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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잡기와 서리의 밤

감성멘토의 생각한대로 있는 그대로

by 감성멘토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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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고향의 여름은
낮과 밤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가 뜨면 웃음이 먼저 깨어났고,
달이 뜨면 모험이 시작되었다.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지던 낮이면
우리는 대야 하나씩 들고 논두렁으로 향했다.
물길을 따라 반짝이던 고디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두 눈으로는 물속 그림자를 쫓고,
두 손으로는 바삐 물을 헤집으며
고디 한 마리를 건져 올릴 때마다
작은 생명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한 기쁨이 밀려왔다.

물은 차고, 햇빛은 따갑고,
맨발엔 흙이 잔뜩 묻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놀이는 없었다.
고디가 팔딱거릴 때면
아이들의 웃음도 함께 튀어 올랐다.

그러다 해가 기울면
근사하게 조용한 또 다른 시간이 찾아왔다.
주황빛 노을이 사라지고
서늘한 바람이 골목을 지나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모였다.

그리고 서리의 밤이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둠을 가르며 옥수수밭 사이를 걸어갔다.
서리는 ‘몰래 얻어오는 일’이었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달빛 아래에서 함께 걷는 그 순간 자체가 가장 짜릿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다 같이 숨죽였고,
누군가 킥킥 웃으면 모두 따라 웃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그 밤공기는
그 시절의 우리를 더 가까이 묶어주었다.

돌이켜보면
여름의 낮은 생명을 잡던 시간이었고,
여름의 밤은 모험을 배우던 시간이었다.
한날 안에서 두 세계가 이어지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이제는 그때의 낮도, 밤도
모두 한 장면처럼 마음속에 겹쳐 남아
가끔 내 삶을 비춰주는 작은 빛이 된다.


“고향의 여름은 낮에는 웃음으로, 밤에는 모험으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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