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질려버린 결혼 일기> 8화
여자들의 로망 쇼핑몰 사업을 해보다니. 맨날 예쁜 옷 보면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잔뜩 부풀었다. 워낙에 옷을 좋아했으니까 나는 잘할 거라고 스스로 자신만만 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다들 그랬다. 너랑 잘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되게 잘할 것 같다며 두둥실 구름을 태웠다. 결혼한 그 해 2016년 12월 연말에 쇼핑몰 사무실 겸 시댁회사 사무실을 구했고 우린 본격적으로 동대문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해 여자들 사이에서 대유행 필수 아이템이었던 핸드메이드 코트를 필두로 헤링본코트, 트위드재킷, 앙고라 가디건 등등 여자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여심저격 아이템들을 위주로 샘플 사냥을 했다. 도매시장에서 직접 보고 만졌을 때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었을 경우를 대비해 플랜 B 스타일링까지 샘플들을 빼곡히 정리해 둔 노트를 한 손에 들고 좁아터진 동대문 도매시장을 구석구석 열심히 뒤적거렸다.
앞 편에 언급했듯이 나의 최대관문이었던 도매상 언니들 상대하기. 역시나 언니들은 화가 잔뜩 나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화가 막 나 있다. 처음엔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불친절한 걸까 싶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개뿔. 나는 매일같이 쎈언니들 사이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지만 겉으론 별 신경 안 쓰는 척 원하는 옷을 얻기 위해 나름 열심히 빌빌거렸다.
하기사 빌빌거릴 수밖에 없는 게 원하는 옷 샘플을 얻기 위해서는 굽신굽신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만 한다. 안 그러면 매번 샘플을 돈 주고 사야 하니까. 그래서 언니들이 불친절하다 해도 아무리 재수 없다 해도 원하는 옷을 얻으려면 감내해야 했다. 나는 능글맞은 굽신 굽신을 할 재주가 조금도 없었으므로 얼음공주 같은 그 언니들에게 상처받지 않은 척, 자연스러운 척 항상 마음을 단디 먹고 친구가 알려준 동대문에서 통한다는 은어를 열심히 외워갔다.
“언니 이거 신상 이예여~?”
(맘에 드는 옷을 보면 제일 먼저 물어봐야 함)
“깔 뭐뭐 있어여~?”
(다른 컬러 또 있나요?)
“미송 잡아주세여~”
(당장 가져갈 수 없는 옷을
다음에 챙겨갈 수 있게 예약해 달라는 말)
“화밤이나 수밤쯤 다시 올게여~”
(화요일밤이나 수요일밤쯤 다시 올게요)
나 동대문 좀 아는 척, 와 본 척. 몇 군데 거래처를 뚫으려 자연스레 은어를 써가면서 본격적으로 언니들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이거 신상이에여~? ^0^”
“어디세요? =_=?”
“..브리밍고요.”
“에? 부리 뭐요?”
“.. 브이 할 때 브. 브리밍고요.”
“아;”
“…”
대화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역시나 언니들은 몹시 예민하다. 나는 말을 건넨 거 말고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남자 쇼핑몰을 운영했던 지인은 도매 직원분이 아예 롤 하면서 얼굴도 안 보고 듣는둥 마는둥 대충 응대했었다는데. 그래 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이분들에겐 이 새벽시간이 출근 시간이고 출근하자마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신상 옷들을 빠르게 정리하면서 거래처 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날카로워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말 붙이기조차 어려웠지만 이것도 계속하다 보면 새벽에 돌아다니는 나도 피곤하고 내 볼 일 보기 바빠서 나중엔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신생 온라인 쇼핑몰은 도매업자들이 모르기 때문에 쉽게 샘플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전에 맘에 드는 도매상가를 몇 군데 찜해두고 그곳들 위주로 자주 방문해서 구입을 해야 한다. ‘저 자주 올게여~’ 하며 눈도장을 찍고 일종의 신뢰를 쌓는 것이다. 그러다 샘플을 슬쩍 물어본다. 눈치껏 분위기 봐가며 조심스럽게 물어본다면 처음이어도 샘플을 흔쾌히 주는 곳도 있지만 어디나 그렇듯 모두가 호의적이진 않다. 잘 나가는 쇼핑몰들만 챙겨주기에도 정신이 없어서 신생 쇼핑몰은 대놓고 무시하는 도매업자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런 무시를 겪은 날이면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어 대봉투 한가득 들고 외제차 끌고 나가는 다른 쇼핑몰 사장들을 괜히 욕하기도 했다. 부러워서. 퉤.
대봉투를 들고 간다는 의미는 직접 돈을 주고 샘플을 구매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본인이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그만큼 주문을 받아서 옷을 사 가는 거 아니면 도매 언니들이 알아서 샘플을 왕창 챙겨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같이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힘에 부칠지언정 신상 샘플 한가득 든 대봉 질질 끌고가 보는 게 소원이었다.
일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종일 사무실에서 쇼핑몰 업무 보고 밤 11시에 동대문으로 출발해 새벽 시간 내내 시장 바닥 같은 그 동대문을 활보하는 일, 새벽 4-5시쯤 안산으로 와서 잠, 9시까지 출근, 받아 온 옷 정리, 촬영 장소 이동, 추우나 더우나 입었다 벗었다를 몇 번씩 반복하면서 안 힘든 척 촬영하는 것,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촬영한 사진들 작업(사진 추리기, 사이즈 측정, 옷 디테일 촬영, 색감 보정, 상세페이지 만들기 <제일 오래 걸림. 등등), 촬영 끝낸 옷 다시 정리 등 이것들을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주문이 딱 하나라도 들어오면 새벽에 그 상품 하나를 가지러 동대문을 가야 한다. 대신 가져다주는 사입 삼촌을 쓸 수도 있지만 이것도 돈이고 또 옷이 잘 못 오게 되면 일이 복잡해져서 어차피 초반엔 여러 번 직접 가보는 게 좋으니 쓰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도매업자들에게 환영받는 잘 나가는 쇼핑몰이 되는 것인데 그게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쉽고 수월하게 일할 수도 있었다. 새벽 내내 동대문을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체력소모가 상당한데 그때는 촬영을 꼭 밖에서 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촬영할 샘플 옷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까지 이동해 차 안에서 갈아입고 찍고 갈아입고 찍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다녔다. 그렇게 쓴 체력들, 시간들만 단축했어도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딱 1년 지날 때쯤 번아웃이 왔다. 새벽에는 동대문, 오전부터 종일 쇼핑몰 업무를 보고 나가서는 촬영까지 해서 잠이 늘 부족한 상태인 데다가 식사는 주로 토마토 도시락, 편의점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때웠고 먹는 시간마저도 들쑥날쑥했다. 신체 리듬이 완전 깨져버려 엉망진창이 된 생활패턴으로 1년을 살다 보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왔던 것이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동대문 가는 새벽에 남편은 거의 자면서 운전하는 날이 잦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때 잠 깨려고 최대한 시끄럽고 정신없는 노래로 ‘레드벨벳-빨간 맛’, ‘지코-artist’ 이 두 곡을 단골로 들었는데 차가 덜덜거릴 정도로 빵빵하게 틀고 발악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매번 졸았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서 정리할까 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생겨날 때쯤 아는 지인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충무로에 한 작은 공간을 괜찮은 조건에 임대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온라인 쇼핑몰보다 나는 옷가게를 하고 싶어 했긴 했지만 처음부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가게까지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쇼핑몰에 신물이 날 때쯤 들어온 이런 제안은 우리에게 너무 달달하기만 했다. 마치 지금의 번아웃에서 우릴 건져내려는 구원의 손길 같았다. 안산에서 충무로까지의 거리는 지하철로 약 2시간 정도였고 나름 계약 전에 분위기 파악해 본다고 그 동네 가본 건 고작 이틀뿐. 정리할까 하던 순간 슥 하고 들어온 제안을 우리는 덥석 받아들여 마치 신의 계시인 듯 초 긍정적인 마인드로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그렇게 안산 토박이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무로에 갑자기 오프라인 매장을 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