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는 매번 아침이 불편하다. 씻는 소리나 문이 열리는 소리, 커튼이 열리는 소리까지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게스트하우스만의 맛이 있으니까.. 일단 저렴한 가격.
아침으로 아무도 없는 공용라운지에서 식빵 두 조각과 우유를 먹었다. 이쯤 되면 어제 숙박객이 우리 둘 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전주로 가는 기차에선 할 게 없었다. 책도 보냈고 유튜브도 재미없다. 바깥 구경이나 실컷 하고 말았다. 어떤 마음으로 왔든, 일단 기차 여행을 하고 있는 나는 언제 다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질리도록 눈에 담아봤다.
전주에선 친구를 만났다. 이 년 만에 본 친구는 그대로였다. 짧은 근황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옥마을을 가자는 나의 말에 역정을 내던 전주 시민은 나를 데리고 전북대학교 대학가로 갔다.
점심을 먹고 무슨 고양이카페를 갔는데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고양이를 무슨 물건 대하듯 하는 곳..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두 번 다신 안 가겠다 싶었다. 옆에 있던 게임기에서 메탈슬러그나 했다.
전북대학교 캠퍼스 투어를 갔다. 오 년 전 대학 면접을 위해 전북대학교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 붙었으면 구경차 온 이곳이 내 대학이었겠구나 싶었다. 아쉬운 건 없었다. 제주도에서 충분히 많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들이니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전주역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를 뵈려고 충주를 가기 위해서인데, 또 전주에서 충주로 가는 기차가 없었다. 시외버스를 알아봤다. 이만오천 원이나 하더라. 기차표를 끊었다.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명경지수, 명경지수..
심지어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어쩌겠는가, 기차를 갈아탔다. 갈아탄 기차는 무궁화호였는데 입석밖에 자리가 없었다. 한 시간을 넘게 서서 가야 하는 무궁화호는 입석 승객들로 가득했다. 피난민들 같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서서 가는 무궁화호 안에서 다시는 무궁화호 입석은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굳게 다짐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많다. 다신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마음도 이유도 없이 누그러들거나, 미워하기로 한 것들도 어느샌가 다시 사랑하곤 한다. 서서 가는 한 시간 동안 별 생각을 다 했구나 싶다.
하루종일 기차를 네 시간이나 탔더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엄마를 만났다. 세 달 만에 만난 엄마는 다행히도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줬으면 싶은 마음이다.
저녁을 대충 먹고선 씻고 산책을 나왔다. 꿀꿀한 마음을 혼자 달래기 위해 하염없이 걸었다. 아무리 마음껏 슬퍼하기로 했기로서니, 시도 때도 없이 슬퍼지는 마음은 달랠 도리가 없다. 기억을 지우는 행위는 과연 슬픔까지도 지워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한들,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는 않을까. 기억을 지우는 건 사실 일말의 추억을 지울 뿐이지 존재를 지우는 건 아닐 테니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면 뭐든 포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 누구나 아는 뻔한 거짓말. 알면서도 한 번 정도는 해봤을 법한 말. 영원한 건 없고, 사랑의 유통기한도 마찬가지로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은 금세 식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잊지 못할 것 같은 기억도 어느 순간 희미해지곤 한다. 반대로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기억도 때론 오래 남는다. 한없이 슬픈 오늘도 언젠간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혹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되거나.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음과 동시에,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절대 반복되지 않을 한 번뿐인 선택지에선 정답을 쉬이 찾을 수 없다. 돌아갈 수는 없기에 정답을 확인해 볼 길조차 없다. 후회하지 않을 마음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건 없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돌아보면서 그때가 맞았구나 혹은 틀렸구나 할 뿐이다.
비록 그 선택에 대한 결과가 부분점수 하나 없는 명백한 오답일지라도 쉽게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얻는 배움은 그만큼 값질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