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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기웃거리다 53

무너짐의 경계

by 인상파


무너짐의 경계


무너져 내린다.

무너지는 것이 나인지,

나를 삼킨 어둠인지,

혹은 세계가 드리운 연막인지,

가늠할 길 없다.


보이지 않는 벽이 흔들리고

침묵의 파문이 가슴을 가른다.

어떤 것은 심연을 붕괴시키고,

어떤 것은 그림자를 해체한다.


휘청거림은 곧 무너짐의 고백일까,

아니면 서 있는 자의 또 다른 독백일까.

나는 쓰러지지 않은 채

붕괴와 그 너머의 경계를 응시한다.


견딤은 언젠가

존재의 해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해명이 나인지,

어둠인지,

혹은 아무것도 아닌지,

밝혀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결국은 사라질 흔적일 뿐이나

무너짐을 지켜보던

또 다른 눈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잊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삶은 때때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그 순간 내가 무너지는지, 아니면 내 안의 어둠이 무너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끝내 무너짐을 지켜보는 또다른 눈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증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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