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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 인간 Jul 07. 2024

우리들의 호위무사

두 번째 이야기;  누군가를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것

'호위무사 : 위험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가까이에서 지키며 경계하는 사람'


난 SBS 드라마의 조선제일검 '무사 무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의 호위무사로 조진웅 배우가 연기했고,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태종의 호위무사로 윤균상 배우가 연기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 주군을 구해내는 무휼의 포효는 언제나 짜릿하다. 개인적으로 조진웅 배우의 묵직한 캐릭터도 좋지만, 윤균상 배우의 순박한 캐릭터가 더 좋다. 뭐랄까.. 뭔가 더 진심이 묻어 나는 느낌? TV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안군 이방원이 도망 중 암살자 길선미에게 포위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이때 무휼이 홀연히 나타나 길선미에 맞서며 이방원에게 아뢴다.

"늦었습니다. 주군!"

이방원이 다급히 명한다.

"여기서 우리를 살려나갈 수 있겠느냐?"

무휼은 또다시 아뢴다.

"무사 무휼,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워낙 유명한 장면이라 가끔씩 쇼츠로도 찾아본다. 보면서도 '무휼'처럼 멋지고 든든한 호위무사가 있었으면 싶어 진다. 글을 쓰다 문득 아내의 생각이 궁금해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물론 내심 기대를 갖고 말이다.

"당신은 살아오면서 호위무사가 있었어?"

아내가 좀 생뚱맞아하면서 날 쳐다볼 뿐 별스런 대답은 없다.

"..."


난 가끔씩 생각해 본다.

한 개인이 좋은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이 뭘까? 뭐..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부모로부터 느껴지는 울타리 같은 든든한 정서적 경험'이 아닐까 싶다. 앞질러해 주는 간섭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손을 내밀어주는 그런 든든함. 한 개인이 성인이 되어도 불안하고 의존적인 것은 이런 든든한 정서적 경험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뭐랄까.. 뿌리가 깊은 나무는 태풍이 불어도 쉬 쓰러지지 않는데, 뿌리가 옅은 나무는 조그만 미풍에도 쉬 쓰러지는 것과 같다.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 나는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든든함을 받아본 느낌이 없다. 자기 몫조차 챙기지 못하셨던 아버지와 자기 몫 챙기는데 급급하셨던 드센 어머니를 둔 덕분에 든든함 보다 열등감이 자리했다. 내가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분석을 받으면서 공통적으로 듣는 얘기가 있다.

그 정도 상황이면 대부분 중간에 꺾이는데,
여기까지 오신 게 정말 대단하시네요.

분석을 받아보면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을 길어 올린다.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 느낌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시나브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인 에피소드나 정서적 경험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나도 과거의 정서적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거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내 삶의 궤적을 함께 쫓던 전문가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진심 어린 한마디에 한참을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난 늘 혼자 아등바등 애쓴다 생각했는데 내게도 그런 든든한 존재가 함께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꺾이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알겠구먼.
할머니, 아내 그리고 책이 당신 호위무사구만."


할머니, 나의 든든한 뒷배

집안에 장손이었던 내게 할머니는 언제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셨다. 내가 집에서 편하게 생떼를 부릴 수 있던 유일한 존재이셨다. 무뚝뚝하고 엄하셨던 아버지, 매섭고 차갑던 어머니와 달리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살뜰하게 챙기셨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한창이던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주변 환경에 많은 변화가 왔다. 무엇보다 할머니에게 눌려 계시던 어머니께서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시고, 모든 것들이 어머니의 주도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런 어머니의 차갑고 이기적인 모습이 싫어 반항하는 마음으로 고3 공부를 놓아 버렸다. 그리고 자취생활과 외로움으로 많은 방황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유년기에 할머니께 받았던 든든한 정서적 경험이 날 지켜주었다. 지금도 살면서 너무 힘들고 지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순간이 오면 할머니 묘소를 찾는다. 별스러움도 없다. 그저 소주 한잔 붓고 멀리서 손주가 오랜만에 왔노라며 한소끔 감정을 쏟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후련해질 수 없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힘듦을 다시 뚫고 갈 수 있는 그 무엇이 자리함을 느낀다.


아내, 진실한 조언자

우린 서로 너무 다르다. 나는 몽상가적 기질이 있고, 아내는 지극히 현실주의자다. 내가 두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면 아내는 두 발을 땅에 내딛는다. 그래서 우리 둘은 다르지만 서로를 채워준다. 그렇다 보니 내가 내 문제에 갇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할 때마다 아내의 현명한 조언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주었다. 살면서 마주하는 위기를 헤쳐나가는 지혜도 의외로 단순했다. 괴로운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 순간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해내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위기의 순간마다 옆에 아내가 있었다. 현명한 아내 덕분에 아들, 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결혼에 대한 아내의 지론은 우리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 선명히 보여준다.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달라. '남자'를 녹이는 것이 '여자'고, '여자'를 품어주는 것이 '남자'야. 이렇게 녹여주고 품어주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라야 결혼해도 문제가 없어. 근데, 받으려는 사람끼리 만나면 지옥문이 열리는 거야. 그게 결혼이야."  


책, 독서 그리고 사유의 힘

나는 자취를 시작한 청소년기부터 책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배웠다. 괴롭고 쓰라린 일이 생기거나, 궁금한 일들이 생기면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아 열심히 읽었다. 수십 년째 이어온 나의 유일한 취미도 독서다. 유일하게 용돈을 쓰는 곳도 교보문고와 중고서점이다. 새 책도 좋지만 어느 때부터 중고책이 참 좋다. 중고책에 그어진 밑줄이나 메모를 발견하면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을 함께 나누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 반갑다. 그렇게 나는 지식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살아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은 지식이 아닌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배웠다. 실천이 없는 지식은 쓸모가 없고,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졌을 때라야 지혜가 쌓였다. 책은 독서를 만들고, 독서는 사유의 힘을 키워준다. 치열한 사유와 꾸준한 실천만이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 스스로 다독가지만 다독가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현실에서 꾸준히 실천해 내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그들과 얘길 나누다 보면 흔히 받는 질문이 있다.

"책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시절 따라 내 대답은 다양하게 변화하여 왔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네. 책 속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거든요."


누군가를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것.

그것 참 어렵다. 끊임없이 내 것을 내어주는 것이라 너무 어렵다. 그것도 어떠한 보상이나 바램 없이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야 하기에 여유와 아량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어주고 베풀면서 받아야 할 것들을 함께 기대한다. 마음 한편에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품으면서. 그러니 기대와 달리 돌아오는 게 없으면 서운함과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호위무사는 절대 '희생'이라는 말을 마음에 두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호위무사는 보상을 바라는 장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서운함이나 배신감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유와 아량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여러분의 호위무사는 무엇이며,
삶을 걸고 지켜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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