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딸아이는 성인이 되면 영화관에 18세 청소년 불가 영화를 꼭 보러갈 거라고 벼르더니 고등학교 졸업한 해에 청소년 불가 영화 <미드 소마>가 개봉되자 혼자 보러 갔다. 영화를 관람하고 돌아온 딸아이는 영화가 충격적이었고 보고 앉았기에 힘들고 역겨운 부분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것은 비단 딸아이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딸 옆자리에 앉은 커플은 영화 도중 일어나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영화 보러 안 가길 잘 했구나 싶었지만 여전히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남았다.
<미드 소마>의 감독이 만든 <유전>은 딸과 함께 봤었다. 죽은 자의 혼령이 기거하고자 하는 산 사람의 몸을 찾는 공포 영화였는데 감독이 말하고자 한 의도가 무엇인지 잘 와 닿지 않았다. 영화에서 충격적인 것은 주인공의 여동생이 호흡곤란이 와서 병원에 실려가는 도중에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에 머리가 잘려 나가는 모습이다. 이후에 목 없는 시신에는 벌레들이 들끓었는데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했다. 결국 인간의 몸을 원하는 죽은 혼령이 승리하면서 악령의 도래로 이어진다.
오늘 넷플릭스에 <미드 소마>가 탑재돼 있는 걸 알고 감상했다. <미드 소마>는 하지 축제가 열리는 호르가라는 스웨덴의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다. <미드 소마>도 종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전>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과는 달리 산 자들이 초월적 존재를 위해 살아있는 인간을 제물로 받친다. 전자가 어둡고 불길한 분위기 일색인데 비해, 후자는 빼어난 영상미로 관객을 사로잡는데 그것은 잔혹한 사건들을 포장하는 효과가 있다. ‘미드 소마’는 90년만에 돌아온 종교축제로 9일간 계속된다. 9명의 희생제물이 필요했다는 것은 나중에 드러난다.
마을 공동체가 인생의 주기를 계절의 순환에 빗대 살아가는 부분은 아주 그럴듯해 보였다. 자연친화적인 철학을 보여주고 있어 공감이 갔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말이다. 마을 공동체는 인생을 18년을 단위로 4주기로 나눈다. 탄생에서 18세까지의 봄, 탐험하는 시기의 여름, 일하는 시기의 가을, 교육하는 시기의 겨울이 그것이다. 그럼, 인생의 겨울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새로운 생명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돼 주는 것이다. 그래서 72살이 지나면 죽어야 한다. 축제의 초반부는 그 죽음으로 시작되는데 그 죽음 의식에는 집단적 광기가 엿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딸아이와 통화를 하였다. 딸아이는 아직도 생생하게 영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보다 마을 공동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맞장구를 쳤다. 전체주의적인 발상이기는 하지만 질적인 삶이 거의 제로가 되는 노년기를 견디기보다는 그 시기를 끊어냄으로써 땅 보탬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자연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딸아이는 죽더라도 잘 죽어야 한다며 절벽에서 다리가 먼저 떨어져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노인의 고통을 상상하면 끔찍하다고 했다. 영화를 본 느낌이 너무 강렬해 오늘의 운세 따위는 나와 아주 먼 거리에 있었다.(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