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시장 조사.

다 같은 마음

by 민시

2025년, 유독 춥게 느껴졌던 1월은 초저녁부터 깜깜해진 탓에 일찍 마감했다. 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목까지 올라오는 폴라티에 카디건, 코트까지 입고 목도리로 칭칭 머리까지 둘러 감았다. 카페 문을 열고 한 발짝, 입김마저 겨울다웠다. 하늘에서 누군가 마음껏 던져대는 하얀 도트 문양은 온몸으로 맞아도 아프지 않았다.

터벅터벅, 시장 조사를 핑계로 나왔지만, 카페를 하면서도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우스웠다. 짧은 헛웃음에 섞인 작은 입김은 연식이 다한 기계 같았다. 걷고 또 걸었다. 발걸음이 자연스레 카페로 향했다. 웃으며 맞아주는 직원, 나는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찡그렸다. 천장 모서리에 달린 애꿎은 스피커를 쏘아보며 발길을 돌렸다. 대체 이게 무슨 꼬락서니야.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모난 표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반성하듯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눈을 맞으며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텅 빈 카페에 표정이 없는 직원, 혹은 카페 사장님을 관찰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은 없었다. 커피값도 우리 카페와 비슷했다. 동병상련을 느껴야만 했을까, 왠지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추운 걸 몰랐는데, 훌쩍이는 코는 휴지로 대충 닦아냈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모닥불 앞에 있는 듯 정전기 품은 코트를 벗었다. 빨간 목도리는 귓가를 더욱 괴롭혔다. 금방이라도 불에 탈 것만 같았다. 누가 보기 무섭게 모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앉기도 전에 커피가 나왔다. 한 모금 마시고는 감흥이 없었다. 손님이 없어서일까, 공기가 차가워 다시 코트를 입었다. 머그잔에 받은 커피는 손난로가 되었다.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밖으로 옮겼다. 통창 밖의 사람들은 모두 바빴다. 가장 바빠야 할 카페 사장님과 앉아있는 나만 한가했다. 안을 들여다보는 저들은 우리가 평화롭다고 하겠지?


차갑게 식은 커피는 한 시간이 흘렀을까, 두 시간이 흘렀을까. 체념한 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종일 눈이 내렸다. 내 하얀 동심은 누군가 질퍽하게 밟아놨을 뿐이다. 블랙 아이스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며 우리 카페로 향했다. 차마 녹지 못해 쌓인 눈, 차바퀴에 뭉개지는 눈을 보니 새까매진 내 속과 다를 게 없었다. 카페 문을 잡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딸깍”

토글스위치마저 손가락 끝을 시기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셀 수 없던 두려움은 이제 셀 수 있을 정도다. 두려움조차 뭉그적거릴 뿐, 모조리 밟아 죽이고 싶었던 마음마저 귀찮아졌다.

'빨리빨리 꺼져라. 환해진 순간부터는 내 구역이다.'


“털썩”

2층에 올라와 대충 벗어놓은 신발을 뒤로하고 소파에 앉았다. 소파만이 나를 품어주는 것 같았다. 파고들 듯 웅크리고 또 웅크렸다. 잠시 감았던 눈을 뜨니 어느새 환해진 밖이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카페 앞 작은 마당은 하얗게 폭신거렸다. 드문드문 사람이 아닌 고양이 발자국만 보였다. 동심은 마음에 담고, 안에서 뛰었다. 1층으로 향해 조명부터 켜고 음악 소리를 키웠다. 구석구석, 모래 한 알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바닥을 쓸고 또 쓸었다. 몸에 열을 키웠다. 단단히 껴입고 카페 문을 나섰다. 카페로 들어오는 입구부터 2차선 도로가 나올 때까지, 모래를 쓸어내듯 눈을 쓸어냈다.

맞은편에 있는 상가 카페는 오늘도 사장님 마음대로, 오픈 시간이 자유롭다. 안으로 더 들어와야 하는 우리 카페,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하고 또 당연했다. 빗자루를 세워두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거기도 한가하죠~? 겨울은 원래 사람이 잘 안 나와~” 편의점 사장님은 확인받고 싶은 듯 빙글, 돌려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같은 마음을 나누고서야 안정감을 느끼니,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파트 상가 편의점조차 사람이 없으니 돌아올 겨울을 대비하듯 봄부터 가을까지 바짝 벌어야 했다.

“또로로록”

모락모락 작은 김이 올라오며 적은 양의 까만 물을 뱉어내는 에스프레소 추출 소리가 새삼 반갑게 느껴졌다. 귀하고 또 귀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두고 눈이 맑아지고, 마음도 맑아졌다. 가끔 만나는 청설모가 먹이를 먹듯 삼각김밥을 두 손으로 잡고 한 입 한 입 베어 물었다. 밥풀 한 알 한 알 느껴가며 체하지 않게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모금도 귀했다.

‘그래, 진상들 상대하느니 더 갈고닦아 귀한 손님 받아야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손님이 들어왔다.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말씀하셨다.

“어? 라면은 없는데? 예전에 우리 딸이 여기서 라면을 먹었다고 했는데~ 커피도 맛있고, 라면도 맛있다고. 너무 괜찮았다며 추천하더라고요~”

라면을 끓여준 테이블은 젊은 커플 한 테이블뿐이었다. 귀한 발걸음, 아쉬움조차 남기고 가지 않기를 바랐다.

“원래 메뉴엔 없어요~ 겨울이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끓여드렸는데, 드실래요?”

“어머~! 그래도 되나요~?” 생기가 돌 듯 아주머니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라면에 아메리카노 한 잔 세트로 팔까요~?” 무슨 능청일까, 손님과 흥정이라도 하려는 듯 말을 꺼냈으나, 꺼내기도 무섭게 좋은 생각이라고 부추겼다.

“손님들이야 좋지요~ 라면에 커피가 한 세트로 육천 원, 칠천 원 받으면 되겠는데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 나도 사실 저 옆 동네 개인 카페 하거든요~~ 여기보다는 작아요~ 우리 딸이 여기를 꼭 가보라고 했어요~” 아주머니도 시장 조사였다. 동병상련, 우리는 서로에게 이득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따님 기억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겨울 한정으로 라면과 커피세트 괜찮네요!”


드문드문, 오시는 손님들께 슬쩍 말을 흘렸다. 테이크아웃 손님마저 라면 냄새는 반가웠는지 카페 안에 머물렀다 가셨다. 이제 커피값을 내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고 해야 할까, 겨울의 끝자락이 괜히 아쉽게만 느껴졌다. 진작에 끓일걸, 마음만 끓었다. 그래도 뭐, 경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