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들
나는 가훈家訓을 좋아한다.
시골 대가족에서 자란 환경과 오랜 직장생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최진석 교수의 책을 읽고 크게 느끼는 바에서 비롯되었다. "철학이 없는 삶은 사유가 없고, 사유가 없는 삶은 소비와 같다." 거창하게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구를 두고 삶의 지향점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훈을 뭘로 하지?
우연히 안동 여행길에서 손쉽게 고민이 해결되었다. 지자체 행사로 훈장께서 가훈을 붓글씨로 써주셨다. 우리가 받은 붓글씨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집안이 화평하면 모든 일이 다 잘된다 하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근데, 살아보니 집안이 화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뭔가 좀 쉬운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어느 날 잡지에서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이거다 싶었다. “아니면 말고”, 실패에 관조하는 힘이 느껴져 바로 정했다. 문제가 생겼다. 내 바람과 달리 아이들은 전혀 엉뚱하게 반응했다. 아이들이 뭔가를 하다 중도 포기하고 싶으면 가훈을 들이밀었다. 그러면서 '저는 포기한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는 중입니다.'라고 선수를 쳤다. 몇 차례 에피소드를 겪다 보니 더 이상 가훈이 필요한가 싶어졌다. 그렇게 가훈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점차 지워져 갔다.
잊혔던 두 글자 '가훈', 다시 내 머릿속을 채우다.
몇 개월 전 아들의 전화에서 비롯되었다. 아들이 내게 큰 깨우침을 준 것이다. 가훈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은 틀렸다. 가훈은 내가 고민하고 정해서 가족에게 들이밀게 아니었다. 가족 모두 고민거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게 중요한 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쯤은 알만한데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싶었다. 그렇게 우리 집 가훈이 다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 집 가훈은 이제 더 이상 딱딱한 표어가 아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응원메시지다.
아들이 유학을 떠나 독립했다.
입학 전 아들과 둘이서 현지에 먼저 다녀왔다. 대학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원하는 곳에 집을 구해주고, 이런저런 일들을 챙겨 주면서 아들이 품을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현실감은 아들이 자기 짐을 모두 챙겨 떠나는 날에 날아들었다. 출국날 우리 가족은 새벽부터 분주히 준비하여 인천공항으로 배웅을 갔다. 미리 준비한 대형 캐리어 두 개를 밀고 끌면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 입구에 섰다. 아내는 떠나는 아들이 못내 아쉬워 두런두런 얘길 나누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마지막 내 차례가 되어 아들과 마주했다. 잘 다녀오라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 말하며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들이 평소와 달리 나를 꼭 안아주며 한마디 한다.
“예. 아버지. 잘 다녀오겠습니다.”
순간 마음이 따스해졌다. 공항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관계의 삐걱거림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명석해 주위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고, 실제 성적도 탁월했다. 하지만 중3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공부를 놓았다. 후일 아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아들에게 표출하고 있다는 것. 아들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다는 것까지. 모든 원인은 내게서 비롯되었다. 내가 주는 부당함으로 인해 아들은 반감이 커졌고, 그렇게 쌓인 반감은 아들이 공부를 놓게 만들었다. 다행히 현명한 아내의 대처와 좋은 치료자의 도움으로 내 안에 쌓여있던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녹일 수 있었다. 내면의 변화는 아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러한 나의 변화로 인해 아들은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고, 내가 주는 부당함에 대적할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게 뭘까? 고민했다.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아들에게 학업에 대한 얘기는 불필요했다. 우리는 철학, 윤리, 사회 전반에 대한 대화와 토론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철학에 대한 대화는 자연스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그럴싸한 설명보다는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좋은 어른들을 아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대화가 주를 이뤘다. 그렇게 좋은 어른들을 통해 지혜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왔다. 아들 스스로 뭔가를 느끼고 마음에 씨앗이 심어질 거라 믿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고립된 아이를 세상 밖으로 꺼내 시행착오를 겪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꺾이지 않도록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는 것. 그거였다.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든든한 후원자'.
기다림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들이 진로를 결정하기 전까지 긴 시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우리는 그저 믿고 기다렸다. 긴 시간이 흘러 시행착오를 마친 아들은 유학을 결정했다. 자신의 인생 방향을 스스로 고민하고 정리한 끝에 외국 생활을 도전해 보겠다며 우리에게 알렸다. 방향을 정하자 아들은 2년 동안 집중해서 준비를 했고 지난봄 대학 입학식을 가졌다. 현명한 아내의 기다림이 아니었다면 아들은 중간에 나로 인해 꺾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과 대화(나는 대화라 하고, 아들은 잔소리라 한다.)에서 아들은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버지. 그만하시죠.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입을 다물고, “그래. 알겠어. 미안해.” 하며 멈춘다.
부모는 자식을 통해 성장한다.
몇 개월 전 아들에게서 영상통화를 받았다. 자기가 애지중지하던 반려견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아들이 한마디 툭 내뱉는다.
“아버지. 그건 아버지 열등감이에요. 아버지의 열등감을 저에게 주입하려 하지 마세요.”
아들의 그런 반응에 나는 내심 뜨끔하여 더 이상 말을 멈추고 짐짓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내 잔소리가 또 시작되려 하자 아들이 한마디 더 한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버지가 제게 해주실 것은 딱 하나예요. 무한한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아들이 아버지 보다 났네. 우리 집에 뭐가 필요한지 아들이 잘 알고 있네."
이를 계기로 우리 집 가훈이 만장일치로 정해졌다. 가훈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 아니겠는가? 언제든 내가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게 내게는 우리 집 가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에서 서로를 응원한다.
무한한 신뢰, 전폭적인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