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가치에 대한 짧은 생각

by 읽는 인간

우리는 무엇이든 가치를 매기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마도 ‘경쟁’과 ‘평가’라는 틀 속에서 살아온 사회의 습성일 겁니다. 고즈넉한 시골길을 산책하다 우연히 만난 전원주택을 바라보며, 문득 ‘저 집은 얼마일까?’ 하고 계산해 봅니다. 교차로 신호를 기다리다 건너편 노란색 스포츠카를 보면 ‘저 차는 얼마일까?’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TV 속 성공한 사업가를 보며 ‘저 사람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사물과 사람의 가치를 손쉽게 돈으로 환산합니다. 마치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인 듯이 말이죠. 오래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순간 ‘상금은 얼마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 ‘노벨상 작가라면 책 판매가 더 늘겠지. 인세도 상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까지 번졌죠. 그리고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상금을 검색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속으로 흠칫 놀랐습니다.


스포츠 선수든 일반 직장인이든, 개인의 가치는 매년 갱신되는 연봉계약서에 적힌 숫자로 손쉽게 평가됩니다. 전문 자격을 갖춘 프리랜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배우의 출연료는 천차만별이고, 강사의 강의료도 적게는 몇 배, 많게는 수십 배 차이가 납니다. 사람조차 이럴진대, 사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공공의료센터나 장애인 복지시설처럼 서민의 삶에 꼭 필요한 공공시설조차 그 가치를 돈으로 따집니다. 물론 전문가들은 ‘경제성 평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그 본질은 수익률입니다. 비용과 수입을 돈으로 환산해 이익이 나지 않으면 온갖 이유를 붙여 시설 건립을 미루고, 심지어 이미 있는 시설조차 비용을 핑계로 없애려 듭니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의 가치 기준은 정말 돈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가치價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쓸모'를 뜻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두 글자 모두 값을 뜻하니, 돈으로 환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보입니다. 하지만, 가價는 시장에서 금전 거래로 정해지는 값이고, 치値는 변함없고 흔들리지 않는 값어치를 뜻합니다. 결국, 가치는 세상이 매기는 값과 내가 살면서 지켜내는 값어치가 함께 담긴 단어입니다.


“당신 삶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오래전 TV에서 독설로 유명했던 스타 강사가 청중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강사는 ‘몸값’ 대신 ‘삶의 가치’라는 표현으로 인문학적 울림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옆에 있던 진행자가 재치 있게 액수를 말하자, 강사는 기다렸다는 듯 반문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가치를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진행자 당황했고, 저 역시 ‘뭐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경쟁과 성공의 담론이 지배해 왔습니다. 실패는 곧 낙오자로 낙인찍고, 성공은 부의 축적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인지 강사의 질문이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내 삶의 가치를 왜 타인이 평가해야 하지?’, ‘삶을 검증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서로 다른 삶의 가치를 재는 기준이 과연 있을까?’ 질문은 꼬리를 물었고, 결국 저는 채널을 돌렸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큰아들과 진로를 이야기하던 중,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스타 강사가 그날 이렇게 물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거죠.

“당신 삶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삶’과 ‘가치’라는 두 단어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이보다 더 잘 맞물리는 조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외부의 평가와 내면의 본질을 동시에 담고 있는 ‘가치’만큼, ‘삶’을 온전히 표현해 주는 단어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은 그 누구도 함부로 매길 수 없는 값어치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질문에 답을 좀 찾아보겠습니다.

삶은 무언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 그 자체가 곧 가치입니다. 그렇기에 내 삶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그 가치를 증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위화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떠한 삶도 아쉬운 삶은 없습니다. 그 삶이 어떠한 삶이든지 간에 모든 삶은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수많은 책 속 문장들보다, 이 한마디가 우리 삶의 가치를 가장 선명하고도 깊이 있게 드러내 준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물이나 사람 속에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며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것은 긴 세월 동안 애써 지켜온 그 사람의 다정하고도 단단한 마음에 닿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아들이 엄마의 서랍 속에서 곱게 접힌 낡은 배넷저고리를 발견했을 때처럼 말이죠. 모든 사물에는 그것과 이어진 사람이 있고, 그 연결의 실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바라봐야 할 것은 시장에서 매겨진 값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마음으로 지켜온 값어치를 볼 수 있는 안목입니다. 그 안목이야말로 세상의 빛과 온기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어줄 것입니다.


고즈넉한 전원주택을 보며 ‘저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멋진 스포츠카를 보며 ‘어디로 가는 길일까?’, 성공한 사업가를 보며 ‘그는 어떤 이야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이런 질문은 늘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요즘 저희 집 근처에 공공도서관이 한창 지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공사가 끝나고 맞이할 내년 겨울, 저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창밖으로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풍경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만약 도서관의 가치를 단순히 돈으로만 따졌다면, 이런 순간은 결코 제게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숫자와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을 사랑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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