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6화
두근두근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프랑스 파리로 정했다. 왜냐면 내가 에펠탑을 너무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정말 다른 거 없이 그냥 에펠탑. 그거 하나에 꽂혀서 다른 데는 생각도 안 했다. 남자친구는 22살 때 유럽여행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어서 파리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더 좋다고 했다. 군대 전역하자마자 혼자 다녀왔던 여행지를 결혼하고 부부가 되어 둘이서 가면 또 새로울 것 같다며 그렇게 파리로 가게 됐다.
오전예배를 드리고 집에 들러 여행짐을 챙겨 공항으로 갔다. 공항이라니. 파리라니! 그것도 결혼해서 신혼여행으로 가는 거라니! 소리 벗고 팬티 질러!@₩!&!!!! 이제는 남편이 된 이 사람과 처음으로 같이 가는 여행에 기분이 내내 들떠있었다.
우리가 탑승할 에바항공은 대만에 한번 경유하는 비행기였는데 인천공항에서 출발이 조금 지연되는 바람에 다행히 경유시간 없이 바로 파리로 바로 갈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탔고 이륙하자마자 기내식을 주셨다. 그리고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하늘 위였다. 먹고 자고 싸고 공중사육을 당하며 12시간을 꼬박 걸려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
아 파리냄새. 에펠탑은 어디로 가면 보이는 걸까? 유럽 분위기 물씬 나는 파리 시내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캐리어 하나씩 덜덜덜 끌고 예약해 놓은 호스텔로 향했다.
우리가 묵을 곳은 파리 시내에서 지하철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어쩜 가는 길도 하나도 안 지루한지. 골목골목 이리저리 구경하다 도착한 빈티지호스텔. 들어서자마자 핀터레스트 감성에 침이 줄줄 나왔다. 보통은 신혼여행 때 고급 호텔로 잡고 여유 있는 신혼여행을 즐긴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그런 취향도 아니고 나가서 돌아다니기 바쁜 관계로 대애충 가성비 좋은 호스텔로 잡았다. 체크인을 하고 안내받은 방으로 가려는데, 음. 파리는 엘리베이터 회사가 없나 보구나? 사이좋게 캐리어 하나씩 들고 4층까지 올라갔다. 아무렴 어때? 괜찮아. 파리니까!
402호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테라스였다. 창을 열어보니 예쁜 유럽식 건물들과 파리 골목이 바로 코앞에 펼쳐졌고 아주 그냥 여기 앉아서 빵 한 입 뜯고 커피 한 잔 딱 하면 그냥 나는야 파리지앵이다. 이럴 시간이 없다. 이제 얼른 나가서 파리 시내를 즐겨보자. 우리는 여행 때 제일 부지런해지는 한국사람이니까. 짐을 대충 풀어놓고 곧장 에펠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근데 일단 너무 배가 고팠다. 비행기에서 그렇게 사육을 당했지만 또 파리에 있으니 입으로도 즐겨야지. 가는 길에 보인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샌드위치랑 타르트를 사 먹었다. 한국에선 분위기 따져가면서 들어가는데 여긴 파리이지 않은가? 그냥 길 가다 막 들어간 카페도 멋있고 맛있었다. 나 파리 카페에서 파리 빵 먹는 파리지앵이다. 빵 몇 입 먹고 파리 감성에 한껏 취한 채로 또 걸었다. 에펠탑을 보러 가는 길에 있던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도 어마어마했다. 그냥 건물들도 예쁜데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서있자니 바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파리의 하늘과 꽃들, 건물들, 사람들 구경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갈 것 같았다. 바로 옆 센강을 따라 엽서와 그림을 파는 노점상들이 쭉 있었는데 그 앞에 앉아 계시던 노인분들 까지도 너무 파리스럽게 낭만적이었다.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커다란 나무들과 햇빛에 윤슬이 비치는 센강, 멋스럽게 나이 든 노점상들까지. 우리는 더 진득한 에펠탑 감상을 위해 빵집에 들러 예쁜 디저트랑 커피를 사들고 열심히 걸었다.
이리저리 정신없이 구경하다 고개를 딱 들었더니 저 멀리 건물들 사이로 빼꼼 에펠탑 끄트머리가 보였다. 내가 신혼여행을 파리로 정한 이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얼른 보고 싶어서 걸음을 재촉했다. 끄트머리만 보였던 에펠탑이 몇 걸음 더 갈수록 점점 모습을 드러냈고 드디어 완전체를 마주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에펠탑을 보자마자 나는 눈앞에 놓인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었다.
쩌어기 멀리까지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 위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고 그 잔디밭 양쪽 길목을 따라 쭉 놓여있는 멋스럽게 다듬어진 큰 나무들, 그 나무 아래 벤치들, 그리고 그 중앙엔 커다란 에펠탑.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어도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파리 도시 어디쯤 건물 사이에 떡하니 에펠탑 하나 놓여있겠지 했는데 막상 보니 실제 풍경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에펠탑을 중심으로 둘러싸여 있던 나무들과 잔디들 그리고 그 공간을 즐기고 있는 많은 사람들까지. 그냥 철근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파리의 대표 랜드마크이지만 에펠탑을 배경으로 큰 공원이 형성되어 있는 그 풍경이 나에게는 정말 너무너무 예술적이고 황홀하게 다가왔다. 에펠탑 뽑아갈 수 없을까요?
날씨도 어찌나 좋던지. 내내 감탄을 연발하면서 적당한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고 사들고 온 예쁜 디저트를 풀었다. 빵 한 입, 에펠탑 한 입. 파리로 오길 정말 잘했다. 계속 보면서도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한참 동안 사진을 찍고 눈으로도 담고 부지런히 에펠탑을 즐기다가 자리를 옮겼다.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도 보고 파리에서 유명하다는 스폿은 다 찾아다니며 구경했다. 근데 어쩐지 에펠탑을 보고 나니까 다른 건 그저 그랬다. 나에게 에펠탑만큼의 충격을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잔디밭에서 돗자리 깔고 살래도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이 아름다운 파리에도 불편한 점이 있었다. 바로 제일 중요한 화장실인데 우리나라는 상가마다 화장실이 있지만 여긴 아니다. 공중화장실도 돈을 내야지만 들어가서 이용할 수 있고 그마저도 찾기가 힘들었다. 겨우 하나 찾아서 들어가면 정말 지저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볼 일을 해결하고 나왔었다. 길거리에 찌린내가 많이 난 이유가 있었구나. 방금 했던 말 정정하겠다. 에펠탑 다음으로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화장실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파리는 맥도널드가 엄청 많았는데 꽤 커서 안에 화장실도 꼭 있었고 길 가에 있는 화장실보다 깨끗했다. 공중화장실보다 맥도널드 찾기가 더 쉽다니. 그래서 나중엔 무조건 맥도널드만 찾아다녔다.
우리가 갔을 때가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사건 이후였는데 그래서인지 가는 맥도널드 입구마다 덩치 엄청 큰 경호원 몇 분이서 손님들 가방을 모조리 검사했었다. 남편은 그때 가방에 신라면 한 봉지를 챙겨 갔었는데 검사할 때마다 라면봉지 부스럭부스럭거려서 민망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그 신라면은 에펠탑 야경을 보면서 사이좋게 뿌셔 먹었다.
4박 5일 여행 내내 에펠탑을 보러 갔다. 밝은 대낮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본 에펠탑, 어두운 밤에 반짝거리던 에펠탑. 언제 봐도 예뻤고 두근거렸다. 그리고 아름다운 에펠탑 근처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도 낼 겸 멋지게 스테이크도 썰어보고 싶었지만 계속 주문을 실패해서 우리가 원했던 그 두툼한 고기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 썰어볼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마리 앙투아네트 주 촬영지였던 베르사유 궁전에서 우리는 첫 부부싸움을 했고 그 시대 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여기에 방이 몇 갠지 알고는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컸다. 숙소 근처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가서 파리 예술가들 그림을 안주 삼아 맥주도 한 잔 하고, 높은 계단에 걸터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가만히 파리 시내를 구경하며 예쁜 노을도 봤다. 이 광경은 아무리 지독한 이과가 봤어도 바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파리의 노을이었다. 뤽상부르 공원은 그냥 그곳을 걷는 것 자체가 쉼이었고 파리 곳곳의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는 머릿속을 퐁퐁거리게 만드는 영화 속 그 자체였다. 아마 신혼여행이어서 더 그랬을 수도 ?
여행 마지막날은 가족들과 지인분들께 보답으로 드릴 선물을 이것저것 왕창 사고 보따리가 부족해 급하게 파리에서 중국산 캐리어까지 하나 더 샀다. 그리고 돌아오는 날은 대만에 한 번 경유를 했다. 6시간 정도 대만 시내에 나가서 그때 딱 굉장히 핫했던 대만카스테라를 원조 집에 가서 먹어보고 시장도 구경했다. 땅에 쓰레기 하나 안 보이는데 왠지 동남아 같기도 하고 일본 같기도 했다. 유럽물 잔뜩 먹고 대만에서 마무리 지은 신혼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