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그때도 피싱이 있었다.
큰 오빠를 군에 보내고 엄마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
옛날 그 시절은 군생활이 3년이었고 휴가도 정말 나오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어려운 상황인데 더구나 최전방으로 자식을 보낸 것이다.
첫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의 심정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군에 간 첫해 추석엔 혹시 오빠 오면 준다고 송편을 남겨두었는데 이 송편이 말라 다 갈라졌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시절은 요즘처럼 장병이 집에 전화를 하는 일은 불가였다.
왜냐하면 집집이 전화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군정보를 보호해야 해서 그런 것은 있을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심심하면 무장공비가 넘어왔다고 해서 비상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동네에 낯선 남자가 찾아왔는데 이 사람이 가게에 들러 "이 동네 아들이 군대 간 집이 어디냐?"묻자 그 가게 아줌마가 우리 집을 가르쳐 주었다. 그 남자는 또 우리 오빠 이름도 물었다했다.
이 남자는 곧바로 우리 집으로 찾아와 엄마한테
"아드님이 훈련받다 탱크에 깔려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해야 하는데 피를 살 돈이 없다." 했다.
엄마는 너무나 놀라 "내 아들 죽나 보다!"며 동네를 다니며 이십만 원을 꾸어 그 남자한테 주었다.
그 당시 이십만 원은 상당히 큰돈이었다.
엄마는 아들 생각에 돈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애를 끓였다. 군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알 수도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엄마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가게로 가셨다.
"그 사람이 우리 아들 이름을 말했어요?"
"아니, 그냥 군대 간 집 있냐? 물어서 가르쳐 주었지!"
그러자 엄마는 크게 안심하며 천만다행이라며 사기꾼인 것 같다고 안심을 하셨다.
"진짜면 군이나 병원에서 연락이 오겠지..."
물론 오빠가 나와 확인될 때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그 사이 사람을 통해 알아보시고 돈만 잃어 정말 다행이라고 하셨다.
남의 안타까움을 이용해 돈을 벌다니...
참 못된 인간이 있구나를 그 일로 알았다.
그때도 그렇게 피싱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본 첫 피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