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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3평짜리 옷가게

<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9화

by 이봄



지인의 달콤한 제안에 퐁당 빠져버린 우리는 덜컥 충무로에서 옷가게를 시작했다. 대한극장 바로 뒤에 위치한 3평짜리 자투리 공간. 근처에 동국대학교가 있었지만 대학가라고 하긴 좀 애매한 곳에 있었다. 그렇다. 지금에서야 애매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오 대학교까지 근처에 있네?’ 하며 어쩌면 되게 괜찮은 위치일 수도 있겠다고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긍정적일 수가 없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STAY!!’를 외치던 매튜 맥커너히에 빙의해 그때의 나를 말려봤자였다.




그땐 이미 모든 게 지쳐있었고 지금 이 지겨운 생활에 뭐라도 환기가 될 수 있는 전환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인의 제안은 11월이었고 매장 계약과 시작도 그 달에 바로 진행됐다. 쇼핑몰 사무실에 있던 온갖 짐들을 레이에 빽빽이 실어 충무로 옷가게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준비해 나갔다. 쇼핑몰은 남편과 같이 했지만 여기서는 이제 혼자서 해야 한다. 지하철로 2시간 남짓 걸리는 충무로 매장으로 출근을 하고 동대문을 가야 하는 날이면 오전에 일찍 나가 동대문 들렀다가 바로 매장으로 출근하는 패턴으로 다녔다.




역시나 온라인 쇼핑몰보다는 옷가게, 그러니까 실물 매장이 있는 오프라인을 하고 싶어 했어서 그런지 상세페이지 작업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온라인과는 다르게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2017년 11월. 옷가게 오픈.



길가에 바로 보이는 메인 유리창엔 마네킹 3개를 세워 신상옷들을 입혀주고 핫핑크 네온으로 주문제작해 매장이름까지 걸어줬다. 내 매장을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정리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다행히 3평밖에 안 돼서 옷을 적당히 채우고 진열해도 풍성한 분위기였다. 첫 매장은 아담하게 여기로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픈하자마자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대학가에서 좀 떨어져 있었지만 대학생들도 조금씩 왔고 주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도 한 두 명씩 오기 시작했다.




한 번은 어떤 아주머니 손님 세 분이서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며 열심히 구경하시더니 아니나 다를까 흥정을 시도하셨다.


“이거랑 이거랑 같이 할 테니까 얼마에 안될까~?”

바로 넘어가지 않고


“이거까지 같이 하시면 얼마에 해드릴게요~^_^”

받고 하나 더.


“어머머 이 언니 장사 잘하시네~ 네 그렇게 주세요~”



말없이 지켜보면서 어떤 옷들을 집었다 놨는지 캐치해 놨다가 다 가져가도록 유인했고 가볍게 성공했다. 아. 이 짜릿함. 난 역시 옷가게야! 또 기억나는 다른 손님은 딱 봐도 스타일이 좋은 어떤 여자 손님이셨는데 조용히 이것저것 구경하시더니 몇 가지를 사가셨고 또 오겠다는 인사까지 남기시곤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가셨다.


그리고 친구까지 데리고 몇 번 재방문해주신 대학생 단골손님 한 분과 마네킹을 가리키며 ‘입혀진 대로 주세요’ 하던 쿨한 손님들. 내가 마련해 놓은 내 옷가게에 옷을 보러 손님들이 들어온다는 거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준비와 오픈으로 정신없던 연말이 지나고 다음 해 1월. 새해, 구정이 다가왔다. 저번과는 다르게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손님이 부지기수. 이유가 뭘까. 원래 옷장사도 겨울이 비수기라곤 하지만 그런 날이 열흘 하고도 한 달을 훌쩍 넘기다 보니 슬슬 초조해졌다. 온라인도 병행하며 해왔지만 온라인은 애초에 오프라인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옷가게의 상황들이 한눈에 보이니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 달이 넘게 지나자 오프라인 매장의 가장 큰 걱정이었던 임대료에 대한 압박감이 스멀스멀 내 발목부터해서 어느새 턱밑까지 조여오는 듯 했고 하필 그런 와중에 몸살감기까지 심하게 걸려버리고 말았다. 오픈발도 지났고 이제 차차 제대로 해봐야 하는데 이게 웬걸. 코감기 한번 걸리는 것도 연중행사였던 난데 1월 한파, 3평짜리 매장의 3면 통유리창 외풍은 이길 수가 없었나 보다.




3평 사이즈의 아담한 매장은 옷을 조금만 채워도 풍성해 보이게 해 준다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통유리 틈새로 뚫고 들어오는 찬바람은 막아주지 못해 그대로 내 몸을 하루종일 얼어붙게 했다. 히터를 최대로 틀고 난방기를 하루종일 쬐고 있어도 손 발은 늘 시렸고 추워서 종일 긴장 상태로 있었다. 뼛속까지 파고들었던 외풍은 결국 심한 몸살감기를 불러왔다. 온몸이 펄펄 끓고 덜덜 떨렸다. 두꺼운 극세사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어도 너무너무 춥고 으슬으슬한 게 통유리창 외풍을 계속 맞고 있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그런 오한은 처음이었다.


일주일 정도 앓아누웠고 더 쉴 수는 없으니 회복이 덜 된 채로 매장에 나갔다. 여전히 몸살기운이 남아있는 몸을 끌고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동대문까지 찍고 충무로 매장으로 출근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몸으로 그렇게까지 했건만 장사는 냉정했고 역시나 매장은 추웠다.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 퇴근 때까지 1~2명이 전부, 아예 없는 날이 며칠 지속됐다. 창밖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옷 단단히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퇴근을 재촉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좁은 매장에서 혼자 오들오들 떨다가 퇴근하기를 며칠, 확 불어난 고정지출에 대한 부담이 꽤나 크게 다가온 상태에서 나가는 돈만 죽죽 찍혀있는 통장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신상은 계속 들여와야 하니 지출은 그대로인데 들어오는 돈은 없는 이 상황, 벌리는 건 없고 계속 쓰기만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거기다 몸까지 아프니 매장에 나가기가 두려워졌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기가 확 꺾여버렸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자신감이란 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장사하다 보면 누구나 당연히 겪는 압박감인데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몸이 아팠다는 핑계까지 덧붙일 수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갑자기 내 앞에 모든 것들이 빚더미처럼 느껴졌다. 한번 겁을 먹기 시작하니 혼자 있어도 가득 차는 고작 3평짜리 매장도 30평, 300평 같았다. 히터를 아무리 틀어도 통유리 틈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조차 지긋지긋했다.


월급쟁이 아르바이트생으로만 살았어서 그런 걸까. 손님도 없는 매장에 난생처음 알바생 때의 내 월급만 한 임대료를 걱정하려니 그럴 땐 어떤 배짱으로 밀고 나가야 되는지 몰라 그냥 숨고만 싶었다. 멍청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딱 내 모습이었다. 고작 4달 전, 11월에 계약할 때의 그 대담함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에 놓인 상황에 무너져 자신감만 뚝뚝 떨어졌고 결국 매장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붙들고 했어야 될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수중에서 사라져 가기만 하는 돈 앞에 무너지고 나약한 정신에 지배 당해 그땐 그런 책임감 따위 없었다.


3월에 매장을 내놓고 다음 임대인을 손님 기다리듯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이것도 맘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 매장을 보러 온 사람이 있던 날 안산에서 충무로까지 2시간 걸려서 가놓고는 열쇠를 두고 와서 헛걸음을 하기도 했다. 결국 보증금을 다 까이고 나서야 매장을 뺄 수 있었다.




보증금이 다 까이는 그 기간 동안 이상하게 알바조차 잘 구해지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존감까지 낮아져 피해의식에 빠져 살았다. 이 옷가게를 책임지지 못 했다는 것에 대해 은근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옷장사에 재미까지 느꼈었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려 옆에 있는 남편까지 괴롭게 만들었다. 이 매장이 그저 나에게서 빨리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그땐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겁에 잔뜩 질려 그냥 주저앉아버렸다.




3평짜리 코딱지만 한 공간에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쟁여놨는지. 기대감과 함께 차곡차곡 들여왔던 매장 물건들은 차디 찬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채 다시 안산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충무로에서 안산까지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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