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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엔 너무 어려!

7화. 화학요법이 시작되었다.

by 권에스더

방사선으로 종양의 크기를 줄인 후 이제 항암치료로 화학요법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약물이 투여되니 남편은 얼굴에 열감도 있어하고 심장도 좀 빨리 뛰며 괴롭다고 했다.

그때가 오후 4시가 넘었을 때인데 간호사가 오더니 나보고 오늘은 가라 했다. 약은 밤새투여될 것이니 내일 오라고 했다.


걸어서 병원을 나가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고 우울했다. 남편이 괴로워 계속 눈을 감고 쳐다보질 않았던 것이다.


"저렇게 힘든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내

욕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본인은 죽고 싶다는데....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집으로 가지 않고 기도해 주시는 목사님 댁으로 갔다.

거기서 저녁도 먹고 하소연도 하고 위로도 받고 하니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약물 투여는 끝나있었고

남편은 누워있었는데 "힘들다!"라고 했다.

약물 때문에 남편은 구토가 난다고 잘 먹질 못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물은 토하지 않았다.


어떤 환자는 물도 토하고 아무것도 안 먹어도 토했다. 다른 멀리 있는 병실에서 토하는 환자들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심한 구토들을 했다.


하루 이틀 지나자 구토가 가라앉기는 했는데 식사는 조금씩 밖에 못하였다.

그러자 담당의가 와서 코에서 위로 가는 호수를 넣었다.

몸무게가 너무 줄어 영양분을 주입하는 줄이었다

매일 일정량의 칼로리를 주입했다.

그래도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보양식을 해주고 싶어 닭을 푹 삶아 국물을 보온병에 담아 갔다.

그걸 남편한테 주었더니 뚜껑을 열고 마시더니

토할 것 같다며 나에게 화를 냈다.


내가 잘 몰라 기름을 제거하지 않아 보온병 맨 위 뚜껑 근처로 기름층이 뜬 것을 마셔서였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많이 섭섭하고 화가 났다.

다신 병원에 오고 싶지 않았다.

"난 하느라고 한 것인데..."


남편은 자신이 힘드니 짜증이 잦아졌다.

이해는 가지만 나도 그때 너무 힘들어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심심하면 나한테 짜증이었다.


나도 짜증까지 받아줄 여력이 없어 병실 발코니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며 많이 기도했다.

러가는 구름 따라 나의 근심도 사라지길 바랐다.


구름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이 내 기도를 들으러 나오신 주님의 얼굴이라 느꼈다.

그래서 그것을 보며 내 생각을 다 말했다.

그러고 보니 독일의 병실엔 제법 큰 발코니가 있었다.

환자들이 쉴 수 있게 긴 의자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일인실에도 없는 것이다.

특실엔 있나?

우리나라보다 참 좋은 점이다. 그땐 가을이라 춥지도 않고 생각하며 앉아있기 딱 좋았다.


하늘에 대고라도 하소연을 해야 그래야 다시 남편 침대옆으로 올 수 있었다. 아님 옆에 있기 싫었다.

나도 너무 힘들고 지쳐서 "하루만 잠 좀 푹 잤으면 좋겠다."하고 다닐 정도데 날 보고 어쩌라고....


다음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병원에 갔더니 남편이 이불 위에 가득 머리카락을 뽑아놓는 것이 보였다.

느리게 손을 움직여 머리카락을 한 줌씩 뜯어 이불 위에 놓았다.

너무 놀라고 무섭고 비참하고 눈물이 났지만 쓰레기통을 갖다 주며 "여기에 담아!"라 했다.

이불 위의 머리카락을 다 치우고 "어차피 빠질 것이니까 다 자르자!"


가위로 남은 머리카락들을 다 잘라 버렸다.

괜히 속이 다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앞으로는 빠진 머리카락은 안보이겠지!"


머리카락은 제 위치를 벗어나 있으면 좋게 보이지 않는다. 밥그릇에 머리카락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느낌을 알 것이다.

그런데 많은 수의 머리카락이 빠져있으면 그것이 주는 공포는 상당하다. 각오를 했어도 막상 보면 놀란다.


지금도 그때보단 조금 나아진 상태 때 찍은 크리스마스시절의 시진을 갖고는 있는데 잘 보질 못한다.

"너무 비참한 모습이어서!"

그것을 보면 지금도 놀란다. 그런 몰골이었다.


난 남편을 씌울 모자를 샀다.

셜록 홈즈 모자 같은 브라운 체크무늬가 있는 중절모로랐다.

좀 작은 사이즈를 사다 보니 고를 것이 별로 없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내가 털모자를 떠서 장만해 두었다, 남편 씌우려고.

난 뜨개질을 좀 했다.

뜨개질은 어려서 엄마가 가르쳐주셨다.

남편의 스웨터도 떠주었다.


이 글을 쓰자니 그때가 떠올라 지금도 힘들다!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아픔의 보따리를 펼치는 느낌이다! 이젠 담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삭아 없어졌을 줄 알았던 마르지 않은 슬픔이 자꾸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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