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비둘기인 척

마음이 평화로웠으면 좋았을 걸.

by 민시

“척, 척.”

12월 마지막 밤, 침대에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창문을 통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가 슬며시 벽 앞으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누군가 떠올랐다. 또, 음식물 쓰레기를. 자신의 밑바닥 본성을 버리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CCTV를 확인했다. 길게 들이마신 숨은 이를 악물고 콧김으로 내뿜었다.

‘넘어져라, 넘어져라, 넘어져라.’

바닥엔 바닥으로, 마음의 인내는 바닥을 드러내며 주문을 걸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고양이가 뒤적거리는 사락, 소리마저 듣기 싫었다. 미간은 깊고 굵게 할퀴고 간 듯했다. 그대로 일어났다. 마음부터 가라앉혀야 했다. 냉동실에 넣어놨던 볶은 결명자를 꺼내 주전자에 넣고 끓였다. 뜨겁게 올라오는 김을 보니, 주전자는 혼자 성내는 내 모습 같았다. 주전자의 주둥이를 머그잔에 기울여 쪼르르, 누가 더 열받았나. 양손에 뜨거움이 전달된 듯 나보다 더 스트레스받은 결명자차를 달랬다. 아니, 누가 누굴 달랬을까. 그새 마음이 풀렸다. 몸도 풀려 눈이 감긴 채 그대로 누웠다.


늦게 잠든 탓일까, 늦잠을 잤다. 푹 잔 듯 개운했다. 눈곱만 떼고는 결명자차를 데워 1층으로 향했다. 카페 문을 열었다.

“투둑, 투둑, 지이이잉”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픽업 창이 아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커피 말고 마실 거 아무거나 줘 봐요~ 세상 무서워서 정말~!”

“무슨 일 있으셨어요?” 따듯하게 데운 결명자차를 건네며 여쭈었다.

“응~? 구급차 오고 난리였잖아~ 가까운데 못 들었어요~? 내가 발견했어~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노인네가 겉옷도 안 걸치고 왜 여기까지 내려왔대~~!” 아주머니의 잔뜩 찡그린 얼굴은 목소리마저 찡그린 듯 거리감이 느껴졌다.

“늦게 잠들어서 방금 일어났어요. 무슨 일인데요?” 다시 여쭈며 어젯밤이 떠올랐다.

‘설마..’


후읍, 아주머니는 결명자차를 어렵게 삼켜내며 올라오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보였다.

“노인네가 잠바도 안 입고 저 앞에서 쓰러져 있었어~ 블랙 아이스가 뭐야~? 바닥을 못 봤다는데, 뭔 소린지. 아직도 소름 돋아~! 얼어 죽었어~!”

아주머니의 중얼거림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아니, 내가 어젯밤 주문을 걸었던 바람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기를 바랐다. 카운터로 돌아가 커피 머신에 몸을 숨겼다. 당황스러운 표정과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휴~ 무서워서 또 어떻게 지나가~! 정신 차리고 빨리 배달 가야 하는데~! 잘 마셨어요~!”

아주머니는 급하게 옷을 여미고 주먹을 쥐어 심장을 두어 번 쓸어내리며 가게 문을 나섰다.

“미끄러우니까 조심하세요~!”

마음을 잡고 가게 밖을 내다봤다. 고양이가 뒤적거렸던 자리엔 비둘기만이 평화로웠다.


아침부터 쓰러진 사람을 본 요구르트 아주머니나, 밤에 저주를 부르듯 주문을 걸었던 나나. 새해 아침부터 우리는 마음이 어둡고 춥기만 했다.

‘내가 죽인 거 아니야.’

블랙 아이스에 미끄러져 그대로 쓰러진 사람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니, 죄책감 따위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밤에는 차라리 할머니가 나타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길 바라는 날도 있었다.


입맛이 없었다. 한동안 가게 밖을 나가지 않았다. 손님이 오면 오는 대로, 나가면 나가는 대로. 하루 삼만 원도 감지덕지했다. 추운 겨울은 공사 소음도 한동안 조용했다. 쳐지는 기분은 음악으로 살리고, 몸을 움직여 가게 구석구석 더 깨끗이 닦았다. 이제는 사용이 덜한 티스푼도 서랍에 넣었다.


무거웠던 마음은 예상보다 빠르게 비워냈다. 모처럼 만에 책이 읽혔다. 어쩌다 들리는 고양이 소리나 산책을 나온 개소리만이 고개를 돌리고 눈길을 트게 했다.

“투둑, 투둑, 지이이잉”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겨울 내내 우리 카페를 더욱 자주 찾으셨다.

“아니~ 요구르트 하나 얼마나 한다고~ 요만한 애가 예뻐서 처음에 증정용 요구르트 하나 쥐여줬더니~ 이제는 몇 달째 매일 같이 와서 바라고 있어~! 엊그제는 애기 엄마한테 좋은 거 사 먹이라고 했더니 글쎄~ 증정용 하나로 충분하다고 안 팔아주는 거야~!”

피식, 요구르트 아주머니의 하소연을 들으니 만만치 않은 엄마가 있는 듯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가 예뻐서 주셨을 텐데, 아이 엄마도 대단하다.


가끔가다 들러주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께 나 역시도 서비스로 커피를 드렸었다. 원두 그라인더를 작동시켰다.

“나는 맨날 연하게 마시는데~! 커피값도 반은 깎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사장님~?”

‘방금 말씀하셔 놓고.’

서비스로 드리려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 커피 한 잔은 또 얼마나 한다고, 팔아주신 것보다 서비스로 드린 게 얼만데. 나는 인심 쓰는 척 끄덕이며 받아냈다, 반값.

“근데 여기 사장님도 한가하네~ 저기 맞은편도 사람이 없어요~!” 카페 안을 들여다본 아주머니의 눈에는 나도 평화로운 비둘기와 뭐가 다를까. 갑자기 새장에 갇힌 듯 한가한 분위기는 뛰쳐나가 날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