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나의 이름 짓기
30년간 살던 서울시내의 한옥을 떠나 외각의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나의 어린 시절추억을 뒤로 한채 좀 좋아 보이는 새집으로 왔다. 새 집으로 오니 집은 좋은데 학교가 멀어져 등하교가 힘들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다. 등교 시에는 늦어서 달리느라 기진맥진되었다.
또 이상하게 난 옛집이 내 고향처럼 그리워졌다.
꼭 가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사를 하며 엄마는 그간 하지 못하셨던 새살림을 장만하셨다.
정말 오래 참고 있다 하신 것이다.
정말 큰 변화였다.
방에는 십장생이 그려진 자개장, 화장대, 문갑이 들어왔다.
화장대는 엄마평생 처음 장만한 것이었다.
여태 엄마는 화장대 같은 것이 없었다.
화장대 위엔 엄마 화장품도 생겼다.
정말 오래된 분통도 올라와있었다.
이제 엄마의 여자다운 모습이 드러났다.
그간 로션 하나 없이 살았는데....
대충 입고 살았는데....
부엌에는 냉장고와 가스레인지가 그리고 전기밥솥이 생겼다.
식사준비가 너무도 편해진 것이다.
어린 시절 밥을 하기 위해 내가 마당에서 장작불을 피며 콜록거린 적도 눈물 흘린 적도 있었고 풍로에 불을 붙이며 석유냄새를 맡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가스레인지만 켜면 되었다.
너무 편해졌다.
더 심한 변화는 목욕탕과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마당에서 등목이나 하고 목욕탕에 가야 하던 것이 너무 편하게 바뀌었다.
밥 하랴 일하랴 동동거리며 살던 엄마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시간이 흐르니 우리의 삶이 많은 발전을 했다.
당연히 나라도 많은 발전을 하였다.
그 집에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엄마의 문갑을 열어보았다.
문갑 안에는 어린 우리들의 사진이 있었고 처음 보는 엄마아빠의 결혼사진이 있었다.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를 찍은 엄마의 갸름한 낯선 모습과 나랑 많이 닮은 아빠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이었다.
어린 시절 성적표들도 보이고 내가 6학년 때는 주별로 나왔던 성적표도 차곡차곡 있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 상장도 잘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엄마한테는 보물이었나 보다.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렇게 빛바랜 봉투가 보여 꺼냈다.
봉투 속의 내용물을 보니 내 이름이 쓰여있고 내 사주가 풀이되어 있었다.
"엄마~ 이게 뭐야?"라 물으니 "엄마가 이름을 지을 줄 몰라 좋은 이름 지어주고 싶어 너를 낳고 삼일 만에 작명소에 갔는데 그 사람이 사주에 맞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네 사주를 풀어놓은 것이다."라 하셨다. 우리 이름을 다 그렇게 지었다고 하셨다.
그 종이에 붓글씨로 적혀 있던 내용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내가 아들만 몇 명 둔다고 쓰여있던 글이다.
어떻게 내가 태어나자마자 몇십 년 뒤의 일을 알았는지 아직도 신기한 생각이 든다.
우린 이미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일까?
난 그렇다고 믿지는 않는데 이런 일을 보면 좀 흔들린다. 그 사람 풀이가 딱 맞아서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