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은 그림 일기> 1화
1992년 11월 30일. 좀 이른 나이 24살에 낳은 첫 딸 이은비.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많이 힘들었을 때라고 했다. 엄마가 그랬다. 내가 태어나는 날 친아빠는 옆에 있지도 않았고 다른 여자도 만나야 해서 많이 바쁘셨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보면 슬프게 생겼다고 하는 건가?
7년 뒤 남동생이 생겼다. 친아빠는 둘째까지는 생각한 적이 없었는지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머리에 뭐가 들었으면, 어쩌자고 저런 말을 했을까? 하마터면 외동으로 자랄 뻔했다.
동생이 생겼을 때 나는 너무 기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동생이 보고 싶어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했고 집에 가자마자 책가방만 얼른 벗어던지고 동생을 안고 하루종일 어화둥둥 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어설프게 겨우겨우 동생을 들어 안고 찍은 사진도 있다. 나는 동생을 정말 많이 예뻐했고 좋아했다.
동생이 태어나기도 전 더 어렸을 때는 길게 기록해 볼 수 있는 기억은 없지만 먼저 짧게 생각나는 거 몇 가지 적어보자면,
인천에 어느 쪽방 같은 공간에 거동이 불편한 친할아버지 집에 잠깐 얹혀살면서 그 노인네 방에만 들어가면 났던 특유의 냄새와 그 노인네 잔소리에 우리 엄마만 개고생 했던 기억, 친아빠의 둘째누나와 그 누나의 남편이 나이트클럽 삐끼였고 친아빠도 같이 그 일을 했었고 삐끼 이름이 까치였고 그래서 엄마가 까치랑 까치까치 설날 노래를 싫어했었다는 것, (‘까치’라고 적혀있던 나이트 이름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집에서 키우던 양쪽 귀와 꼬리에 각기 다른 색으로 염색한 시츄 다롱이를 내가 많이 예뻐했던 기억 그리고 가족끼리만 모여 소소하게 했던 남동생의 돌잔치에 무려 친아빠가 지각한 기억 등 두서없을 수도 있지만 이후 생각나는 대로 나의 옛날이야기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 처음 본 친아빠의 폭력
친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어쩌다 들어와도 종일 같이 있던 기억은 없다. 늘 필요할 때만 잠깐 들른 정도였다. 내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어릴 적에 봤던 친아빠의 모습은 이러하다. 새하얗고 두툼한 목폴라 니트에 하의는 검은 정장바지, 겉옷은 무릎까지 오는 기장의 황토색 코트, 신발은 빤딱거리는 검정 구두에다가 머리 스타일은 항상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뒤로 싹 넘겼는데 무스칠을 얼마나 했는지 늘 반질거렸고 삐죽삐죽한 까치머리였다. 진짜 까치가 되고싶었던 건가? 코트가 황토색이 아니라 곤색이나 검정색이었다면, 그리고 불량 까치가 진짜 인간으로 환생했다면 아마 그런 모습일 것이다.
거의 늘 그런 차림으로 집에는 아주 가끔씩 와서는 겉옷도 벗지 않고 정장 바지 주머니에 양손 찔러 넣은 채 거실에 멀뚱멀뚱 서서 돈 얘기만 하다 금방 사라지거나 새벽 늦게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들어와 엄마를 괴롭히고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물론 맨 정신으로도 그랬다. 줄곧 나한테 친아빠는 불편하고 눈치 보이고 불안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다. 또 언제 언성이 높아질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인천 어느 반지하방 친아빠의 친척집에 얹혀살 때 일이다. 벌건 대낮에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눈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신발장 입구부터 거실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온 집 안에 모든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안방에서부터 들려오는 큰소리가 반지하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릴 때지만 눈으로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 위협적인 분위기는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듯 순식간에 온 몸을 굳어버리게 만든다. 신발장에 서서 벽을 짚고 멍하니 소리만 듣고 있다가 조심조심 발을 떼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바로 엄마와 친아빠가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엔 동생도 있었다. 걸음마도 못 뗀 갓난아기였던 내 동생은 엄마 품에 안겨 숨 넘어갈 듯 온 힘을 다 해 울고 있었고 엄마는 침대 옆구리를 등에 지고 바닥에 앉아 아득바득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동생을 품에 꼭 안은 채로. 친아빠는 그런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목을 꺾어 침대 매트리스 위에 바짝 대고 있었고 한 손은 천장을 향해 번쩍 들려있었다. 부엌칼을 꽉 쥐고서. 안방으로 돌아서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이었다.
친아빠는 천장을 향해 힘껏 뻗어 쥐고 있던 식칼을 금방이라도 내려 찍을 듯이 협박을 했다. 머리칼이 다 뽑힐듯 친아빠의 왼손에 꽉 잡혀 있던 엄마는 죽여보라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그때 친아빠가 조금만 더 미쳤었더라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때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린 나이에 처음 본 친아빠의 폭력적인 모습이었다.
보자마자 아무 말도 행동도 나오지 않았다. 벽에 바짝 기대 서서 겁에 질린 채 엄마와 친아빠를 가만히 번갈아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그냥 크게 소리 내서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랑 친아빠의 다툼이 더 격해질수록 나는 더 크게 울었다. 제발 그만하라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친아빠는 그런 나를 향해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그 자리에 있는 내가 걱정이 되고 위험할까봐, 지금 이 방에서 잠깐 나가 있으라는 다급한 마음에서의 외침이었고 친아빠는 거슬리니까 당장 꺼지라는 뉘앙스의 명령조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울었다. 그날 그곳 반지하방은 대낮의 지옥이었다. 울음소리, 비명소리, 협박소리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생지옥.
그 집엔 민호라고 내 또래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걔 엄마 아빠는 그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 사정은 모르겠고 그 집에 사는 동안 나는 남동생이 하나 더 있는 듯 걔까지 거의 우리 엄마가 키우다시피 하며 지냈다.
그때 걔에 대한 기억은 누나인 나한테도 물론 버릇이 없었고 우리 엄마한테도 굉장히 싸가지가 없었다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걔랑 자주 싸웠고 그냥 꼴도 보기 싫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문득 생각이 났을 땐 그때 걔도 참 불쌍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어디서 뭘 하는지 집에도 안 들어오지, 그 어린 나이에 낯선 사람들이랑 지내려니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렇게 싸가지없게 굴면서도 계속 내 옆에, 우리 엄마 옆에 붙어있었다. 관심받고 싶은 표현이 그렇게 나왔었나 보다.
거기 살면서 병아리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다. 처음 길러보는 반려동물(?)이라 그때 나는 너무 설렜었던 기억이 있다. 제일 넓어 보이는 박스에 아기 병아리를 넣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종일 옆에 붙어서 말도 걸어주고 쓰다듬어주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었다. 작고 노란 털에 삐약삐약거리면서 박스 안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는게 너무 귀여웠다. 나는 이 귀여운 병아리를 꼭 닭이 될 때까지 잘 키워주고 싶었다.
어느 날은 삐약삐약 소리 없이 조용하길래 바닥을 쓸던 엄마가 병아리 한번 확인 좀 보라고 해서 상자를 들여다봤다. 누워서 가만히 잘 자고 있길래 엄마한테 ‘병아리 누워서 자~’ 했더니 엄마가 말하길 병아리는 누워서 자지 않는단다. 아무튼 그 집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