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아버지의 뇌졸중
아직 3월 초라 다소 쌀쌀한데도 엄마는 봄맞이 대청소를 하신다며 유리창 문을 떼어 비누를 풀어 싹싹 닦아 맑아진 창을 방마다 다셨다.
"겨우내 묶은 먼지를 다 떨어내니 얼마나 개운하니!"라며 활짝 웃으셨다.
전에 한옥에 살 때는 가을에 문풍지갈이를 했는데 이제는 봄맞이 청소로 바뀌었다.
엄마는 아버지와 같이 작은 사업체를 하셨는데 그날은 청소 때문에 아버지 먼저 출근하셨다.
청소를 끝내고 엄마가 출근하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직원의 목소리였다."사장님이 쓰러지셨어요! 병원으로 가니 얼른 오세요!"라 했다.
휴일이라 오빠들도 집에 있었는데 쓰러졌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이해를 못 한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갑자기 뇌졸중이 온 것이었다.
평상시 혈압이 낮아 별 걱정을 안 했는데 빈속에 술 한잔 하신 것이 큰 화근이 되었다.
아버지는 의식이 없어 중환자실에 계셨고 면회도 힘들었다.
일주일을 중환자실에 계시던 아버지가 의식을 차렸지만 몸에는 마비가 와있었다.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셨다.
이때부터 엄마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기 시작을 하셨다.
우리 집에 고난이 찾아온 것이다.
집으로 퇴원을 하신 후에는 엄마는 오리탕, 개고기탕을 계속 드시게 하고 한의사가 와서 뜸과 침치료를 받게 하셨다. 좀 차도를 보이자 엄마는 소아마비 신발을 맞추어와 그것을 신겨 아예 힘이 없는 다리를 운동시켰다. 엄마가 옆에서 부축이며 한걸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뗐다.
한의사가 출장 오는 가격이 비싸니 이제 택시를 타고 한의원으로 다녔는데 이때 문제가 생겼다.
못 움직이는 환자를 큰오빠가 업어 택시를 태워주고 출근을 하니 내릴 때는 엄마가 업어야 했던 것이다.
그저 남편 살리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어 본인의 허리가 망가지는 것을 참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많이 좋아져 한쪽다리를 조금 절지만 목발 없이 걸어 다니시고 좀 어눌하지만 의사소통도 하실 수 있게 되었지만 엄마의 허리는 아파서 잘 못 걷고 힘없이 구부러 들기 시작을 했다. 디스크가 터진 것이다.
병원에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시절은 MRI 같은 진단기구도 없어 잘못하면 하반신 마비가 오곤 하니 엄마는 수술을 결정히지 못해 오랜 시간 고통 중에 계셨다. 지금 같으면 쉽게 해결할 디스크로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다.
허리가 아파 무거운 코트도 바지도 잘 입지 못하셨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얇은 밍크코트를 보고 엄마한테 사주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망설이다 오리털 코트를 사서 보낸 적이 있다. 그 시절 우리나라에는 밍크코트는 일반인은 못 입고 일부 연예인이나 입었던 것이다.
지금도 길에 가다 허리가 꼬부리진 할머니를 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인 줄 알고 달려간다.
가다가 멈춰 선다, 엄마가 아니지..,
허리 때문에 생고생하던 엄마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려온다.
불쌍한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