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시대의 Young Lions
1970년대의 재즈는
퓨전(Fusion)과 아방가르드(Avant-garde)가 주도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일렉트릭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고,
웨더 리포트나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같은 그룹들이 록과 재즈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 화려함 뒤에서 많은 재즈팬들은
“정통 재즈는 어디로 갔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이 질문에 대해 답이라도 하듯
1980년대 초,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가 혜성과 같이 등장한다.
어릴 적부터 다져진 클래식음악의 기초와
탁월한 정통 재즈에 대한 감각으로 무장한 그는,
퓨전의 전자음을 거부하고,
1940~60년대 어쿠스틱 재즈로의 귀환을 갈망한다.
비밥(Bebop), 하드 밥(Hard Bop), 모달 재즈(Modal Jazz)로 대표되는
‘황금기의 재즈’를 현대적 감각으로 복원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곧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또는 네오-트래디셔널리즘(Neo-traditionalism)으로 불렸다.
그는 재즈를 하나의 ‘형식미학’으로 재정의한다.
클래식 음악에서 배운 엄격한 구조 감각을 재즈의 즉흥성과 결합했고,
무대 위에서도 늘 정장을 착용하며,
재즈 연주를 하나의 품격 있는 예술 행위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미 모던 재즈 퀄텟(MJQ) 시절부터 강조되어 온 전통이었다.
이렇게 윈턴 마살리스와 함께 등장한 세대를
언론에서는 “영 라이온즈(Young Lions)”이라 불렀다
젊지만, 과거의 언어를 무기로 삼은 세대였다.
초기 핵심 멤버들은 대부분 윈턴 마살리스 퀸텟 출신이었다.
그의 친형인 색소포니스트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
피아니스트 케니 커클랜드(Kenny Kirkland),
드러머 제프 ‘테인’ 와츠(Jeff “Tain” Watts)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고도의 악기 연주 기술과
즉흥 감각을 겸비한 정통파 재즈 연주자들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죠슈아 레드먼, 로이 하그로브,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등으로 이어지는
다음 세대의 신고전주의를 표방한
두 번째 영 라이온즈 ( Young Lions ) 세대를 탄생시킨다.
조슈아 레드먼은 신고전주의 재즈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사회학과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summa cum laude)했으며,
예일 로스쿨 입학까지 유예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재즈 연주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뉴욕으로 건너간 지, 단 5개월 만에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고 상징적인 재즈 신인들의 등용문인, 델로니어스 몽크 국제 재즈 색소폰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그는 순식간에 1990년대 재즈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조슈아 레드먼의 데뷔 앨범 < Wish >(1993)는 신고전주의 재즈의 한 전형을 보여주며,
단번에 재즈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중 [ Turnaround ]는 제목부터가 재즈 형식의 핵심 개념인
재즈화성 진행의 대표적인 구조를 직접적으로 연주에 차용하고 있다.
이 곡에서 그는 비밥과 하드 밥의 정통 이디엄을 현대적 어법으로 재해석해 낸다.
정확히 정해진 곡의 화성 구조 ( 1 -4 - 2 -5 ) 속에서
명료한 서사적 전개와 논리적 긴장감을 완벽하게 연출해 낸다.
이는 신고전주의의 미학인 전통적 형식 안에서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사운드 화한 대표적인 예이다.
그의 쿼텟 편성 역시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고전적 구성을 유지하며,
퓨전 재즈의 전자음향적 실험의 유행에 대한
사운드적 미학의 반론이기도 했다.
레드먼의 이력은 신고전주의가 표방한 가치인
지적 태도, 형식 존중, 연주 윤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연주는 존 콜트레인과 소니 롤린스의 계보를 잇되,
형식의 엄격함과 논리적 구성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신고전주의가 강조하는 ‘질서 속의 자유’,
즉 즉흥이 구조와 대화를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고전주의의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의 초기 음악은 재즈 전통에 대한 존중과 논리적 완결성을 특징으로 하며,
신고전주의의 본질인 “형식의 복원”을 충실히 구현한다.
작곡적 구성의 형식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즉흥연주의 자유로움을 양보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그의 솔로 즉흥연주는
논리적이면서도 정서적이면서 감성적인 긴장감을 조화롭게 유지한다.
그의 신고전주의의 핵심 미학인 ‘질서 속의 자유’를 궁극적으로 반영한
2001년에 된 앨범 < Passage Of Time >에서 그 정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2000년대 들면서 조슈아 레드먼은 재즈의 형식적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그의 음악적 스타일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펑크, 록, 전자음향을 통합하는 포스트-퓨전(Post-Fusion) 시도를 전개했다.
전통 위에서 새로운 리듬과 다양한 음색을 실험하며
신고전주의의 ‘정통성’ 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나간다.
앨범 < Elastic >을 통한 새로운 시도 이후,
그는 다시 정통 어쿠스틱 쿼텟으로 돌아와,
당대 최고의 숙련된 연주자들과 재결합을 통해
신고전주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그의 음악적 완숙기를 보여준다.
2020년에 발매된 앨범 < Round Again > 앨범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슈퍼 재즈맨들이 모두 모였다.
Piano - Brad Mehldau
Bass - Christian McBride
Drums - Brian Blade
그리고 Saxophone - Joshua Redman
조슈아 레드먼은 신고전주의의 형식적 엄격함과 전통 존중을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이를 토대로 현대적 감각과 실험정신을 융합한
‘확장된 신고전주의’를 완성해 나간다.
그의 음악은 재즈가 과거의 언어를 잊지 않으면서도,
동시대의 리듬과 사운드를 포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숨쉬는 고전 재즈를 연주한다.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 1969–2018)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신고전주의(Neo-Bop)의 핵심 인물이자,
전통과 혁신을 잇는 ‘영 라이언(Young Lion)’ 세대의 또 다른 상징이다.
1980년대 말,
퓨전과 프리재즈의 확산에 반발하여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흐름 속에서
로이 하그로브는 하드밥과 비밥의 어법을 충실히 복원한다.
그의 트럼펫은 클리포드 브라운과 프레디 허바드의 계보를 잇는
명료한 음색과 감성적 블루스 프레이징이 특징이었다.
초기 앨범 < Public Eye >(1991)와 < With the Tenors of Our Time >(1994)는
전통적 쿼텟·퀸텟 편성과 타고난 작곡 감각을 통해
‘정통 재즈의 현대적 복원인 신고전주의를
나름의 방식으로 완성해 낸다.
2000년대 이후 하그로브는 신고전주의의 틀을 넘어서며
재즈와 블랙 뮤직의 접점을 확장하며
다음 세대의 미국 재즈가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더 RH 팩터(The RH Factor)를 결성해
네오 소울·힙합·펑크를 결합한 새로운 사운드인
"하드 그루브(Hard Groove)"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낸다.
앨범 < Hard Groove >(2003)에서 그는
D’Angelo, Erykah Badu, Common 등과 협업하며,
재즈를 21세기 흑인음악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로이 하그로브의 재즈에 대한 도전과 실험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2008년 발매된 앨범 < Earfood > (2008)에서
1990년대 신고전주의 재즈의 미학이 21세기로 넘어오며
새로운 미국적 재즈로 확장된 지점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완성한다.
그는 전통적인 하드 밥 언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힙합·펑크·네오 소울의 리듬 감각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이는 신고전주의가 단순히 과거 양식을 복원하는 복고적 태도가 아니라,
‘전통을 현대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 있게 하는 실천’ 임을
구체적인 재즈 사운드로 증명한 것이다.
[ Strasbourg / St. Denis ]는 그 상징적 사례다.
파리 지하철역 이름에서 착안한 이 곡은 블루스적 선율과 흥겨운 리듬,
그리고 청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그루브를 결합해,
세계의 재즈 클럽과 잼 세션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현대의 ‘뉴 스탠더드’가 되었다.
이는 신고전주의가 ‘양식의 재현’을 넘어서,
공감 가능한 현대적 정서를 재즈 안에 담아냈다.
어쩌면 앨범 < Earfood >는
그가 RH Factor 프로젝트 시절부터 미리 그려오던
흑인 대중음악의 요소들을 정제해,
정통 재즈의 문법 안에서 재해석하려던 궁극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즉, 하그로브는 블루스적 뿌리를 유지한 채,
재즈의 현대적 어휘와 대중음악의 리듬을 융합함으로써
신고전주의를 하나의 살아 있는 미국의 예술 언어로 확장했다.
결국, 《Earfood》는 신고전주의 재즈가 단순히 과거의 양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음악 전통의 확장성과 그 무한한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 하지에 대한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앨범으로 평가된다.
로이 하그로브의 트럼펫은 과거의 정통성과 현재의 그루브를 이어주는 통로였고,
그 사운드는 “전통이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한 신고전주의의 새로운 언어”로 남았다.
2018년 11월 2일.
지극히 개인적으로, 미국 재즈 트럼펫 연주자 중 가장 좋아하던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블루스 전통에 깊게 뿌리내린 정통 재즈 연주자였으며
전통과 혁신의 양끝을 넘나들며
현대 재즈의 무한한 가능성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이었다.
로이 하그로브는 신고전주의의 이상인
정통 재즈의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감각으로
재즈를 다시 쓰려는 시도를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실험하는 개척자였다.
이미 떠난 그를
우리는 결코 멀리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