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에 대한 짧은 생각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결에 쓰지만 그 뜻을 알고 나면 조금 생경해지는 단어들이 꽤 있습니다. 더러는 뜻이 엇비슷해 보이지만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진 단어들도 있습니다. 공감과 동의, 지식과 지혜, 책임과 의무, 그리고 자존심과 자존감이 대표적입니다.
공감共感은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고, 동의同意는 의견이 같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한다 해서 그 뜻까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뜻을 같이 한다 해도 서로 목적이 다를 수 있으니 그 마음까지 헤아려 이해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지혜智慧는 마음으로 깨우친 슬기로움이고, 지식知識은 말과 글로 배운 알음알이입니다. 내 자식만큼은 힘겨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갔으면 하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입니다. 애써 고등교육을 시켜보지만 어쩐지 지혜는 늘지 않고 지식만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 모두 힘들어지는 이유입니다.
책임責任은 내가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고, 의무義務은 누군가 내게 강제하는 것입니다. 책임이 능동적이라면 의무는 수동적입니다. 자식을 키우며 책임감을 길러준다는 게, 의도와 달리 의무감으로 짓누르는 건 아닌지 잘 살펴야 합니다. 어려서 효자가 커서 불효자 되고, 어려서 후레자식이 커서 효자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서 효자는 부모가 지워준 의무를 책임이라 착각합니다. 부모는 편하지만, 자식은 주체성이 자라질 못합니다. 반면, 후레자식은 부모 간섭을 거부합니다. 부모가 고생 좀 하지만, 자식은 기가 살아있습니다. 성인이 되면 주체성을 갖고 합당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착한 아이는 평생 의무감으로 부모를 버거워하다, 어느 순간 그 짐을 탁 내려놓고 사라집니다. 후레자식은 부모를 버거워한 적이 없다 보니, 철이 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책임을 감당합니다.
안타깝지만, 착한 사람들은 남이 지워준 의무를 자기의 책임이라 여기며 힘겨워합니다. 주위에 착한 사람들을 보면 탁 내려놓고 사라질까 봐 걱정부터 하게 됩니다. 누구든, 착한 사람들에게 착하다며 자신이 져야 할 의무를 덧씌우는 짓은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존심自尊心과 자존감自尊感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단어는 참 같은 듯싶지만 전혀 상반된 뜻을 갖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입니다. 자존심은 세다 약하다 말하고, 자존감은 높다 낮다 말합니다. 자존심은 타인으로부터 거절, 거부, 배척의 경험에서 자라며, 자존감은 수용, 포용, 존중의 경험에서 자랍니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대체로 고래심줄만큼 고집이 셉니다. 자존심이 세다는 말은 타인의 평가에 아주 민감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센 사람은 타인의 한마디 말에 쉽게 부스러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스스로를 애써 붙듭니다. 남들 눈에는 그런 상황이 이치에 맞지 않으니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 비치는 게 당연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사고가 유연합니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가나 판단의 기준이 자신이기 때문에 고집이나 몽니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존심은 좀 내려놓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구체적 방법은 모르겠으나, 한 가지 원칙은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은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다 것입니다. 누가 대신 치켜세워줄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내가 좀 민감하고 심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민하고 고래심줄 같은 자존심은 좀 버려놓고, 조금 헐렁해도 나를 조금 더 사랑하는 자존감으로 채워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