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 대한 짧은 생각
우리는 주위의 나이 지긋한 분들을 높여 ‘어르신’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호칭 속에 ‘어른’의 품격을 기대하며 부르지는 않을 겁니다. 단지 나이가 많으니 예의상 존칭을 쓰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른이란, 결국 성숙한 인간의 표상이니 시대마다 그 기준은 달라질 것입니다.
‘어른’과 ‘꼰대’의 경계를 바라보는 세대 차이도 여전합니다. 그 구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아닌 타인이 결정한다는 것만큼은 모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해도, 남들이 꼰대라 부른다면 그게 현실이니까요.
얼마 전 저녁을 먹다, 문득 궁금해져 딸과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딸이 먼저 말하더군요. “부정적인 것을 긍정으로 바꿔주는 것”,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거죠. 아내는 좀 다르게 얘기했습니다. “적당히 덮어주는 것”, 못마땅함을 키우지 않기 위해 굳이 들추지 않고 덮어두는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렇듯 ‘어른’이라는 표상에는 보편적 정의보다 현재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더 크게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좀 놀랐던 건 딸의 시선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른을 꿈꾸지만, 끝내 완전한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으니,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고, 그 결핍이 채워진 상태를 어른이라 할 수 있는데, 결핍은 끝내 다 채울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딸은 어른을 완성이 아니라 ‘과정’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딸의 얘길 듣고 보니, 참 옛말 틀린 게 없다 싶었습니다. “철들자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릴 적 동네 어르신들께 많이 듣던 말입니다. 부모 속 꽤나 썩이는 후레자식을 보고, 혀를 끌끌 차시며 하시던 그 말입니다. 긴 세월과 경험 끝에 인생을 깨닫고, 이제야 제대로 살아보려 하니 이미 늙어버렸다는 뜻입니다. 부모 늙어 후회하지 말고 젊을 때 잘하라는 타이름이죠.
“철들자 죽는다 이놈아. 도대체 언제 철들래?”
어려서 공부는 뒷전이고 산과 들로 헤매고 다니던 제게, 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 큰아들의 공부를 바랐지만 저는 참 철이 없었습니다. 자식이 철들고 고생할까 염려도 크셨겠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아버지의 마음은 동네 어르신들께서 후레자식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시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철든다는 게 뭘까요?
철은 시기나 계절의 순우리말입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생각과 태도가 마땅한 때에 맞게 자리 잡았다는 것 아닐까요? 성숙한 사람은 인생의 때에 맞춰 합당한 ‘노릇’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학생노릇, 부모노릇, 자식노릇, 남편노릇, 아내노릇 따위를 기꺼이 해내는 사람이 곧 철이든 사람이겠죠.
아버지의 바람처럼, 이제 철이 좀 들었을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철든 사람이 어른이라면, 딸의 말처럼 저는 아직 그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치매를 앓고 계시는 아버지께 제일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짜식, 이제 좀 철이 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