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날, 어린 취함의 오후

감성멘토의 생각한대로,있는 그대로

by 감성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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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잔칫날은 늘 사람으로 가득 찼다.
마당이 좁아질 만큼 사람이 모이고 말소리와 웃음이 겹겹이 쌓이던 날.

그날이면 마당 한켠에 커다란 솥이 걸렸다.
솥뚜껑을 엎어 즉석에서 볶아내던 잡채는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익어갔고,
그 냄새는 아이들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집어 먹던 잡채. 그 맛은 음식이라기보다
잔칫날이라는 시간의 맛에 가까웠다.
지금도 그날만큼 맛있는 잡채는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 집 한켠에는 늘 막걸리가 있었다.
잔칫날이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평소에 담그던 막걸리였다.

누룩을 넣고 물을 붓고 항아리 뚜껑을 덮어두면
며칠 뒤부터 뽀글뽀글 소리가 올라왔다.
그 소리는 아무 일 없는 날에도 늘 거기 있었다.
부엌의 배경음처럼.

잔칫날이 지나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집 안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떠들썩하던 하루가 식어가던 그 오후의 공기 속에서
나는 그 막걸리를 떠올렸던 것 같다.

남아 있던 막걸리를 어른 흉내를 내며 홍야홍야 입에 대 보았던 기억.
술맛을 알았던 건 아니고 몸이 조금 가벼워졌던 것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그날의 오후가 살짝 둥글게 흐려졌다는 것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술에 취한 게 아니라
하루의 끝, 잔칫날과 평소의 시간 사이에 취했던 아주 어린 오후였다.

엄마가 담그던 막걸리는 그렇게 늘 거기에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을 모르고 지나왔다.
이제 와서야 그 뽀글뽀글하던 소리가 얼마나 오래된 시간의 소리였는지 알겠다.


그리워진다. 어린 날 잔칫날의 막걸리와 잡채가^^


#직장인의 감성레시피#감성멘토#나의 살던 고향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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