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첫 소풍
초등학교 입학하여 처음으로 소풍을 갔다.
소풍 가기 전 내가 먹고 싶은 여러 가지 과자나 사탕을 사서 준비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때는 껌도 특별해 한통 마련했다.
아직 콜라는 없었고 좀 잘 사는 집은 보온병에 시원한 사이다를 싸가지고 신줏단지 모시듯 가지고 왔다. 부닥치면 보온병 속 유리가 외장창 깨지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해서 엄마들이 들었다. 난 그런 음료수는 준비하지 못하고 물병에 보리차만 준비했다.
아직 어리니 가능하면 부모님과 동반하길 학교에서 권해서 난 엄마와 내 동생도 함께 갔다.
그 시절의 소풍장소는 주로 조선 왕릉이었다.
아마 학창 시절 소풍으로 대부분의 조선왕릉은 다 가본 것 같다.
동네친구 수경이도 엄마와 동생하고 같이 와서 함께 모여 점심을 먹었다. 김밥도 먹고 삶은 달걀도 먹고 과자도 먹었다. 엄마의 김밥은 언제나 간이 딱 맞아 맛있었다. 엄마의 김밥에는 고기, 달걀은 없고 어묵조림, 고추장을 살짝 넣어 무친 시금치, 홍당무, 단무지가 들어간다. 별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간은 조촐한 행복을 선사했다.
그 시절에 찍은 사진 두 장이 있다.
엄마도 수경이 엄마도 한복 차림이다.
그날 입은 엄마 한복은 엄마가 천을 사 와 만든 것으로 아직도 기억에 있다.
그리고 어린 수경이와 수경이 동생, 혜경이 그리고 내 동생의 얼굴이 보인다. 엄마의 젊은 얼굴이 있다. 너무 귀한 사진이다.
자유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하고 왕릉 주변을 구경하는데 어떤 아이들은 왕릉에 올라가 아래로 막 구르기를 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고 왕릉봉분 주변 석조상을 올라타고 노는 아이들도 보였다.
난 능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노는 아이들이 좀 극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지 문화재를 아끼자란 개념은 없었다.
그 시절은 문화재보존이란 개념은 없었다.
잘 보존할 여력이 없었다.
자유시간 후에는 전교생이 모여 여러 가지 게임을 했다. 보물찾기, 오제미 던지기, 엄마등에 업혀 달리기 등...
오제미를 던지며 엄마가 웃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새벽에 만들어준 오제미가 다섯 개다.
속에는 콩을 넣어 만들었다.
다른 것들은 별로 기억에 안 남았는데 엄마등에 업혀 달리기는 기억에 난다.
업힌 나는 편했지만 엄마가 힘들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를 등에 업고 달리다가 엄마가 한복치마에 걸려 넘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좀 천천히 넘어져서 나는 등에서 내리듯 떨어졌고 엄마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계면쩍어하셨다.
그 시절 엄마가 사십 중반이 다되어갈 때이니 아주 젊은 편은 아니어서 체력도 달린 것 같았다.
내가 본 우리 엄마 중에 비교적 젊은 시절이었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다음 어떤 엄마는 심하게 넘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등에서 떨어져 다치고 그 엄마도 심하게 넘어져 브로치가 부서졌다. 저고리에 달린 브로치가 부서질 정도면 가슴이 땅에 꽝 부닥친 것이다.
난 그것을 보고 "엄마~ 우린 다행이야!"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엄마들은 다 한복을 입었는데 그런 놀이는 누가 생각해 냈는지 좀 답답하다.
놀이도 시절에 맞게 해야 하는데...
긴치마에 왠 달리기를 하라고,..
다치면 누가 보상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