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물건을 조심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니 7시 반이었다. 아들 녀석이 어젯밤 12시 넘어 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갔는데 집에 들어온 소리는 못 들었던 게 떠올랐다. 녀석 방문을 열었는데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와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장시간 동안 게임을 할 수도 있는가. 혹여 술을 먹으러 갔다가 너무 취해 집 안으로 못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부랴부랴 현관문으로 달려나갔다.
올 2월,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가장 추운 밤이었을 것이다. 잠을 자고 있는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번호가 맞지 않은지 자꾸 반복하여 누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새벽 4시가 넘었다. 그 시간에 남의 집 현관문을 누르는 간 큰 사람이라면 혹시 강도가 아닐까. 아들을 깨워 상황을 보려고 하는데 녀석의 방이 비어 있었다. 낯선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있다는 생각보다 녀석이 한밤중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겁을 먹었다. 그리고 현관문 밖의 정체가 녀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겁도 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들 녀석이 속옷만 걸치고 토사물이 범벅인 겉옷을 감싸안고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벗어놓은 신발 안에 지갑과 핸드폰을 고이 모셔놓고 아이는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아이의 몸은 얼음장 같았고 이를 덜덜 떨며 춥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아이를 부추겨 화장실로 데려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그 안에 집어넣었더니 그때부터는 울기 시작했다. 평소 눈물을 보이지 않은 아이인데 맺힌 게 많았던 모양이다. 아이는 서럽게 울어댔다. 밤중이라 남의 집에 피해가 갈까 봐 울지 말라고 제재를 했다가 나중에는 그래 너라고 울 일이 없었겠냐 싶어 더는 말리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속이 울렁거린다는 아이에게 세숫대야를 갖다줬지만 토하지는 않았다. 녀석의 침대 옆에서 한참 보초를 서다가 잠든 것을 보고 방을 빠져나왔다.
아이가 그토록 인사불성이 된 이유를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친구와 술집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는 소주를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들이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냐는 친구의 말에 편의점에서 소주 팩을 2병 사서 마셨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이미 마셔본 경험이 있어서 마시지 않고 아들 녀석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파트 동 입구까지 동행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멀쩡해서 다 기억이 나는데 집 앞까지 온 기억은 희미하고 그 이후로는 캄캄하다고 했다. 젊은 객기로 별 희한한 실험을 다 하려 드는구나 싶었지만 실험 정신 하나는 높이 사 줄만 했다. 녀석은 그 사건 이후로 술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다고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한동안은 정말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이후에는 먹더라도 목을 축일 정도가 되었다.
그런 전력이 있는 아이라 이번에도 현관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하여 현관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행히 아이는 없고 신문배달부만 왔다갔는지 신문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주 활기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잘 있으니까 걱정을 말란다. 녀석은 그러고도 3시간 정도 지나서 집에 들어왔다. 게임 끝나고 술이라도 걸치고 친구네 집에서 잤나 했는데 그때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했다는 것이다. 내 입에서 허걱 소리가 났다. 무슨 놈의 게임을 10시간 가까이 한다는 말인가. 돈 주고 앉아있으라고 시켜도 못할 것 같은데. 그것도 젊어서 가능한 일일까. 하여튼 뭘 시작하면 끝을 보려는 근성 하나는 높이 사주고 싶었다.
늦으면 늦는다고 카톡이라도 보내라는 잔소리에 녀석은 자기도 이제 다 자란 성인이니까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파를 타고 오는 세상은 얼마나 흉흉한 소식으로 가득한가 말이다. 그러니 자식들이 집 밖을 나선다고 하면 이래저래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다 자란 성인 자식이라고 해도 늘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부모들이 마음을 못 놓는 이유일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깨지기 쉬운 물건 같아서 조바심을 내게 되고 애지중지 하는 존재가 아닐까.(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