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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 08

굳은 의지로 새롭게 일어선다

by 인상파

저녁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중학생 독서 수업이 있는 날이다. 나는 일명 개인과외 교습소를 운영하는 개인 과외 교습자로서 학생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있다.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고 하더니 한 학생이 독감에 걸려 자꾸 콜록거렸다. 우리 집 맹이는 거실 제 방석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다가 기침하는 아이의 기침 소리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가 기침 소리가 끝나면 다시 고개를 박고 웅크려 잤다.

집에서 아이들 수업을 한 지 10여 년이 되었지만 오늘처럼 고양이가 제멋대로 굴며 사고를 친 적은 처음이다. 딸아이가 데려간 뭉크와는 달리, 집에 있는 맹이는 아이들이 와도 숨지를 않고 제 털 방석에 느긋하게 누워서 사람들 소리를 경청한다. 오늘은 앉아있는 것이 무료했는지, 아니면 책 키 4칸 높이의 책꽂이 위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컴퓨터 책상 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책꽂이 위에 지뢰밭처럼 놓인 물건들 사이에 섰다. 발 딛을 공간이 마땅치 않은지 앞걸음질 뒷걸음질을 치더니 그만 레고 킹덤 풍차 마을 습격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완전히 박살이 났는데 녀석은 그 소리에 놀랐는지 잽싸게 도망을 쳤다가 다시 그 자리로 달려들어 작은 레고 조각을 입에 물고 발로 할퀴고 난리가 났다.

레고 킹덤 풍차 마을 습격은 2012년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대형마트에서 샀던 제품이다. 녀석은 사 온 그날로 조립하여 제 방 장식장에 진열해놓고 갖고 놀았다. 장식장이 안방으로 옮겨간 이후에는 그에 대한 관심도 식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고등학교 3학년 때 제 방에 다시 모셔와 애정을 주기 시작했다. 수능이 끝나고는 제 방을 청소한다는 구실로 잡다한 물건들을 빼내더니 그것도 자리가 없다며 거실 책꽂이 위로 이사를 시켰다. 그것이 거실 책꽂이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마다 늘 불안했다. 겁도 없이 높은 곳을 뛰어다니는 맹이에게 좋은 먹잇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에야 부서진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맹이는 요즘 사고를 많이 치고 다닌다. 며칠 전에는 아침나절에 화분을 엎었다. 다행히 신문을 깔아놔서 화분의 흙을 치우는데 덜 애를 먹었다. 맹이는 화분을 지금까지 여러 번 엎었다. 키만 멀대같이 크는 선인장이라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화분이 늘 건들거렸다. 그렇기에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맹이의 기세에 눌러 자주 넘어지곤 했다. 치우고 있는 사람이 열 받은 줄도 모르고 아이는 못 오게 말리면 말릴수록 더 달라붙었다. 제깐에는 손을 보태주겠다는 심사인지 엎어진 화분 옆에 드러누웠다. 아몬드나 사탕, 지우개 같은 무게감이 있는 작은 것을 발로 차며 노는 걸 좋아한 아이라 화분에서 작은 돌멩이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꺼내겠다고 쏟아진 흙더미를 발로 후벼팠다. 못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온 아들 녀석에게 맹이의 활약상을 보고했더니 맹이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부터 물었다. 워낙 맹이를 아끼는 녀석이다. 레고 달인인 녀석이 풍차 마을 습격 정도는 설명서 없이도 뚝딱 만들 거라 믿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오늘의 운세, 굳은 의지로 새롭게 일어선다? 무얼까? 형체가 부서진 레고가 다시 제 모습을 갖추듯 새로운 각오로 오뚝이처럼 일어서라는 말이렷다.(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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