요 아이도 처음이니 매일같이 시행착오의 연속일 거다. 더구나 순둥순둥한 아이였다면 밤송이처럼 까칠하게 변한 것에 배신감마저 느낄 테니까.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아이가 학폭과 같은 외부 사고를 겪지 않은 이상 변화가 어디에서 왔겠는가? 내가 키웠으니 아이를 이해하려면 나를 살펴보는 수밖에…


사춘기는 아이들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이다. 

자기를 만들고 다듬으려면 부모를 이겨야 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힘이 생기면 그동안 부모로부터 받은 부당함이나 억압에 맞서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사춘기 자녀를 대할 때 여유와 아량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는 여전히 하던 대로 아이를 대할 뿐이다. 아이와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아이만 바꾸려 들면 갈등은 계속 반복된다. 부모자식관계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조차 이제는 흔한 일이다. 차라리 화를 내고 요구가 많은 아이는 고마울 지경이다. 입을 다물고 좁은 방으로 들어가 부모와의 단절을 택하는 아이들도 흔하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의 사춘기 변화는 부모에게 주어지는 육아 성적표가 아닐까 싶다. 대화를 잘하는(아이 마음을 잘 살피고, 그 마음을 잘 받아주는) 부모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무탈히 지나가고, 부모 또한 아이의 정서적 독립을 적극 지지해 줄 것이다. 반면, 사춘기가 우당탕스러운 아이는 부모 스스로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아이를 잘 살펴 정서적 결핍을 건강한 방법으로 채워 주어야 한다.


지나고 보니 내가 받은 성적표는 “재수강“이었다. 

나는 여느 부모들처럼 사춘기는 무탈히 지나가고 아이 스스로 학업에 집중하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내 기대와 한참 멀리 있었다. 아이들은 마음이 시끄러워 학업에 집중할 수 없고, 집중이 안되니 자꾸 학업을 회피하는 악순환을 보였다. 그래서 시끄럽고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게임이나 유튜브로 눈을 돌렸다. 그런 아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무척 힘든 일이었다. 고통에 가까웠다. 자연스레 아이들과 갈등은 커져만 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가장 익숙한 길을 택했다.

내가 알고 있고, 또 책에서 배운 것들을 실행했다. 지금 것 살아오면서 내가 잘했다 싶은 것들은 아이가 답습하길 바랐고, 내가 실패했던 길은 아이가 답습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아이는 어긋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워진 많은 것들이 아이를 대할 때 부지불식간에 묻어났다. 그래서 그만큼 몇 곱절의 노력을 들였고, 정성을 쏟았다. 무엇보다 아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부모인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이를 대하는 방법에 변화를 주어야 하니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은 우리 생각과 달랐다. 많은 것들을 요구하였고, 끊임없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연습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돌이켜 보면 사춘기는 갈등의 시기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주었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한 청년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사춘기에 보이는 아이들의 변화는 우리에게 도와달라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였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살펴보면 모든 변화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를 이해하고 아이를 이해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중학교부터 아이들은 내적 세계에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외부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걱정, 불안, 두려움에 마주하고 있었다. 사춘기는 지나가는 과정이라 위안하며, 무조건 감내하고 견뎌라 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다. 아이를 병들게 하는 것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부당함으로 인해 자기를 미워하는 자책감과 죄책감이었다. 사춘기는 이러한 정서적 위기 순간에 예리한 송곳을 아이 자신에게 향하기 쉬운 시기였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마다 기꺼이 아이 앞에 나서서 ‘네 탓이 아니야,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가 도와줄게 함께 해결해 보자’라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도왔다.


아이들의 진짜 마음은 공부를 잘하고 싶어 했다.

공부를 잘해 부모의 사랑도 받고 싶고, 친구들의 관심도 받고 싶은 게 아이들의 진짜 마음이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공부가 잘 안 되니 무너지고 좌절했던 것이다. 우리는 공부 자체에 매몰되기보다는 존재 가치의 문제, 윤리의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러한 고민과 경험은 아이들이 위기의 순간을 헤쳐나가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춘기..

참 어렵다. 육아 성적표를 받아 든 부모도 당혹스럽고,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부모를 마주하는 아이들은 더 당혹스럽다. 다행히 우리 집 두 아이 모두 그 시기를 잘 지나왔고, 우리는 잘 견뎌 주었다. 첫째는 자기 길을 찾아 유학을 떠났고, 모든 것을 스스로 찾고 결정하였기에 단단함이 느껴진다. 둘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는 중이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스스로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기에 우리는 믿고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 자신들이 지내면서 부당함을 겪거나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가장 먼저 부모를 찾아 의논한다. 물론, 우리는 의견을 줄 뿐 최종 선택은 아이들이 하고, 그 결과 또한 아이들이 견뎌낸다.


사춘기 아이들로 인해 나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무엇 보다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건강한 부모는 어떠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한 아이의 세계를 만들어주는 거였다. 그래서 너무나 막중하고 엄청난 일인데 나는 그걸 미처 몰랐다. 그저 결혼해 때가 돼 낳았고, 내가 알고 있고 익숙한 방법으로 아이를 대했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내가 아이에게 대했던 태도는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들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거였다. 사랑도.. 상처도.. 모두 엇비슷하게.. 알고 나면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불안과 위축의 순간을 헤쳐나가는 힘을 키워주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든다. 또,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학습자원을 찾아 나서는 법, 자기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법을 부모를 통해 학습했다. 만약, 나에게 그런 모습이 생활 속에서 발현되고 있지 않다면 내 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그런 걸 배우겠는가? 그리고 학교 성적이 아닌,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힘이 필요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갖고 아이를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주위에 좋은 어른과 닮고 싶은 어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고민이 있거나 부당함을 겪어도 부모에게 털어놓고 얘길 나누지 않는다.
그저 혼자 감내하는 위험을 택한다. 
사춘기를 건강히 보내는 첫걸음은 아이의 마음을 살펴 반응하고 대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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