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빠 : 아빠는 딸바보가 아니다.

<많이 늦은 그림 일기> 2화

by 이봄

2. 아빠는 딸바보가 아니다.


아빠는 딸바보다? 누가 그래. 난 그딴 거 모른다. 아마 나같은 딸내미 천지삐까리일 것이다. 확실하다. 친아빠는 나를 별로 예뻐하지 않았다. 어릴 때였지만 나는 친아빠의 행동이나 뉘앙스를 전부 느낄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아빠 같은(?) 다정한 눈길 한 번 준 적도 없고 내 이름을 불러준 기억도 없다. 집에도 제대로 붙어있던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될지 남동생한테는 좀 달랐다. 슬프지만 어린 나이에도 그런 느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들이라 그런가? 남동생이 어린이집을 다니고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일이다.





그날은 동생의 생일도 아니었고 어떤 날도 아닌데 동생 선물이라며 로봇 장난감을 사온 적이 있다. 동생 것만. 나는 조용히 그 옆에서 ‘우와.. 우와..’ 하면서 부러워만 했다. 나도 어린아이였는데 왜 투정 한 번 안 부렸을까.


그때도 난 눈치를 봤다. 속으로 많이 부러워했지만 왜 내 선물은 없냐고 어린이 다운 징징거림, 투정 그런 건 조금도 티 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날 예뻐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내가 조금이라도 어리광을 부리면 나를 더 싫어할 거 같아서. 친아빠가 불편했고 눈치가 보였다.


동생이랑 친아빠 둘이서 선물만 만지작할 때 나도 관심받고 싶어서 학교에서 했던 받아쓰기를 꺼냈다. 설거지하던 엄마가 보다 보다 딸 좀 봐줘라 한마디 할 정도로 거의 나는 없는 사람이었다. 장난감에 관심이 더 갔던 건지 나한테 관심을 주기 싫었던 건지. 엄마의 한마디에 그제야 친아빠는 본체만체 내 눈 한번 안 맞추고 ‘글씨 잘 쓰네.’ 한마디 툭. 끝이었다.


그것도 좋다고 나는 헤벌쭉 웃음을 지었고 받아쓰기 노트를 쥐고 쭈뼛쭈뼛 동생과 장난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나만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 같았다.







한 번은 네 가족이 화랑유원지에 간 적이 있다. 롤러스케이트 끈이 잘 안 묶였는지 친아빠한테 묶어달라고 했다. 사실 괜히 그랬다. 관심받고 싶어서. 지금은 없지만 나란히 벤치에 앉아 내가 신고 있는 롤러스케이트 끈을 친아빠가 고쳐 묶어주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에 웃고 있는 내가 너무 싫다. 잘 안다 그 웃음. 관심받아서 기분 좋은 멍청한 웃음이다. 그런 친아빠한테 무슨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모습 진짜 병신 같다. 역시 사람한테 관심 같은 건 바라는게 아니다.



아빠는 딸바보라는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걸까? 우리 집 사정도 모르고. 참 이기적이다. 다른 집 아빠들이 딸들한테 얼마나 바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싹수가 노란 불량까치는 딸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감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예뻐하고 좋아했던 남동생에게 점점 쌀쌀맞은 누나가 됐다. 차별이라는 기분 나쁜 감정을 느끼게 만든 친아빠 때문이다. 남탓 어쩌구 해도 어쩔 수 없다. 어떤 결과에 이유는 무조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니까. 어린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 사랑 하나가 부족해 나는 결국 균형이 맞지 않게 자랐다. 어디 나뿐이랴 불행하게도 나는 일찌감치 차별받는 기분을, 그런 감정을 알게 됐다.







그 집에서는 햄스터 두 마리를 키웠었다. 한 마리는 검은 털, 흰 털이 섞여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등 부분에만 갈색털이 매끈하게 나있었다. 그놈이 살짝 덩치가 있었다. 집에 아무 박스 가져다가 톱밥을 깔아주고 쳇바퀴도 놔줬다. 역시 초딩 때는 가만히 두질 않고 자꾸 박스 밖으로 꺼내서 만지작거리고 놀다 놓쳐서 집안을 다 뒤져서 겨우 찾아내고 그랬다.


어느 날은 박스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갈색 털 햄스터만 보이고 다른 한 마리가 안 보였다. 내가 자꾸 꺼내서 박스 밖으로 탈출했나 싶어 집 안 구석구석 찾아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다. 톱밥에 파묻혀 자고 있나 하고 톱밥을 막 뒤적거렸다. 뭔가가 손에 턱 걸렸다. 검흰 털 햄스터가 머리는 없고 몸통만 남은 채 있었다.


너무 놀라서 엄마를 불렀다. 혹시나 했다. 머리가 여기 어디 뜯겨있을까 하고 톱밥을 더 뒤적거렸는데 안 보였다. 갈색털 난 애가 머리를 잡아 뜯어먹어버린 거였다.



똑같이 작은 햄스터인데 어쩌다 그렇게 먹혔을까. 밥을 잘 챙겨준다고 줬는데 너무 적게 줬는지 그 작은 햄스터가 같은 동족의 머리를 뜯어먹었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다. 왜 그런 잔인한 일이 나에게. 엄마도 충격이었는지 혼자 살아있는 갈색 털 햄스터가 너무 괘씸하다며 박스채로 베란다에다 옮겨놨다. 그때가 한겨울 한파였다.









keyword
이전 01화친아빠 : 처음 본 친아빠의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