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나기, 다시 만난 티스푼

부끄럽다..

by 민시

아침부터 끈적거렸다. 옆 동네에 카페를 하신다던 사장님이 생각났다. 한 번 찾아간다는 걸 계속 시기를 놓쳤었다. 하루 오픈 시간을 늦추기로 하고 옆 동네로 향했다. 옆 동네 카페는 학원 상가였다. 카페는 카페라고 할 수 없었다. 겨울에 팔기 시작한 라면 위에 알싸한 욕심을 얹으신 듯 내 눈엔 분식집으로 보였다. 뻥튀기 아이스크림이라며 사진을 보여드렸다. 관심을 보이셨다.

“아이들 떡볶이 먹고 나갈 때 하나씩 들고나갈 걸요~? 저희 카페는 인기가 좋아요~!”

“우리 딸은 여기가 어딜 봐서 카페냐고 해요~ 곧 결혼도 할 텐데~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해주려는 걸 몰라요~ 가르쳐서 유치원 선생님 만들면 뭐 해~ 유치원생 가르친다고 자기가 거꾸로 유치원생이 됐어~”

“아~ 유치원 선생님이었구나~! 어쩐지~ 얼굴도 목소리도 너무 예뻤어요~ 아직 젊어서 카페라고 하면 기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죠~”


찾아간 김에 라면을 아점으로 먹었다. 카페 안은 원두 향기가 아닌 라면의 향기가 퍼졌다. 생뚱맞게 느껴지니 현타라고 해야 할까, 올겨울이 벌써부터 걱정됐다.

“그래도 여기 학원 상가라서 오후엔 장사 좀 되시겠어요~~!”

“맞아요~ 오후에 학원 갈 시간이면 다 모여서 먹고 가요~ 코 묻은 돈이지 뭐~ 어른들은 커피 한 잔씩 가져가고요~ 나야 고맙죠~!” 사장님은 어딘가 모르게 성에 안 차는 듯한 느낌으로 말씀하셨다.

“카페는 오래 하셨어요?”

“아니요~ 이제 1년 됐어요~ 원래 저기서 술 팔았지~ 하도 딸내미가 술 팔지 말라고 해서 카페 한 거예요~ 그게 훨씬 남는 건데~ 맨날 싸워요~ 카페도 장사가 안 돼서 저녁엔 술을 팔겠다고 했더니 딸이 온갖 성질을 다 내더라고요~”

이해되고 또 이해됐다. 따님도 사장님도.


라면이 맛이 없을 리가 없는데.. 남기는 건 예의가 아니니 불기 전에 호로록 삼켜냈다. 사장님이나 나나, 습한 마음만 뒤적거리며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저는 이제 들어가서 오픈하려고요~ 잘 먹었어요, 사장님~!!”

“고마워요~ 다음에도 와요~!”

문을 열고 나왔다. 상가 끝에 과일 가게가 보였다. 크고 둥그런 수박이 해를 쬐며 너도나도 탐스럽게 뽐내고 있었다.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식재료만 봐도, 장사할 생각으로 계산하고 있는 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미 내 몸뚱이는 끈적이도록 더뎠다.


해는 나만 따라왔다. 집요했다. 매미는 단체로 울고 해는 내 온몸을 울렸다. 살까 말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수박이 아른거렸다. 내 카페에서, 다른 카페의 수박 도시락을 시키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 입 한 입, 달고 달았다. 시원했다. 온몸에서 울며불며 뛰쳐나간 수분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내가 아직 덜 고생했나, 수박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올여름은 빙수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빙수를 만들었다. 생과일을 올리지 않아도 됐다. 연유와 아이스크림, 코코볼, 견과류만 올려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엄마들은 옛날 빙수에 인스턴트커피 가루만 뿌려줘도 좋아했다. 티스푼도 다시 꺼냈다. 여름 나기는 이대로 충분했다. 어느 엄마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맞다! 이거 티스푼 우리 집에 있는데~! 어머! 나 이제 생각났어! 여기 떠먹는 케이크 살 때 일회용 수저 주셨었는데~ 그날은 저희 신랑이 사 왔는데 티스푼을 주셨더라고요?! 주신 거 맞아요, 사장님?!”

‘젠장, 그럴 리가.’

“제가 바빠서 착각했나 봐요~ 어쩐지 몇 개 없더라고요. 하하하하” 입은 웃지만 속은 뜨끔뜨끔, 양심을 떠낸 듯이 욱신거렸다.

“세상에~ 다섯 개나 있어요~ 이따가 가져다 드릴게요~!!”

티스푼을 돌려받았다.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결혼도 못해, 나이는 많아, 정신머리는 없어. 자책하고 자책하며 반성했다. 돌아온 티스푼은 다트 던지듯 내 심장에 던져진 거나 다름없었다. 아끼고 싶었던 티스푼, 아낌없이 주고 싶었던 정민시 그녀. 내 피해망상과 모순된 행동들을 떠내고 싶었다. 그러나 티스푼은 애증의 칼날이 되어 내 양심을 난도질할 뿐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엄마들 앞에서, 기타 손님들 앞에서. 웃어야 하는 내 속은 차마 말하지 못해 부끄러워 빨갛게 붉히며 울먹이는 수박 같았다. 수박. 마음도 피부도 익고 또 익어가는 여름, 온몸에 털이란 털은 쭈뼛쭈뼛, 흐느적흐느적. 끈적이고 찝찝함은 더욱 길게만 이어졌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이사 갔을 일은 없고, 다시 찾지 않는 그녀에게 미안하고도 서운했다. 생각을 곱씹고 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진짜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