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이해하기 위해 나를 알아볼게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자취생활에서 오는 따분함을 피해 뭔가 활력이 필요하다 싶으면 근처 시장에 나가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뿜어내는 강렬한 에너지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시장구경을 좋아한다.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서면 다양한 아디이어와 충만된 에너지로 채워졌다. 그래서 항상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고, 크고 작은 모임들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너를 이해하고 싶어.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 만큼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겨났다. 그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는 감정소모였다. 멈춰 선 자동차가 쓸데없이 엔진을 공회전하는 것처럼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내면의 에너지를 수없이 소모시켰다. 더욱이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사람들에 치이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내게 뭐라 했던 것도 없고, 누군가와 기억에 남을 만큼 다퉈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직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 원가족과 아내 사이에서 겪는 갈등,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오는 시행착오는 내 삶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특히, 아이들과 갈등상황이 생기면 내가 그토록 외면했던 나의 찌질한 모습을 직면하게 되어 사람노릇 참 어렵구나 싶어졌다. 그래도 '나'가 아닌 '너'를 탓하며 원망했다. 도대체 너란 사람은 왜 이렇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무지 화도 났다. 계속된 사람들 사이에서 오는 감정소모는 나의 내면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평온해지고 싶었다. 타인을 이해하면 평온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삶은 나를 알가는 여정이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인 것 같지만, 살면서 겪은 여러 경험들은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오히려 내가 가장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일 수 있겠다는 의심을 던져 주었다. 그런 의심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된 문제들이 내 안의 밤송이 같은 감정들 때문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한 번 틈이 생기자 그 틈으로 불안, 자책, 원망 따위의 부정적 단어들이 나를 엄습했다. 벌어진 틈을 다시 오므리기 위해 여유와 아량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마음먹는다고 없던 여유와 아량이 생길리 만무했다. 결국, 나를 심도 있게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근데 어떻게 하지?
나를 알아간다는 게 말이 쉽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미성숙한 나로 인해 가장 힘들었을 아내가 내게 제안을 한 것이다. 정신분석을 받아 보면 도움이 된다면서 전문가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음공부는 불교경전, 심리상담, 정신분석, 정신치료를 받으면서 18년째 이어오고 있다. 내게 글쓰기 또한 마음공부의 다름이 아니다.
모두가 무탈하길 바래요.
내 마음을 공부하다 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깨닫게 된다. 현명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순리와 이치가 아닐까 싶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꾸준히 실현해 낸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저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내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제목을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만"으로 정한 이유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내가 겪은 경험들을 나누려 한다.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편안함에 이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