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기 전까지 모를 일
맘 카페에 입소문을 타고 줄을 서던 여름과는 달리, 또 다른 입소문으로 손님이 줄었다. 돈쭐이 아닌 혼쭐일까, 내가 무얼 놓치고 있는 걸까. 무례한 손님에게 웃기만 해야 했을까? 에스프레소는 하루 몇 잔이나 내렸을까, 수분기 하나 없는 원두 찌꺼기가 내 모습 같았다. 이제는 공사 현장의 소음과 모래바람만이 카페 문을 두드렸다. 미세하게 흔들리며 내는 종소리는, 내 마음을 대신해 앓는 소리 같았다.
날이 밝을 땐 바쁘고 싶은 마음만이 꿈이 되어버렸다. 한가해도 너무 한가했다. 행동이 느려졌다. 얼떨결에 여유가 흐르는 내 몸뚱이만이 좀비처럼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불어나는 건 지독한 근심과 자격지심, 언제 갑자기 또 나타날지 모르는 바퀴벌레 떼의 두려움..
“착, 착, 착, 착.”
손님이 없으면서도, 덜 마신 채 남겨진 커피잔을 바라보면서도,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고 또 갈고 포타 필터에 채웠다. 깔끔하게 정돈해야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커피도 씁쓸, 마음도 씁쓸. 이런 게 고독일까? 소꿉놀이도 아니고, 원두가 아닌 모래 같았다. 냄새도 거칠게 느껴졌다. 뜨겁게 달궈지는 스팀 피처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만을 품으며 요란했다. 만들어내는 거품은 내가 만든 환망과 뭐가 다를까? 인상 한 번 썼을 뿐인데, 정신 차려보니 싱크대에 내쳐진 듯 사방이 우유 천지였다.
대체, 누구 좋으라고. 따듯한 물에 적신 행주로 닦아냈다. 사서 고생하는 걸까, 없던 일도 만들어서 하는 부지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닦는 김에 다시, 따듯하게 적셔 헹군 행주를 들고 구석구석 훔쳐냈다. 뜬금없이 없던 힘도 생겼다. 닦았던 자리마다 윤이 났다. 옆에도 뒤에도, 닦고 또 닦았다. 허했던 마음은 따듯한 물에 거품 목욕을 한 기분이 되었다. 이 기분 그대로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들고 2층 화장실로 향했다. 냉기를 잔뜩 품은 화장실, 세안을 마치고 우유 빛깔 영양 크림을 촉촉하게 발라냈다. 아침까지만 해도 언제든 바스러질 것 같은 얼굴이더니, 이제는 얼굴마저 윤기가 흘렀다.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웃었다.
1층으로 향하며 경쾌한 팝송을 더 키웠다. 소파를 최대한 밀어붙이고 왔다 갔다 팝송과 한 몸이 되어 정신없이 흔들었다.
“똑똑”
‘젠장..’
누군가 픽업 창을 두드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괜히 더 목소리를 키웠다.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하하”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말했다. 양 볼이 화끈거렸다. 음악 소리가 너무 좋아서 끌리듯 왔단다. 잠깐 구겨진 체면쯤이야 뭐, 괜찮은 척했다. 고구마 라테 한 잔과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설프게 한 잔이면 새로 뜯는 우유가 아까울 뻔했으니. 물론, 뜯지도 않은 유통기한 지난 우유도 버려놓고. 나도 참.
새 우유를 뜯은 김에 라테 한 잔 마셨다. 금세 차분해진 마음은 잔잔한 뉴에이지를 틀었다. 따듯한 머그잔을 들고 눈을 감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고개는 음악에 맡겼다. 잠이 온다. 잠이 온다. 잠이 온다.. 손님도 온다. 좋아야 할 마음은 허무했다. 자고 싶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원두 그라인더부터 작동시켰다.
“나는 아메리카노 마실래.”
“나도.”
잠시 후, 따듯한 정성이 담긴 머그잔을 쟁반 위에 올렸다. 이어 서랍에 쟁여둔 코코넛 비스킷을 냅킨 위에 올렸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비스킷은 더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손님이 없으면 커피 리필도 해드린다고 했다. 생존 본능일까, 또다시 임기응변인 양 말을 뱉었다. 센스라고 하자.
조용하면 부담될 테니 음악 소리를 키웠다. 괜스레 깨끗한 집기는 싱크대로 가져가 헹궜다. 자리로 돌아와 금세 식어버린 라테를 들이켰다. 다시 싱크대로 향했다. 씻은 머그잔의 물기를 닦고 정리했다. 텁텁한 입이 다시 시그널을 보내왔다. 원두 그라인더를 작동시켰다. 어느새 손님 테이블과 함께하는 듯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을 양손에 쥐었다. 카운터 자리로 돌아와 코코넛 비스킷을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입에 가져가 똑, 똑, 끊어 먹었다.
“삼십 대 중반이 지나니까 결혼 생각이 확 사라졌어. 나만 그래?” 손님이 말했다. 힐끗, 소파에 얹어둔 명품 가방이 보였다. 손가락 사이사이는 다양한 친구들로 사이좋게 반짝거렸다.
“나도, 나는 오히려 이십 대에 결혼이 빨리하고 싶었다? 삼십 대가 되니까 더 조급해지는 거야. 그러다가 이제는 삼십 대도 중반이 지나가니까 오히려 더 커리어를 쌓고 싶어. 취미도 늘리고, 자기 계발에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나도 그랬지..’
삼십 대 중후반을 넘어서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공감되어 끄덕였다.
“나는 몇 년 뒤에 퇴직금 받아서 이런 개인 카페 하고 싶어..”
‘하지 마라..’
늘 그랬다, 생각해 보면. 겪어보기 전까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겪어보지 않은 건 말도 마음도 아꼈어야 했다.
손님이 떠났다. 삼십 대 중후반이었던 나도 떠났다. 친구와 무심히 대화를 나누고 떠났을 어딘가의 카페가 떠올랐다. 나이가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젊어도 많이 젊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엔 무신경하던 나이, 결혼도 또 다른 세계인 양 마침 수아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일어났어. 오빤 출장 가고 애가 새벽에 열이 나서 밤새도록 간호했거든.”
“난 이제 손님 빠져서 테이블 치우고 있었어.”
“요즘 장사는 어때?” 수아가 물었다.
“그럭저럭, 유지만 겨우 하고 있지 뭐. 겨울이라 손님이 드문드문 있어.”
“나도 커피 마시고 싶은데~~ 애가 아파서 가질 못하네~~”
아이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낯설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힘들겠다 싶었다. 커피라도 가져다줄까? 손님은 없고, 수아네 집은 코앞이고. 잠시 망설였다. 손가락은 원두 그라인더를 작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