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결연함은 공허가 따랐다.

머릿속이 바빠.

by 민시

2026년, 가식적인 눈웃음을 보였던 진상 엄마가 혼자 나타났다. 아니, 정민시 그녀와 함께 나타났다.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졌다. 서로 무슨 인연일까,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낯설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그녀가 커피를 건네받을 때,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오셨어요~”

“아, 네~ 그러게요~ 바빴어서..” 어색하게 대답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음악 소리를 키우는 척 조절했다가 볼륨을 낮췄다. 카운터를 청소하는 척 거울을 돌렸다.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 진상 엄마랑은 또 왜 만났지?’

가식적인 눈웃음, 콧소리를 내며 정민시 그녀의 앞에서 이웃 간에 송년회 현장을 자랑처럼 늘어놓고 있었다. 듣고만 있는 건지, 정민시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개가 절레절레, 듣는 내내 송곳니가 드러났다.


잠시 후,

“오해였네~! 그런데, 복도에서 네가 욕한 건?”

이건 또 무슨 경우일까, 정민시 그녀가 무슨 욕을 했다는 걸까.

“정말, 기가 막히네요. 생각을 해봐요. 7층에 나만 살아요?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등원해요. 나밖에 없는 집에서 굳이 왜 현관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해요? 그것도 아이 엄마가 돼서 나이 마흔에 욕설 통화를요? 내 이미지가 그렇게 보여요?..”


“똑똑”

너무 집중해서 들은 나머지 손님이 픽업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원두 그라인더 소리에 그녀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괜히 머리카락만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픽업 손님을 빨리 보내고 싶었다.

“언니도 쌍둥이들 키우면서 울려본 적 없어요? 나는, 복도에서 욕하고 애 울리고? 그 사람들은 나를 대체 어떻게 만든 거예요?” 정민시 그녀가 흥분해서 말했다.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잊고 지냈던 수아가 떠올랐다. 수아가 말했던 층간 소음은 정민시 그녀의 집도 지옥임이 분명했다.

착한 척 가식적으로 눈웃음을 보이는 진상, 그 엄마 앞에서 정민시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했다.

“정훈 엄마가 보험 일하거든? 엄마들은 회사에서 편의를 봐줘서 꽤 자유롭다고 알고 있어~ 강요는 아니라는데 부담이 되니까 몇몇 엄마들은 보험 들어줬잖아. 그리고...”

커피 들고 합석하고 싶었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데.

“자기 딴엔 친절하게 다가갔는데 엄마들이 거리를 두면 돌변하는 것 같아. 나쁜 애는 아니야~”

“파란 렌즈는 뭐예요? 그거 왜 끼고 다닌대요? 파란 눈으로 쏘아보는데 거리 두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파란 렌즈라.. 파란 렌즈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 흔하지 않으니, 내가 아는 그녀가 떠올랐다.

‘여기저기 진상 짓 하고 다니네. 파란 렌즈가 정훈이 엄마였어? 그 뒤에 쌍둥이들이 저 진상 엄마 애들이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사실에 정민시 그녀가 다르게 보였다. 파란 렌즈 그녀를 알기에 안쓰럽게 느껴졌달까? 나였으면 들이받았을 텐데.


한 달쯤 흘렀을까, 정민시 그녀가 다시 방문했다. 여전히 그녀 앞에는 가식적인 눈웃음으로 엄마들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진상 엄마가 있었다. 파란 렌즈 그녀에게 꼬리라도 잘렸을까? 결속력들이 대단하더니, 결국 엄마들 간에 금이 갔나 보다. 그녀의 입에서 새까만 바퀴벌레 떼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정민시 그녀는 왜 다 듣고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책을 건네는 모습도 보였다. 대체 무슨 사이일까, 친하다면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그 뒤로 그녀들은 또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거리는 있어 보였다. 그날따라 손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지막 음료를 건네고 앉았다. 정민시 그녀는 카운터를 향해 힐끗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진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걸까?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억지로 앉아있는 듯 보였다.

“그 마음 알아요. 당연히 서운하지. 나는 이해해요.” 정민시 그녀가 진상 엄마를 달랬다.

진상 엄마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급하게 학교로 간다며 일어났다.

“언니 먼저 가요. 나는 한 잔 더 마시고 가려고요.”

그대로 진상 엄마는 문을 나섰다. 남겨진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소파에 기댔다.


그녀를 향해 말을 건넸다.

“요새 일하세요?”

그녀는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며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요~ 사장님, 저 아메리카노 한 잔만 더 주세요.”

내가 너무 뻔뻔했을까, 대화는 자연스레 끊겼다. 그러나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대화를 더 해보고 싶었다. 오해를 풀고 싶기도 했고. 커피를 들고 그녀에게 건네며 맞은편에 앉았다.

“한동안 안 오셔서 일하시는 줄 알았.. 어요~”

테이블 위에 놓인 껌을 보니, 긴장한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 일이라기보다.. 글을 쓰고 있었어요~ 집중하느라 집에 있었죠~”

그녀와 글은 어울렸다. 무슨 글을 쓰는지 물었다.


“띠링”

그 시간은 유독 손님이 많았고, 주문은 밀렸다.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였고, 머리는 그녀에게 건넬 말들로 바빴다. 테이크아웃 손님도 놓칠 수 없으니, 그녀와의 대화할 타이밍은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수고하세요~” 목소리를 높여 인사하고 나가는 그녀에게 최대한 공손히 인사했다. 내 진심이 그녀 귓가에 가 닿았을까? 그녀의 결연함은 공허만이 뒤따랐다. 손의 물기를 앞치마에 닦았다. 고개를 숙여 본 앞치마는 축축하게 젖은 모양새가 얼룩덜룩, 거울을 보니 머리는 산발. 한바탕 매출 전쟁은 몸도 마음도 머리도 멍했다.