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결혼 1주년 기념 여행
독일에 와서 결혼하는 것이 온 지 얼마 안 되는 남편 학업에 덜 지장을 줄 것 같아 한국에서 웨딩드레스를 사가지고 왔다. 그 시절 종로에 가면 드레스 맞추는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혼자 하는 머리 손질도 문제니 머리를 가릴 모자도 만들어 왔다. 그래서 난 얼마 전까지 웨딩드레스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 때 부케도 꽃가게에 가서 하얀 튤립과 철사 테이프를 사서 꽃꽂이도 배운적 없는 내가 만들었다. 청첩장도 남편과 같이 일일이 손으로 쓰고 칠했다.
어찌 생각하면 청승맞고 서글플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냥 소박한 결혼이었다.
내가 있던 도시는 신학이 유명해서 많은 목사님들이 공부하러 와 계셔서 어떤 분께 주례를 부탁했고 장소는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진행했다. 성당의 사용료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헌금이 전부였다.
초대한 하객은 가난한 유학생들이었다.
어찌어찌 결혼을 하고 나는 곧 어학시험을 봤는데 첫 시험에 떨어져 머리도 식힐 겸 파리로 여행 갔다 와 6개월을 다시 더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결혼을 한 지 1년이 다가왔다.
독일은 기독교 나라라 부활절이나 성령강림일엔 오래 쉰다.
이때를 택해 1주년 결혼기념 여행을 로마로 갔다.
학생들은 보통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자면서 로마여행을 한다.
그런데 나는 급하게 여행취소를 하신 분이 있어 반값을 주고 비행기를 타고 갔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럭셔리여행이라 소문났지만 그렇치는 않았다. 여행객 중에 제일 가난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고급 가방을 들고 왔는데 우린 배낭이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그들은 예쁜 옷을 입었는데 우린 매일 청바지였다.
로마에 가보니 신혼여행 겸 갔던 파리가 화려하다면 로마는 회색빛으로 중후함이 느껴졌다.
두 도시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어찌 보면 로마는 좀 어두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도시가 작고 골목은 너무 좁았다.
그 골목을 달리자니 피아트자동차가 딱이었다.
신호등은 의미가 없었다. 사람이 건너면 차는 선다.
트레비분수에선 집시들에게 소매치기를 당할뻔했지만 분수의 조각이 참 아름다워 다시 오게 해 달라 기도하며 동전을 던졌는데 어떤 사람이 오더니 동전을 다 걷어갔다. 로마시의 공무원이란다. 어이가 없었다.
스페인 광장에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로마의 휴일"을 따라 해 보았다.
하지만 눈에 쏙 들어온 것은 고급 보석가게였다. 고객이 벨을 눌러야 큰 문이 열리며 그 사람만 모시고 들어가지 그냥 구경을 할 수는 없었다. 조그만 창에 전시된 보석의 디자인은 화려하고 거창했다. 보통의 여자가 소화시키긴 힘든 것들이었다. 하지만 난 구경을 했다.
진실의 입을 찾아 손도 넣어보고 길거리 전깃줄에 매달린 운동화 짝을 보며 재미있다는 생각도 했다.
콜로세움은 전철을 타고 가서 보면서 사람끼리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해야 하는 전투사들이 떠올랐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또 무엇이지...
사람은 참 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 카타콤베를 갔는데 기분이 우울하고 무서웠다.
신앙을 지키려 이런 굴속에서 삶을 살다니...
대단하단 생각과 비참함이 엄습해 오고 앉아서 죽은 해골을 보면 역시 무서웠지만 한편으론 불쌍했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이탈리아식 피자를 먹으러 갔다.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식탁에 꼽혀있던 긴 막대과자 같은 것을 심심해서 두 개 먹었더니 따로 돈을 더 지불해야 했다.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공짜는 거의 없다.
단체 여행 때는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에서 안내원이 "우리가 지나는 길밑에 죄수들의 시신이 묻혀있습니다."
깜짝 놀랐다!
시신 위를 달리다니!
남의 무덤 위에 서있는 무례한 기분이었다.
아니 그 시절은 죄인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인간이하의 삶을 산 것 것 같다.
그러니 사람끼리 싸움을 시키고 누구는 구경하고
죄인이라고 죽여 길밑에 묻고 밟고 지나다니고...
누구는 사람을 소유하고 팔 수도 있고
누구는 짐승처럼 지내야 했던 시절의 도시를 우리는 멋있다고 구경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하의 사람들이 피눈물을 닦으며 힘들게 지은 도시다.
멋있는 건물에서 즐기고 노는 사람 따로 건물을 짓느라 고생하다 죽는 사람 따로이다.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는 인생은 공평하다는데 로마에선 그런 공평함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