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7화
꿈같은 파리 여행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혼인 신고를 했고 진짜 부부가 된 우리의 신혼 일상이 시작됐다. 연애할 때처럼 똑같이 밖에서 데이트를 하고 같은 집에 같이 들어간다는 게 낯설기도 했지만 이게 진짜 신혼의 맛이었달까? 맛있는 야식도 종종 시켜 먹으며 영화도 보고 다행히 살은 남편만 쪘고 반찬도 이것저것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둘이서 소꿉놀이 하듯 알콩달콩 신혼부부로서의 삶을 조금씩 꾸려나가며 재밌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감사하게 얻은 우리의 첫 신혼집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도 했다. 교회 사람들, 내 친구들, 남편 친구들, 시댁, 친정 가족들까지 집들이만 몇 달을 했던 것 같다. 덕분에 두루마리 휴지 모자를 걱정 없는 풍족한 신혼생활이었다.
남편은 24살 때부터 하던 대로 아버님 회사에서 생산직 일을 했다. 이른 시간에 출근해 아침부터 종일 몸을 써가면서 고된 일을 하고 녹초가 돼서 집에 돌아오는 날이 반복됐다. 나는 한대앞 할리스커피에서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 이제 결혼도 했으니까 신혼부부답게 남편 아침밥을 차려주는 그런 현모양처 같은 아내를 꿈꾸며 남편 출근하는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꼭 밥을 차려주리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얼마 못 가 남편의 아침밥 환상을 와장창 깨버렸다.
나부터도 일단 ‘아침밥’이라는 걸 한 번도 먹고 산 적이 없어서 그 이른 시간에 부엌에서 뭔가를 한다는 게, 아니 그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조차도 적응이 안 됐다. 남편 출근 시간이 오전 7시였어서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 준비를 해야 아침 먹을 시간이 됐다. 나는 그때 다녔던 알바 출근시간이 오후 12시라 그 시간이 크게 부담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부지런히 움직였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잠을 이기지 못해 남편 아침밥 따위 개나 줘버린 게으른 아내가 되어버렸다. 현모양처는 얼어 죽을 며칠은 꾸역꾸역 해봤지만 하루아침에 바뀌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은 신혼 아침밥 로망 같은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매일 아침 혼자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했다. 아직까지도 남편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다른 부부들은 아침밥 잘 차려먹고 출근하시나 문득 궁금하다.
그래서 저녁밥은 악착같이 내가 챙겨주려고 했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면 어두컴컴한 집에 혼자 들어오는 일 없게 친구들을 만나도 꼭 그 시간 맞춰서 집에 들어갔다. 아침밥이 안 된다면 저녁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내가 챙겨야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 자주 만나던 친구들이 좀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나 신혼답게 생각지도 못한 작고 사소한 것들로 종종 부딪혔다. 말투로 다투는 건 기본이었고 왜 우리 남편은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지? 수건걸이에 수건을 촥 펴서 걸어놓는 게 아니라 왜 돌돌 말아서 얹어 놓는지? 양말을 왜 뒤집어서 벗는지? 쓰고 나서 왜 제자리에 두지 않는지? ..?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는 남편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됐다. 아니 나는 잔소리라기보단 왜 그러냐 묻고 말을 한 것인데 남편은 바가지 박박 긁는 마누라라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듣기 싫은 티를 냈다. (.. 잔소린가..?)
결국 양말 뒤집어 벗는 건 아직까지도 그대로다. 그렇게 벗는 게 잘 벗겨진다나 뭐라나. 그래서 나는 뒤집어진 상태 그대로 세탁을 하고 그대로 정리해 놓는다. 남편도 역시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쌤쌤으로 치자..)
한대 앞 할리스커피 알바를 그만두고 9월부터 11월까지 딱 세 달 동안만 친구가 일하던 쇼핑몰에서 같이 일하게 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굳이 쇼핑몰에서 일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편은 아버지 회사를 다니면서도 계속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했고 그렇다면 어떤 아이템으로 하면 좋을지, 팍 떠오르는 건 없고 고민만 하던 중에 나는 옷을 좋아했어서 그럼 쇼핑몰을 같이 한번 해볼까? 해서 일하게 됐다. 다른 알바는 많이 해봤어도 옷 관련해서는 일해 본 적이 없어서 먼저 쇼핑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했다.
그때 일했던 쇼핑몰에서는 촬영한 사진들 가지고 어떻게 편집을 하고 정리를 하는지 전반적인 사무 업무를 우선적으로 배웠다. 옷뿐만이 아니라 신발, 모자, 가방, 액세서리 등 여러 가지를 신경 쓰고 해야 되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마침 친구가 MD로 일하고 있었어서 쇼핑몰 실무를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아는 지인분이 또 남자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던 덕에 동대문 사입에 대해 자세히 듣고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10월 중 금요일 밤에 남편이랑 동대문 견학을 가보기로 했다. 두근두근 말로만 듣던 그 동대문 새벽시장을 우리 쇼핑몰 준비를 위해 가보다니, 옷 구경 왕창 할 생각에 마냥 설렜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동대문에 도착해 정신없이 구경했다. 생각했던 그림이랑 다르게 정말. 어마어마하게 정신이 없었다. 분명 시간은 새벽인데 여기만 초저녁쯤, 아니 그냥 대낮이었고 동대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 자체였다.
개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도매상가는 디오트라는 곳인데 여긴 그냥 건물이 통째로 옷장인 것 같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가뜩이나 무더기로 쌓여있는 옷들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는데 옷만큼이나 사람들도 무지하게 많았다. 그 좁아터진 공간 안에서나 밖에서나 새벽부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말 말도 못 하게 많았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옷을 봐야 하는 건지 정신 바짝 차리고 두 눈 부릅뜨고 봐야 그나마 뭐가 보였다.
동대문 도매시장을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옷 하나 파는 게 참 쉽지 않구나 싶었다. 거기다 도매 언니들은 또 왜 이렇게 늘 화가 나 있는 건지. 나는 이런 일이 아예 처음인 데다가 앞으로 새벽마다 이 예민한 언니들을 여럿 상대해야 된다는 생각에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쇼핑몰을 시작하고서 그 언니들을 상대하는 게 최대 관문이었다.
어찌어찌 첫 동대문을 견학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 가서 아침 첫차 뜰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 집에 갔다. 처음이었어서 계획도 없이 무작정 돌아보느라 몇 시간을 봤는지 모르겠다. 이제 이곳을 제 집 드나들 듯 오겠구나. 설렘반 걱정반으로 우린 그렇게 첫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