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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05. 2023

현대판 부적 행운의 2달러

   나는 20여 년 전, 부적을 만들었다. 부적이란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 준다는 글씨, 그림, 기호 등을 그린 종이를 가리키는 종교 용어다. 부적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글씨와 알 수 없는 그림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고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위로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30여 년간  다녔외환은행은 외국환거래와 무역금융의 원활을 도모함으로써 한국 경제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한편, 세계 각국의 통화를 외국은행들과 직접 수출입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였는데, 거래은행들은 주로 유럽, 홍콩, 싱가포르와 미국 은행들이었다. 또한 전 세계에 지점망을 보유한 국제적 상업은행으로, 규모가 상당히 커서 외국은행들은 외환은행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1999년 본점 외환업무부 부부장으로 재직하던 어느 날, UOB(United Overseas Bank) 은행 싱가포르 본점으로부터 초대장이 왔다. 그 초대장의 주요 내용은 외국통화 수출입 가격 협상 및 외국통화 업무처리 견학에 관한 제안으로 방문할 곳은 이 은행의 본점 소재지, 싱가포르와 홍콩 지점 및 상해 지점이었다. 

필자 (왼쪽에서 세번째)

   휴가를 고 편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먼저 홍콩으로 갔다. UOB 홍콩지점을 방문하여 지점장과 외국통화 수출입업무에 관한 면담을 한 후, 외국통화 수출입 부서에도 방문하여 위폐 감별 능력이 충분한지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틀 , 싱가포르에 있는 UOB 본점을 찾아가 그 은행 책임자와 외국통화 수출입 가격 협상을 시작했다. 먼저 외환은행은 한국을 대표하는 외국환 전문은행으로서 거래량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외국통화 수출입 원가분석 자료를 근거로 외환은행에 유리한 가격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서로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외환은행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합의하고 최종 결과는 서면으로 통보하기로 했다. 미팅이 끝나자 그 은행 책임자가 UOB 은행 방문 기념으로 싱가포르 통화  장이 나란히 붙어있는 기념 지폐를 선물하였다. 감사 표시로 좋은 선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날 오후, 홀가분하게 가족들과 센토사섬과 시내 관광을 하는데, 7살인 아들이 음식이 바뀐 탓인지 변비가 심해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 싱가포르 공항 의무실을 찾아가 아들은 주사를 맞고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후, 아들이 거의 실신 상태가 되자 즉시 승무원에게 의사를 찾아달라고 부탁다. 의사를 찾고 있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의사 한 사람이 달려아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는 아들이 위급하지는 않지만 2시간 후에 상해에 도착할 예정이니 앰뷸런스를 공항에 대기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마침내 상해공항에 도착하  가운을 입은 의사 한 명과 UOB 상해지점에서 보낸 승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바로 상해대학 부속병원으로 달려가, 아들을 입원시켰으며 검사결과 병명이 장염이었다. 치료를 시작하자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서울로 급히 돌아왔다. 아들은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여 며칠 더 요양하였다.      


   그 요란한 출장 겸 휴가를 마치고 은행에 출근하여 책임자 회의 시간에 출장 성과와 향후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아울러 외환은행도 UOB 은행처럼 통화로 기념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고 부장님도 적극적으로 찬성했.

   나는 미국 사람들이 2달러 지폐를 행운을 가져오는 돈이라고 믿고 있는 관습에 착안하여 계획을 수립했다. 미국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판단해 볼 때, 2달러 지폐는 발행량이 극히 적고 사용하기에도 불편하여 미국 시민들은 기념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중에 유통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2달러 지폐 확보가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외환은행과 거래가 있는 미국 Citi Bank 책임자를 만나, “만일 Citi Bank에서 2달러 신권을 조달해 주면 경쟁은행과 비슷한 가격에 수출입 물량을 늘려주겠다”라고 제안했는데 약 일주일 만에 회신이 왔다. 그 은행에서 미국 연방 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과 접촉한 결과, 외환은행이 필요로 한 물량은 공급해 줄 수 있다고 다.

   이 회신을 받자마자 외환은행 로고가 들어간 카드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문학을 좋아하는 부장님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이야기를 기초로 ‘신비의 미화 2달러 지폐'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썼으며 영어도 함께 병기했다. 그렇게 행운을 상징하는 2달러 카드가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약간 레는 마음으로 홍보기사를 작성하여 각 신문사로 발송했다. 경제신문사는 호의적으로 기사를 크게 실어주었고, 특히, 내가 작명한 ‘현대판 부적’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다.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은행의 관계기관과 거래처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고 2달러를 구해 달라는 청이 넘쳤다. 전국 지점에 행운의 2달러와 카드를 발송하여 고객에게 사은품으로 활용할 것을 권유하는 공문을 보냈다.

   거래처 사장님들은 행운의 2달러 지폐를 영업장 데스크에 비치하였고, 개인 고객들도 행운의 기를 받으려고 부적처럼 지갑에 넣고 다녔다. 이 지폐가 정말로 행운을 가져왔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음식점이나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반갑다. 행운의 2달러는 미국의 법적 지폐이므로 경제성 측면에서 볼 때, 다른 부적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자부한다.

   가끔 아들방, 책장에 서 있는 2달러를 바라보면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서 마음고생을 했던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행운의 2달러 지폐 덕분인지 잘 자라준 아들이 고맙고 기특하기만 하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에 있다. 행복이란 일상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현대판 부적, 행운의 2달러’가 인생의 난관을 극복하고 내일의 꿈을 키워주는 현대인의 사랑받는 소장품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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