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뒤에 숨겨진 감정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눈물이 나던 순간

by 한결온

막내면 막내답게 행동해야지! 라는 말을 듣던 날

어느 곳이나 사람 사이엔 질투와 시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유독 여자들만의 집단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좀 더 날카롭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당시엔 지금처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

어느 날이었다. 업무가 너무 많아 바쁘게 일을 처리하며 칼퇴근을 목표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여직원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나는 그저 업무적인 얘기라고만 생각했고, 급한 일만 끝내고 가겠다고 했다.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회의실로 들어갔을 때, 이미 그곳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여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앉혀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막내가 왜 식당 가면 수저도 안 놓고 물도 안 따라? 막내면 막내 역할을 해야지.”

한동안 이어진 말들에 우선 나는 사과했다.

그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내게도 잘못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일들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고, 바로 옆에 손이 닿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달랐고, 본인들이 기억하고 싶은 장면만 골라서 나를 책망 했었다.

억울함이 가슴 깊이 차올랐지만,

나는 끝까지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회의실을 나왔다.


억울함은 연기가 되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갑작스러운 지적을 받은 나는 머릿속이 텅 비었고, 멍한 기분이었다.

나의 감정은 복잡했고, 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보다 톤이 더 높고, 즐겁게 말이다.

그들이 퇴근하면서 뒤돌아봤을 때,

내 웃음이 괘씸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자기 방어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응어리를 견디기 힘들었으니까.


외롭지만 당당했던 시간

그 사건 이후로 그들은 나를 제외한 채 여자들끼리의 회식 자리를 갖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아렸다.

다행인 건, 나를 지적했던 그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는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 명은 차례로 회사를 떠났다.

돌아보면 그들도 ‘왕따’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웃음이, 그들에게 더 큰 괘씸함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상담사의 시선으로 본다면

너의 경험은 심리학적으로 “관계적 공격성(Relational Aggres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최근의 연구(2024, Crick & Grotpeter,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따르면,

여성 집단 내에서는 직접적인 충돌보다 소외시키기, 은근한 압박, 수군거림 같은 방식의 간접적 공격성이 더 자주 나타난다고 합니다.

너가 겪었던 ‘막내니까 수저를 놓아야 한다’는 식의 압박과,

이후 너를 제외한 채 회식을 진행했던 행동은 대표적인 관계적 공격성의 사례입니다.

너의 웃음이 상대방에게 더 큰 감정적 반응을 불러왔다는 것도 심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공격을 한 사람이 기대한 반응(위축, 사과, 두려움)을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은 오히려 더 큰 적대감이나 괘씸함을 느끼기도 하니까요.

그 상황에서 너는 끝까지 감정을 지키기 위해 웃음으로 방어했고,

그것은 오히려 네가 가진 내적 강인함의 표현이었어요.


비슷한 경험을 겪는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직장에서 이런 은근한 압박을 느낀 적이 있나요?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그러나 명확히 존재하는 불편함 앞에서

억울함과 외로움을 참았던 적이 있나요?

그럴 때 아래의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합니다:

1. “감정일기”를 써보세요. 당시의 상황과 내 감정을 솔직히 적으면, 억눌렀던 감정을 정리할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데 도움을 줍니다.


2. 나의 기준과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세요. “이 행동은 불편하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말하세요. 쉽지 않다면 혼자서라도 “나의 경계”를 정리하고 기억하세요. 자신의 경계를 명확히 하면 감정적 상처를 줄일 수 있어요.


혹시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웃고 있지만 사실은 외롭고 아팠던,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눈물이 나던 순간들.

그때의 자신에게 지금은 어떤 말을 건네주고 싶나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황장애가 시작된 그날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