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입김이 나오도록 춥고, 손님은 없다. 요거트도 끊었다. 암만 생각해 봐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들인 돈에 비해 벌어들인 돈은 자동으로 입맛을 떨궜다. 컵라면이나 김밥 한 줄로 하루가 거뜬했다. 유통기한 임박한 우유로 코코아 한 잔을, 라테 한 잔을, 칼로리만 채우고 또 채웠다. 어깨부터 들쳐 매고 다리까지 떨어지는 이불을 양팔로 휘감았다. 1층과 2층을 돌아다녔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계단의 삐거덕거림은 공포 그 자체였다.
따듯한 머그잔을 들고 그리 넓지도 않은 공간을 휘젓고 다녀야만 마음이 놓였다. 시종일관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몸은 자연적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맡겼다. 2층 간이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놓여있던 책을 들추며 머그잔을 내려놓으려 했다.
‘미친...’
순간 얼어붙었다. 눈은 뗄 수 없었다. 끔벅끔벅, 책을 치우자마자 형광등으로 비치는 반짝임이 할 말을 잃게 했다. 분명 사라진 줄 알았는데, 왜 모여있을까. 일부러 숨겨둔 다이아처럼 반짝거렸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CCTV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대로 소파에 털썩, 깊은 한숨이 눈앞을 가렸다. 다시 일어났다. 차륵, 소리와 함께 한 손에 움켜쥐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끼고 또 아끼고, 아껴주고 싶었던 마음은 싱크대로 차갑게 내동댕이쳤다.
이제 와서, 정민시 그녀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녀는, 눈치챘을까? 허, 어찌 알겠어. 말없이 쏘아보기만 했는데. 왜 그랬을까, 왜 증거도 없이 확신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녀가 놓고 간 쟁반 위엔 머그잔과 껌 종이가 딱지처럼 접혀있던 게 생각났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잘 못 짚었다. 나는 그녀가 당장이라도 우리 카페를 찾아주길 바랐다. 매일 바랐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마음의 빚을 어떻게라도 갚고 싶었다. 사라진 건 티스푼이 아닌 희망이었고, 나야말로 어둠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손님도 없고 더 이상 그녀도 찾아오지 않았다. 추운 겨울바람은 내게 손가락질하듯 쌀쌀맞았다. 정신이 바짝 차려지다가도 뜨끔뜨끔 마음 한구석이 욱신거려 왔다. 대체 무언가에 홀렸던 걸까, 왜 정신을 못 차렸을까, 눈먼 장님과 내가 뭐가 다를까.
지나가는 사람이 없고 하루에 삼만 원 팔기도 어려워졌다. 결국 맘 카페에 커피 가격을 삼천 원으로 낮췄다는 댓글을 흘렸다. 카페를 오픈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박 날 것 같았던 느낌은 망할, 똥 촉에 불과했다. 가격을 낮추니 자존감마저 낮아졌다. 찬 바람에 웅크리듯 마음도 웅크리고 또 웅크렸다. 그러나 한 잔이라도 더 팔아야만 했다. 한 테이블이라도 우리 카페에 머물기를 바랐다.
파란 렌즈 그녀와 엄마들이 들어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묘하게 웃는 것 같았다. 눈빛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후 네 시부터 그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눈이라도 마주칠 땐 비웃음거리가 된 것 같았다.
“사장님~ 저녁 안 드세요? 손님도 없는데 저희랑 배달시켜 드실래요? 저희가 살게요~!” 엄마들의 비아냥 같았다. 받아들이기 싫었다. 이대로 그녀들만의 공간이 되어 매일 마주할 생각이 머릿속을 쪼아댔다.
“아니요~ 저는 생각 없습니다~”
“그럼~ 저희끼리 시켜 먹어도 되죠~?”
파란 렌즈 그녀의 너무나 당당하게 떠 보는 말이 어이가 없었다.
“여긴 카페입니다.”
“푸합~! 사장님 농담이에요~ 농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 봤다. 장난할 기분도 장난할 사이도 아니었으니, 선을 계속해서 넘는 게 일부러 툭툭, 건드리며 신경을 긁어내는 것 같았다. 멋쩍게 웃으며 어색하게 굳어지는 표정을 보자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었을 것 같았다.
며칠 후, 엄마들이 다시 나타났다. 파란 렌즈 그녀가 나타나기 전에는 너무나 평범한 엄마들이다. 그러나 그녀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눈빛과 목소리, 행동이 눈에 띄게 커진다. 그녀들에게 파란 렌즈 그녀는 자신감일까?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떻게든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처럼, 파란 렌즈 그녀가 존재감을 풍기며 뒤늦게 들어왔다. 누가 들으면 인사성이 밝은 엄마이자 손님이다. 하지만 내게는 진상 엄마일 뿐이다. 지난번에도 오늘도, 그리고 다음에도.
“사장님~ 저희가 오늘 기념할 게 있어서 케이크 가져왔어요~ 나눠 먹을 접시랑 포크 좀 빌려주세요~”
“죄송하지만,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입니다.”
“에이~ 사장님도 같이 드시죠~? 일부러 가져왔는데.” 그녀는 목소리를 깔며 눈을 부릅떴다.
일제히 조용해졌다. 그녀의 뻔뻔함에 고개가 어깨로 떨어졌다. 파란 렌즈 그녀의 말에 눈웃음치던 또 다른 진상 엄마가 거들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희가 오후 매출 올려주는 거 아시죠~?”
“네~ 당연히 알죠~ 비싼 것도 좀 팔아주세요~! 저희 가게도 케이크 있는데, 몇 개 드릴 까요?” 나도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내 말에 동공이 흔들린 진상 엄마는 입을 오므리듯 살포시 포개며 눈동자를 돌렸다.
“어차피 오후엔 저희밖에 없잖아요. 너무 야박하시네요, 사장님?” 파란 렌즈 그녀가 본성을 꾹꾹 눌러 담는 것 같았다.
“손님이 있건 없건, 여기는 제 영업장입니다. 어디를 가시든 외부 음식은 드시지 않는 게 매너 아닐까요, 손님?”
“그래서 음료 팔아줬잖아요?” 파란 렌즈 그녀가 쏘아보며 묵직하게 전했다.
“그래도 외부 음식은 안 됩니다.”
다음 날, 수아에게 전화가 왔다.
“혜선아~!! 카페에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뜬금없는 수아의 연락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맘 카페에 글 올라왔어. 사장님이 불친절해서 다시는 안 간다고..”
“진상들, 자꾸 선을 넘잖아. 한두 번 아니야. 슬쩍슬쩍 긁더니 농담이라고 하질 않나, 말도 꺼내기 싫어. 결국 이렇게 또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거지.”
“어제 혹시 몇 사람이었어?”
“처음엔 세 명, 나중에 한 명 더 왔다가 경우 없길래 돌려보냈어. 어린애들도 아니고, 유치해. 그보다 그 진상 엄마들이 있는 날이면 손님들이 그냥 나가는 것 같아. 신경 쓰여.”
“자기들끼리 글 쓰고 댓글 달았던 거네~ 신경 쓰지 마. 엄마들이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걸 수도 있어. 잘 지켜봐.”
수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직접 확인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맘 카페를 열었다. 융통성을 찾는 댓글이 보였다. 그녀들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망할, 그놈의 융통성은 왜 항상 남에게서만 찾으려는 걸까? 우리 카페엔 매너를 버리고 찾아오더니, 댓글은 상식도 매너도 갖춘 사람들처럼 말했다.
둥둥이맘: “죄송하다고 부탁을 드렸는데~ 단칼에 거절하시더라고요~? 말투도 차갑고~ 이젠 안 가려고요~~~”
봉봉이맘: “저는 한 번 가고 안 가요~ 말투가 너무 차가워~ 얼음 같아요!”
후니맘: “그 사장님 원래 융통성이 없어요~ 그런 걸 보면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손님 떨어지면 그제야 후회하실까 걱정입니다~!”
다들, 열심히 놀고들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내 카페가 아닌 맘 카페가 아지트가 되어주길 바랐다.
‘그래, 거기서 머물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