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세무공무원
우리 집은 작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심심하면 세금이 나왔다.
세금은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매번 오르지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끔 폐업을 해서 세금을 줄인다"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세금이 나오면 엄마는 고지서를 들고 세무서를 찾아갔다.
이것도 연중행사였다.
담당자에게 "영세 상인에게 과합니다!"라 하소연을 하면 세금이 줄었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 시절의 세금은 고무줄 같았다.
세무공무원이 재표를 마음대로 바꿨다.
그러니 내는 사람들은 모두 억울하게 생각했다.
초등학교시절 같은 반에 아버지가 세무공무원인 친구가 있었다.
여름이면 바캉스를 다녀와 까맣게 그슬려있던 아이였는데 공부는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같이 자기 집에서 공부하자고 해서 한번 갔던 적이 있다.
지나다니면서 밖에서는 여러 번 보았지만 집안은 처음이었다. 벽돌로 지은 큰 길가의 이층 양옥집이었다.
집안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나서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는데 숨느라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더니 바닥에 옷이 잔뜩 싸여있었다. 아마 높이가 1m 길이는 2m쯤 되게 싸여있었다.
옷이 그렇게 많은 것도 정리가 안된 것도 놀랐는데 그 옷더미 속에 달걀꾸러미가 있는 것에 너무 놀랬다!
달걀이 깨지면 어쩌라고?
먹을 것과 옷이 뒤엉켜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시절은 옷도 달걀도 귀한 시절이었다.
옷이 작아지면 새 옷을 사주기보단 언니 오빠가 입던 것들을 물려받아 입었다. 구멍 날 때까지 입었다.
내가 입던 스웨터가 작아 엄마에게 말하니 언니가 입던 것을 입고 가라 해서 입고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겨울이라 난로를 때니 갑자기 더워서 외투를 벗는데 스웨터 팔꿈치에 구멍이 난 것이 보여 외투를 못 벗고 고생했던 적도 있었다. 구멍 난 옷을 반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새 옷은 명절이나 돼야 어쩌다 사주었다. 그래서 설빔, 추석빔 이런 말을 썼다. 아이가 많아도 장롱 하나에 서랍장 하나면 옷이 다 들어갔다. 그런데 이 집은 옷이 너무 많아 넘쳐났다.
놀고 난 후 친구가 먹으라고 준 것은 제과점의 비싼 양과자였다. 그때는 보통 집에선 보기 힘든 맛있는 것이었다.
맛있게 먹긴 했지만 친구아빠가 세무서 과장이란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잘 사는지 몰랐다.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그 집 이야기를 했더니 "세금덜 내려고 뇌물이 많이 들어온다더라."
그제야 풍요로운 광경이 이해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세무서는 아주 좋은 직장인가 보다라 생각하며 지냈다.
그때 박힌 세무공무원의 잘못된 잔상이 벗겨지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공명정대한 세무공무원이란 말을 이제는 쓸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