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이 편안해진다
결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쭉 신문을 구독해오고 있다. 27년 정도 돼 간다. 처음 구독한 신문은 남편이 본가에서 봤던 한겨레 신문이었다. 딸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 나는 한겨레에 실리는 ‘비빔툰’이라는 일상 만화를 재밌게 봤었는데 딸아이가 나중에 그 작가를 ‘추앙’할 정도의 팬이 되었다. 한겨레신문에 보냈던 한결같은 신뢰가 깨진 것은 박근혜 탄핵 이후 대선이 시작되면서로 기억한다. 신문 논조가 마음에 안 들어 경향신문으로 돌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독하는 경향신문에 오늘의 운세란이 실린 한국일보가 끼어들어 오면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에는 1932년생부터 2003년생까지 동물띠별로 그날의 운세를 적어놓고 있다. 사실 뉴스보다 더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운세를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운이라는 것도 능력이고 필연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살면서 지금까지 어디에 가서 그해의 운세나 관상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심심풀이로 읽고 말았던 운세란을 적극적으로 내 생활에 끌어들이게 된 것은 작년 하반기에 네이버 주간 일기 챌린지를 시작하면서다. 오늘의 운세에 기대 일상을 돌아보고 역으로, 일상을 적다 보니까 어느 단계에서 운세와 맞아떨어져 있는 희한한 경험을 하면서 운세를 아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의 운세란에 적힌 것을 종합해 보면 두 가지 정도로 간추릴 수 있다.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을 들으면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 그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에는 신경을 안 쓰기도 하지만 사람이 자중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미연에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결국 좋은 일이건 좋지 않은 일이건 어차피 일어나게 돼 있으니 운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차피 일어날 일에 대한 결과를 예상하며 그것을 최대화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가지는 것일 게다.
오늘 70년 개띠의 운세는 ‘심신이 편안해진다.’다. 70년 개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는 36년 쥐띠, ‘마음이 편해진다.’는 96년 쥐띠, ‘몸과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온다.’는 43년 양띠 등이 맞이할 하루도 편안하다. 이들뿐인가. 37년 소띠는 ‘바라던 일이 뜻대로 성사’되고, 50년 호랑이띠는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집안이 풍요’로워지고. 39년 토끼띠는 ‘좋은 기운이 집안으로 모’인다. 41년 뱀띠는 ‘한가롭고 태평’하고, 77년 뱀띠는 ‘일이 쉽게 해결’되고, 56년 원숭이띠와 33년 닭띠는 ‘바라던 소망을 성취’하니 그들 또한 편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다 보니 운세는 보나 마나라는 것,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더 깊어진다.
그럼에도 운세에 관심이 가는 것은 그것이 꼭 집 밖을 나서는 자식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정어린 잔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운세에 있는 말들은 실은 늘 어머니에게서 듣던 차 조심해라, 밥 먹고 다녀라, 건강해라 등과 같은 의미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리워지는 나이를 먹은 것이다.(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