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드디어 대학병원을 갔다.
사실 대학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거긴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크게 아파본 적이 없어 동네 주치의한테 다닌 것이 전부였다.
외국생활에선 이런 것이 사람을 답답하고 힘들게 한다.
주치의의 진단서가 있어야 하는지 그냥 가도 되는지 모르는 체 갔다. 주치의는 자꾸 좀 더 기다려보자 하나 그럴 수 없어 그냥 갔다.
대학병원이 과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시내에 있는 건물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늑막에 물이 찼다며 빨리 입원을 하라 했다.
입원을 하는 내과는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와야 있었다.
이제부터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원은 큰데 환자는 별로 없었다. "이 병원은 어떻게 유지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엔 2인실에 남편 혼자 있었다.
남편은 학교직원으로 등록돼 있어 의료보험의 병실혜택이 있었다.
그래도 혼자인 걸 보면 아마 기침을 하니 격리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마스크를 끼고 들어왔다.
지금도 생각난다. 방에 들어서면 벽에 덴탈마스크통이 걸려있었다.
우리나라에선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날 보고도 마스크를 착용하라 했다. 그래서 마스크를 착용했더니 남편이 너무 우울해했다.
"난 피해야 하는 전염병 환자구나!"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담당의사는 며칠간 늑막에 물이 찬 원인을 찾았다.
물에 박테리아가 있나? 결핵은 아닌지 날마다
투베르쿨린 검사를 했다. 독일은 결핵을 아주 무서워했다. 우리가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더 경계를 했던 것 같았다.
삼 일간 세 번의 투베르쿨린 검사결과가 모두 음성으로 나오자 그들은 마스크를 벗었다. 난 일찌감치 벗었다. 박테리아가 원인이면 집에서 기침할 때 벌써 옮았을 것이고 지금 쓰는 마스크는 괜히 남편을 위축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젠 늑막에 찬 물을 빼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물이 찬 원인을 몰라 폐조직을 떼어 폐조직에 물리적인 힘이 가해졌는지를 확인하는 검사를 했다.
너무 힘든 검사였다. 잠시 피돌기를 멈추고 해야 하는 검사라 하얗게 질린 남편얼굴이 보였다.
검사가 끝나고 의사는 잘 참았다며 칭찬을 하고 갔다. 난 그들이 유리병에 담근 폐조직을 보았다.
물을 빼자 남편의 기침은 현저히 줄었다.
그런데 폐와 심장사이의 물이 찐득해서 주삿바늘로
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 물 때문에 심장박동이 영향을 받는지 보기 위해 매일 심전도를 찍었다.
심전도가 흔들리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며칠 심전도를 검사하다 어느 날 심전도가 흔들렸다.
내과의사는 외과에 가로 세로 1cm 창을 가슴에 만들어달라 요청했다. 찐득한 물을 빼기 위한 튜브를 박기 위한 것이었다.
남편은 외과로 이송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팔이 퉁퉁 부어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가슴의 종양이 눌러 기침도 심하게 나고 팔도 혈액순환이 안되어 퉁퉁 부은 것이었다.
내과에선 외과로 이동해야 하니 일단 짐을 다 빼라고 했다.
난 차가 없어 그 짐을 옮길 생각에 막막했다. 그렇다고 내가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집으로 옮겼는데 남편의 이송은 자꾸 지연되었다.
"시내에 교통사고 환자가 발생해서 그렇다"했다.
그 환자들 수술 때문에 밀린다 했다.
기다리다 보니 벌써 밤 10시가 되었다.
친한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했다.
"죄 많은 이 목숨대신 가져가시고 살려주세요!"
잊을 수 없는 기도였다!
타지에서 만난 목사님인데 목숨을 대신 주겠다니...
우리를 위해 목숨을 대신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부모라면 몰라도....
그래서 아직도 기억하는 기도이다.
잊을 수 없는 신세를 진 목사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