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ynton Marsalis & Neoclassicism
두어 주 전쯤,
중학교를 다니는 딸아이가
“아빠, 나 줄 이어폰 하나 사줘. 요새 유행이야.”
21세기에 ‘줄 이어폰’이라니.
잠시, 단어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음악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유선 장비가 작업의 기본이기는 하다.
미세한 음의 질감, 안정적인 연결, 신호의 지연이 없는 즉각성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무선으로 처리하는 세대에게,
다시 줄을 단 이어폰이 유행이라니
그건 단순한 복고를 너머,
시대의 역설처럼 들렸다.
이어폰은 언제나 젊음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 워크맨과 마이마이,
그 작고 사각진 카세트 플레이어는
그 시절의 젊은이들을 ‘나만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상징이었다.
손에 쥔 그 작은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한다는 것은
답답하고 삭막한 세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상징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워크맨과 마이마이는 MP3와 스마트폰으로 매체가 바뀌어도,
그 이어폰 줄은 여전히 음악과 젊은이들의 심장을 연결하던
대체제 없는 생명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로는, 혁신의 상징이던 애플이 그 줄을 끊었다.
2016년 아이폰 7에서 3.5mm 이어폰 단자를 없애면서,
음악을 듣는 세상의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사실, 그보다 앞서 2012년 OPPO Finder,
2014년 R5가 이미 헤드폰 단자 없는
기기를 발매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대중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 전환은
애플의 에어팟이라는 신문물의 출현으로
무선이어폰의 시대는 현실이 된다.
그 이후, 모토로라 Z, 구글 픽셀 2, 삼성 노트 10(2019)이 뒤따라
3.5mm 이어폰 단자를 없앴고
자연스럽게 ‘무선 이어폰’이라는 새로운 휴대용 음향기기의 대중화가 시작된다.
소비자는 불편보다 자유를 선택했다.
거추장스럽던 선이 사라진 자리를
매끄러운 디자인과 두 손의 자유가 대체한다.
음악은 여전히 귓가를 때리지만,
그 연결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선이 사라지기 시작한 지 20여 년 만에
다시 줄이 달린 이어폰이 ‘유행’이란다.
단순한 복고풍 아이템의 유행일까?
어쩌면, 신세대들이 잠재의식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결이 주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
그리고 손끝에 느껴지는 체험적 감각을 되찾고자 하는
그들의 무의식적 충동은 아닐까?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재즈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당시 재즈의 주류를 이끌던 대중적 혁신의 맞은편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혁신을 위해 유행과 대중성 대신,
재즈의 고전과 전통 속에서 혁신의 정당성을 찾았다.
줄 이어폰의 복귀가
무선의 혁신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되찾는 일이라면,
재즈의 신고전주의는 자유로웠던 모던 재즈 이후
다시 ‘형식’과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시도였다.
결국 모든 혁신은 과거의 잔통 위에 세워진다.
진정한 혁신은 말초적 자극의 새로움이 아니라,
뿌리 깊은 전통 위에서 새롭게 태어난 질서여야 한다.
그것이 재즈의 신고전주의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줄 이어폰의 유행이
우리에게 말하는
전통 위에 펼쳐진 혁신의 정당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재즈는
혁신이라는 방향과는 또 다른 방향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퓨전 재즈의 상업적 성공과
아방가르드의 실험적 확장이 새로운 시대를 풍미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전통 재즈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흐름이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였다.
이 운동은 단순한 복고의 유행을 너머
재즈를 하나의 “고전 예술”로 다시 세우려는 시도였다.
이 재즈의 철학을 가장 명확히 구현한 인물이
트럼펫 연주자 윈턴 마살리스(Wynton Marsalis)였다.
그는 1985년 발표한 앨범 < Black Codes (From the Underground) >를 통해
재즈의 언어를 다시 정제하고,
퓨전의 전자음과 아방가르드의 실험적 자유 대신
어쿠스틱 사운드, 하드 밥의 구조적 규율 그리고 블루스의 정서를 복원한다.
이 앨범은 과거의 재즈문법을 단순히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클래식 음악의 기초가 탄탄한 윈턴 마살리스는
클래식의 음악적 구조와 고도의 악기연주 테크닉을 결합하여,
재즈가 ‘고급 예술(High Art)’로 자리할 수 있음을
구체적인 소리로 증명해 낸다.
앨범 제목인 < Black Codes >는
19세기 흑인 인권을 억압하던 ‘흑인법(Black Codes)’에서 가져왔다.
윈턴 마살리스는 이를 비유적으로
상업주의와 무분별한 실험 속에서 재즈의 영혼이 억눌리고 있음을 꼬집는다.
< From the Underground >라는 부제는 그 억압된 영혼을 다시
‘지하로부터’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재즈의 저 바닥에 깔린 원형적 정신인
자유, 블루스, 즉흥연주, 흑인공동체의 정체성을 현대의 음악적 언어로 복원한
재즈 신고전주의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움직임은 예술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변화를 촉발한다.
1987년 12월 4일,
미국 의회는 하원 공동 결의안 57호(H. Con. Res. 57),
즉, 재즈 보존법(Jazz Preservation Act)을 통과시킨다.
이 결의안은 재즈를 공식적으로
“미국의 국보(a rare and valuable national American treasure)”로 지정하고,
그 보존과 교육, 지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촉구했다.
결의안은 재즈를 단순한 대중 오락이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민주적 이상이 결합된
전통적인 예술의 표현 형식으로 규정했다.
솔로 즉흥연주를 ‘개인의 자유’,
제즈 앙상블을 ‘협동의 미학’으로 규정하며
재즈를 미국 민주주의의 예술적 모델로 정의했다.
또한, 인종과 세대를 초월하는 통합의 힘,
그리고
문학·무용·영화 등 타 예술에 끼친 지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천명한다.
이 결의안은 미국 재즈의 사회적 지위를 실질적으로 크게 변화시킨다.
첫째,
재즈가 클래식과 동등한 ‘고급 예술’로 공식화되었다.
이를 근거로 재즈를 향한 미국 예술기금(NEA)의 지원이 확대되었고,
대학 내 재즈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이 제도화되었다.
둘째,
윈턴 마살리스가 주도한 신고전주의 담론에 국가적 공인이 부여되었다.
결의안이 재즈를 “전통과 뿌리의 예술”로 정의하면서,
하드 밥과 스윙 계열의 전통 재즈가
재즈의 ‘정통 - Main Stream '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셋째,
재즈는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재즈 앰배서더(Jazz Ambassador)’라는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에 재즈가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전파되었으며,
이는 1950~60년대 냉전기 이후 다시 등장한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외교의 새로운 국면이었다.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의 앨범 < Marsalis Standard Time, Vol. 1> (1987)에
첫 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 Autumn Leaves ]는
드러머 제프 "테인" 와츠(Jeff "Tain" Watts)의 편곡으로 유명한,
매우 독창적인 변박(Odd Meter)의 활용이 매우 특징적인 연주이다.
이 편곡의 헤드(Head, 주제 선율) 부분에서 쓰인 변박은
각 마디의 길이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청취자에게 긴장감과 독특한 리듬감을 경험케 한다.
이 편곡의 핵심은 테마(AABA 포맷)의 각 프레이즈(phrase) 시작 부분에서
각 마디의 길이가 1박씩 증가하며,
이후 다시 정상적인 4/4 박자로 복귀하는 구조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Metric Modulation과 Rhythmic Augmentation이라는 개념이 함께 쓰이는데
쉽지 않은 개념이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하자면
Metric Modulation이란
4분의 4박에서 2개의 4분 음표를 3개로 나누고
그 나누어진 3개의 음표 중 하나의 길이를
다음 마디에서는 새로운 4분 음표 개념으로 기준을 설정하여
연주하는 리듬적 활용을 이야기한다.
Rhythmic Augumentation은 또 다른 개념인데
기존 멜로디나 리듬 패턴을 템포는 그대로 유지한 채로
각 음의 길이를 비레적으로 늘려 느려지는 느낌을 만드는 작곡 기법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을 함께 사용하여 [ Autumn Leaves ]의
A 파트, 8마디를 다음 구조로 연주한다.
첫 번째 마디: 1/4 (1박)
두 번째 마디: 2/4 (2박)
세 번째 마디: 3/4 (3박)
네 번째 마디: 4/4 (4박)
다섯 번째 마디: 5/4 (5박)
여섯 번째 마디: 6/4 (6박)
일곱 번째 마디: 7/4 (7박)
여덟 번째 마디: 8/4 (8박, 사실상 4/4 더블 타임처럼 느껴진다)
요약하자면, 각 마디가 N/4 박자로 진행되며,
N은 1부터 8까지 순차적으로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멜로디는 이 불규칙한 박자 구조에 맞춰 연주된다.
드러머 제프 "테인" 와츠는 이 복잡한 리듬 구조를
일정한 펄스(Pulse)를 유지하며 연주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이 음악을 들었을 때
곡의 템포나 리듬을 잡아내기가 여간 난해한 곡이 아니다.
특히 박자 수가 많아지는 마디(5/4, 6/4 박자 이후 )에서는 매우 압축적인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박자가 8/4에 도달할 때쯤 (혹은 브리지 섹션 진입 직전에),
리듬 섹션은 실질적으로 더블 타임(Double Time)의 느낌으로 전환되면서
질주하는 리듬의 극단적인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브리지(원곡의 9마디~16마디)에 진입하면,
다시 4/4 박자로 돌아와 더블타임의 질주하는 스윙리듬이 연주되고
다시 돌아온, 마지막 A 섹션에서는
8/4에서 1/4로 박자를 역순으로 감소시키는 리듬적인 변형을 사용하여,
긴장감을 해소하며 곡의 끝을 향해 마무리 지어진다.
이 편곡은 4/4 박자에 고정된 스탠더드의 멜로디를
복잡한 변박에 맞춰 재구성하여,
원곡의 선율적 아름다움은 유지하면서도
연주자들에게는 극한의 리듬적 도전과
청취자에게는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을 주는
고전의 혁신적인 재해석으로 평가받는 명연주이다.
이 시기의 재즈 신고전주의는
일시적인 유행에 편승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었다.
1970년대 퓨전과 전자악기의 확산으로 재즈의 본래 어법이 흐려지던 시점에서,
윈턴 마살리스를 비롯한 여러 동세대 연주자들은
전통적 재즈 언어를 현대적 문법으로 다시 세우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옛날로 돌아가자’가 아니라,
재즈의 정통성과 형식을 제도적으로 복원하고
재즈를 현대적인 미학으로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음악 내부와 사회 제도 양쪽에서 동시에 움직인 것이다.
윈턴 마살리스의 < Black Codes (From the Underground) > (1985)는
음악 내부에서 재즈의 어법과 윤리를 복원한 선언문이었고,
1987년 미국 의회의 재즈 결의안은 그 가치를 사회적 제도로 공인한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작용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재즈의 새로운 모습을 향해 한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재즈 음악가들은 재즈의 언어를 재구축했고,
미의회는 재즈의 존재 이유를
국가적 문화유산이라는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공식화하였다.
재즈는 ‘자유의 음악’이라는 낭만적 상징을 넘어,
미국 사회가 '범국가적으로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자리매김한다.
즉흥의 자유 속에서 형식의 질서를 되찾고,
예술의 자율성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시도.
줄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줄 이어폰을 찾듯,
1980년대의 재즈는 끊어진 전통의 선을 다시 손끝으로 더듬으며
새로운 형태의 혁신과 연결한다.
재즈의 신고전주의는
새로운 물결을 거부한 보수가 아니라,
전통의 보존을 통한 창조와 혁신의 예술이었다.
끊어진 줄을 다시 잇는 행위,
재즈의 신고전주의는
바로 그 섬세한 전통의 복원을
다시금 ‘살아 있는 역사’로 연주해 나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