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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우산 17

아저씨 우산

by 인상파

아저씨 우산, 사노 요코, 박상희 옮김, 비룡소


아저씨 우산


아: 아저씨, 우산 좀 씌워주세요.

저: 저기 저쪽으로 가시는 거지요?

씨: 씨익 웃기만 하고 그냥 가시면

우: 우산은 머리보다 마음을 덮는 거라는데

산: 산처럼 크신 마음 다 젖어버릴 거예요


우산 위로 진실이 또롱 또롱 떨어질 때

멋진 우산을 가진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자랑하고 싶었겠지요. 외출할 때마다 꼭 챙기지만, 막상 비가 오면 젖을까 봐 품에 꼭 안고 다녔습니다. 그런 아저씨는 영화 <빨간 풍선>(1956)의 소년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요. 자신들은 비에 젖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소중한 우산이나 풍선은 비에 맞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그 마음에서 말입니다. 비가 오면 아저씨는 우산을 펼치지 않습니다. 우산을 젖게 하지 않으려고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거나 남의 우산에 기대기도 합니다. 결국 우산이 그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산을 지켜주는 모습이지요. 이 역전된 풍경은 현대인이 물건을 소유하면서도 오히려 물건에 지배당하는 삶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그런 아저씨에게 변화의 계기는 비 오는 날 찾아옵니다. 남자아이가 아저씨에게 우산을 씌워달라 부탁하지만 아저씨는 딴청을 피웁니다. 그때 지나가던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우산 속으로 불러들여 함께 노래를 부르며 사라지지요. ‘비가 내리면 또롱 또롱 또로롱’, 그 노랫말이 아저씨의 마음을 건드린 거지요. 정말로 빗방울이 우산 위로 ‘또롱 또롱’ 떨어지는지, 아저씨는 알고 싶었던 겁니다. 아저씨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보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겠지요?

사노 요코의 <아저씨의 우산>은 우산이라는 사물을 통해 물질에 대한 소유욕과 그로 인한 본말전도의 모습을 풍자합니다. 작가는 <백만 번 산 고양이>, <태어난 아이> 등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독특한 발상과 날카로운 통찰로 인간의 내면을 꿰뚫습니다. 어른의 체면과 이기심이 오히려 아이들보다도 못한 경우를 보여주며 우리가 진짜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삶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지 않았는지, 나의 ‘우산’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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